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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청 김영준, 지도자 길 나선다
박원식 기자  |  pwseek@tennispeop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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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30  04: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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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5월 10일자 <한겨레> 기사

 

2003년 5월 퓨처스대회 우승 기사를 쓰면서 인연을 맺은 김영준 선수(고양시청)가 긴 우여곡절의 선수생활을 마치고 지도자의 길에 나선다.  한마디로 말하면 은퇴한다. 내년부터 모교인 건국대학 코치로 나서 후배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김영준 관련 동영상 기사 링크

 

80년 2월 23일생인 김영준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동생인 영재와 함께 테니스를 하게 됐다. 할아버지때부터 살아온 경기도 광명시에는 테니스부가 있는 학교가 없어 서울 면목동 금성초등학교로 전학, 건대부중·고, 건대를 거쳐 실업팀에 입단해 아래와 같은 성적 등을 거두었다.

 

 

   
▲ 경력

 

김영준은 어떻게 다시 시작했나

그동안 김영준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는 참 많았다. 풍운아, 비운의 천재, 도깨비, 유망주 등등.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때부터 이형택에 버금가는 선수로 각광을 받았다. 대학 때 학교를 뛰쳐나가 아파트코트 코치를 전전했고 동호인대회에도 출전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먹고 구미시청 팀에 들어가자마자 국내 실업대회는 물론 국제대회 퓨처스 우승을 밥 먹듯 했다. 국내에서 열리는 웬만한 대회 결승전은 항상 김영준의 독차지였다. 그러던 김영준이 2004년 이후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2008년 다시 나타났다.  왼쪽 어깨엔 고양시청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다.

2008년 초 연습 삼아 간 뉴질랜드 퓨처스에서 준우승, 8강 성적을 냈다. 랭킹 점수 하나 없이 예선부터 뛴 결과다. 예전에 퓨처스 우승을 경험한 바라 주변에선 별 감흥이 없다.  “동네 대회 성적이 무슨 대수라고…….”하면서. 하지만 정작 김영준 자신은 그 결과를  놓고 이전 어느 대회 우승보다도 값지게 여겼다.

김영준은 고양시청 팀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뒤 핸드폰 번호를 바꿔 외부와의 연락을 단절했다. 망가진 몸을 추스리기 위해 매일 야산을 뛰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더 이상의 방황은 없다.”
뉴질랜드 전지훈련에 가서도 이를 악 문 생활은 계속됐다. 입에 단내 나도록 공을 쳐 댔고 뼈가 으스러질 때까지 프레스를 가했다.

김영준을 누가 바꾸어 놓았는가?

목표도 야심도 없이 방황하던 한물간 선수로 치부된 김영준을 누가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
1년간 김영준을 조용히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당시고양시테니스협회 정용택 사무국장.
정 국장은 ‘명예회복 시켜주겠다. 멋지게 선수생활 마무리 해주겠다. 훌륭한 지도자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온갖 ‘혹’하는 이야기로 김영준을 유인했다.

김영준의 몇 달 만에 돌아온 대답은 부천시청 팀과의 계약이었다. 운동하는 동기도 있고 젊은 감독과의 호흡도 맞는 등 운동 분위기가 좋다는 이유다. 정 국장은 그래도 기다렸다.

인구 100만 고양시를 체계적으로 테니스 고양시키는 도시로 만들려는 계획에 김영준이 꼭 필요한 것이다. 인내한 결과 김영준은 고양시 품에 들어왔다.

“두고 보십시오. 운동할 수 있는 기간이 짧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형택을 이을 선수가 될 것입니다.” 정 국장의 김영준에 대한 기대는 ‘마지막 찬스’라 여기는 김영준 자신보다도 더 확고부동했다.

김영준을 누가 키웠는가

고양시를 경기도의 으뜸 테니스도시, 더 나아가 아시아의 최고 테니스 도시로
번듯하게 만들고자하는 것이 고양시와 신임 임지헌 감독, 협회가 하나로 똘똘 뭉쳤다.

삼성, 한솔에 버금가는 국제대회 참가 예산을 김영준 선수에게 허용했다. 국내에서 실업대회가 줄줄이
열렸음에도 국제대회를 선택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결실은

이 노력의 결실은 김영준이 국제대회에서 서서히 진가를 드러내고 국내에서도 정상의 자리를 되찾게 만들었다. 김영준은 전한국 선수권대회 2008,2009년 2연속 남자단식에서 우승하고  실업그랑프리대회에서도 2년 연속 우승하며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했다. 

태극마크도 달고 국내 대회도 석권하고

2013 영월 실업연맹전 우승
2012 춘천오픈 우승 
2012 영월 실업연맹전 우승 
2011 춘천오픈 우승 
2011 국가대표 복귀 
2011 대구퓨처스 단복식 우승 
2011 태국퓨처스 우승 
2011 안동오픈 우승 
2011 한국선수권 우승 
201 말레이시아 1차 퓨처스 준우승
2010 인도네시아 3차 퓨처스 우승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발탁
2009 수원마스터스 우승 
2009 한국선수권 우승 
2009 안동오픈 우승
2009 경산퓨처스 우승 
2009 창원국제퓨처스 준우승 
2008 한국선수권 우승 

이렇듯 김영준은 고양시청에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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