테니스피플 박원식 편집국장이 카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김천에서 주니어대회를 하는데 갑자기 중요한 일이 겹치게 되어 갈 수가 없다고.
4 ~5년전엔가 JSM오픈 김천주니어 대회 취재를 한 적이 있던 필자는 메시지를 읽으며 아주 잠시 갈등을 했다.
여수오픈이 한창 진행중이라 대구시청팀의 김형돈, 정기수 선수가 선전을 펼치고 있으니 빨리 여수로 카메라들고 응원오라는 박병옥 감독의 문자메시지가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필자는 대구테니스협회의 홍보위원으로도 활동중이다.
하지만 갈등은 잠시였고 내 머릿속 내비게이션은 벌써 김천 종합스포츠타운을 찍고 있었다.
노트북과 카메라를 챙겼다. 배터리충전을 확인하는데 아뿔사 엊그제 주말 쉬메릭 동호인대회 취재 갔다가 대구협회 사무실에 배터리충전기를 그대로 꽂아놓고 온 게 생각났다.
아침 9시부터 준결승이 시작이니 아침 7시에는 집에서 나서야 한다.
결승전 중요한 순간에 몇 장 찍고 시상식 사진만 찍으려면 배터리 하나로 충분할 듯 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지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남녀 통틀어 300명이 넘게 출전을 했다고 했고 준결승과 복식경기도 있으니 남아있는 선수들이 꽤 될 것 같은데 대충 몇 장만 찍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새벽 6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대구 유니버시아드 코트까지 1시간 잡고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고속도로라 카메라 없는 구간은 악셀레이터를 마구 마구 밟았다.
정확히 7시 30분에 유코트(유니버시아드 코트를 대구테니스인들은 유코트라 부른다) 주차장에 도착 배터리를 챙겨들고 다시 김천으로 차를 돌렸다. 충전기와 여분의 배터리가 내 마음을 아주 편안하게 해준다. 오늘 하루 사진 마음껏 찍어야지.
아침 일찍 나오느라 화장도 안한 맨얼굴로 칠곡휴게소까지 내달렸다.
과속을 많이 한 덕분에 9시까지 충분히 도착할 것 같아 커피한잔 마시며 선크림을 발랐다.
김천시내에 접어들어서며 신호대기 할 때마다 화장을 조금씩 해서 코트에 도착했을 때는 집에서 나올 때의 부스스한 그 아줌마가 아니라 사진 잘 찍는 멋쟁이 황기자로 변신해 있었다.
코트에는 벌써 선수들이 나와 몸풀기를 하고 있다.
기자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레퍼리실로 들어가니 조동민 레퍼리가 나를 반겨준다.
노트북을 펼치고 카메라를 세팅하는 걸 도와주며 대진표를 건네준다.
몇 년째 토너먼트에서 함께 일을 한 심판들이라 내가 뭐가 필요한지 다 안다.
재빨리 렌즈를 챙기고 코트를 확인한다.
9번 코트부터 17번 코트까지다.
스코어보드와 출전 선수들을 한 사람씩 빠짐없이 찍기 시작한다. 코트별로 돌아다니며 토스를 하고 웜업을 하는 사이 한 바퀴 돌아와 보니 겉에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또 다른 선수인 것처럼 보여 놀랐다.
1세트가 끝나고 2세트에 접어들 무렵부터 또 다시 찍기 시작한다. 처음에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인지 선수들의 샷도 그다지 멋지게 보이질 않는다. 거기다 셀프저지와 볼퍼슨이 없어서 공을 주으러 다니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게임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엔드체인지 할 때를 기다려 이동을 하려니 사진을 찍는 것도 이동을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관중석에 앉아 있는 선수들을 찍으려 다가가니 반갑게 포즈를 취해주는 선수도 많지만 수줍어서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귀여운 어린 선수들이 나를 안타깝게 한다.
시합에 나와서 꼭 이겨야 좋고 우승해야 좋겠지만 질 수도 있는데 관중석에 앉아 있는 사실이 싫어서 그런지 카메라를 거부하는 선수들도 꽤 많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선수는 나에게 항의하듯 질문을 던진다.
“기자님, 왜 8강은 안 찍어 주시는 거예요?”.
8강이라서 안찍어 준게 아니고 대회가 시작 된지도 전혀 몰랐었던 거였고 오늘 아침에서야
취재를 하러 온 사실을 모르는 그 선수에게 정말로 미안했다.
나를 기다렸었다기 보다는 대회기간 내내 보이질 않다가 이제야 왔냐는 원망의 소리로 들렸다. 미안한 마음을 대신해서 사진 몇 장 찍어주고 자리를 떴다.
준결승전이 마무리 되고 결승전까지 약 1시간 쉬는 시간이 있어 그 사이 점심을 먹으며 이진수 대표와 대한민국 테니스와 학교체육의 문제점 그리고 주니어 육성방안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오랫동안 주니어대회를 개최해온 이진수 대표는 많이 지쳐보였다. 올해가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도 들었다. 지금은 모두 어렵다. 선수도 지도자도 부모도 모두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게임에서 누가 이기고 지고 결승에 어느 선수가 올라왔느냐 보다 앞으로 우리 테니스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고민이 더 컸다.
시상식까지 1천 5백여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다. 랭킹에도 합산이 되질 않고 주니어라 상금도 없는 대회지만 참가자 300여명의 선수가 예선리그와 본선토너먼트를 통해 평균 4게임씩 치루며 기량점검과 대회 경험쌓기 수업으로는 만점짜리 대회라고 생각되었다.
오후 5시쯤 모든 일정 마치고 다시 마산집으로 향했다.
저녁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 기념품이라도 하나 챙겨주고 싶어하는 토너먼트를 뒤로 하고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또 다시 달렸다. 한 시라도 빨리 집으로 가서 사진 정리해서 페북에 올려주고 싶었다.
게임에 진 선수, 이긴 선수 모두 모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테니스의 희망이니까 !
하루가 지난 오늘 저녁에서야 사진 정리를 다 했다. 페북에 올리고 취재지원을 해 준 테니스피플에도 사진을 보냈다.
대한민국에서 테니스 사진을 제일 잘 찍고 싶은 황기자의 JSM춘계 대회 취재는 여기까지다.
황기자에게 우승은 누가 했는지 누가 4강에 오르지 못해 사진에 찍히지 못했는지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우리 테니스인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테니스 맘껏 할 수 있고 시합에 원없이 나갈 수 있는 세상 만들어 우리 주니어들이 세계적인 선수가 되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