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피플
피플명사
'2020년 정현 그랜드슬램 우승 기대'국내 최초 아카데미 연 서의호 교수 특별 인터뷰
글 박원식 기자 사진 황서진 기자  |  editor@tennispeople.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5.06  07:59:05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네이버 구글
   
▲ 서의호 교수

 

   
▲ 서의호 교수가 발의한 '윔블던 2000' 프로젝트로 세계적인 선수 키우자는 91년 12월 18일자 <한겨레> 기사

안녕하십니까. 지난주 새벽 3시에 카카오톡 문자를 받고 아직도 테니스에 대한 열정이 있으신 것에 대해 적잖이 놀랬습니다. 지금 한국테니스는 정현으로 인해 좋은 흐름이 생겼지만 아무런 플랜이 없어 마음이 불편합니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주니어들은 해외에 나가지 않고 프로 선수들도 외국대회에 도전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정현만이 있습니다. 걱정입니다. 편집자


-정현의 호주오픈 4강 진출에 대해 한국 테니스계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한 언론에 언급하셨습니다. 왜 기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지요.

= 98년 최동휘선수가 오렌지볼 12세부 우승한 이후 12, 14, 16세부 에디허, 오렌지볼등에서 한국선수들의 우승이 있어왔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프로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98년 한국최초의 STA 아카데미를 설립되었고 이후 여러 아카데미가 생겼지만 역시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테니스는 안 된다"는 신드롬이 확산되었고, 고질적인 한국식 테니스 육성방식이 수정되지 못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20년 전 "한국 테니스는 왜 안 될까? 윔블던 주니어 준우승 전미라 선수의 교훈" 이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정현의 호주오픈4강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이번 기적은 우연은 아니라고 봅니다. 과거 실패한 사례의 핵심적 CFF(Critical Failure Factor) 를 반복하지 않은 결과라고 봅니다.

-수영 박태환,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여자 골프 들이 세계를 정복하는데 테니스의 세계 정복은 안 된다고들 합니다. 기업들이 후원을 외면합니다. 아직도 기업들은 한국 테니스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 98년 (우연히 오렌지볼 우승, STA 창설과 같은 해), 박세리는 미국 LPGA 우승으로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그후 한국여자 골프는 세계를 휩쓸고 세계 1위로 올라섰습니다. 그전까지 한국골프는 전혀 무명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bandwagon effect가 일어날 것으로 봅니다. 테니스 선수들이 정현선수를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확산될 것으로 봅니다. 한국테니스 큰 전환점을 맞이할 것입니다. 정현선수는 그랜드슬램 우승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챔피언들이 23-24세에 세계 1위가 되었기에 정현에게는 2-3년 여유가 있습니다.

-나이 마흔에 한국 테니스 꿈나무 발굴·육성 모임「윔블던 2000」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셨습니다. 2000년엔 윔블던 테니스 대회 결승이 벌어질 센터 코트에 한국 선수가 꼭 설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10세 내외의 유망주들을 발굴, 과감한 투자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과 국제 경험을 축적케 하면 8, 9년 뒤엔 충분히 세계 제패가 가능하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학적 훈련 및 코칭을 위해 STA 아카데미를 국내 최초로 포항에 만드셨나요.

=92년 2000년대 윔블던을 제패하자는 신념으로 몇 분들과 힘을 합해 <윔블던 2000> 을 만들어 당시 박성희, 송형근 선수 등에게 장학금을 주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훈련방식 개선이 없이 장학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98년 STA 테니스 아카데미를 만들었습니다. 최초 미국유학생인 최희준 코치, 정현을 지도한 손승리 코치 미국유학파 이병구 코치 등이 코치를 맡았습니다.
미국식 훈련방식을 접목하고 해외 토너멘트에 적극 참가하였습니다. 몇 가지 이유로 2000년대 중반 STA를 접었습니다만, 이후 여러 아카데미들이 만들어져서 한국테니스가 학교와 아카데미가 공존하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정현은 에디허, 오렌지볼 12세부 우승후 IMG 아카데미(구 닉볼리티에르 아카데미) 에서 훈련한 것이 아주 중요한 모멘텀이라고 봅니다. 또한 서구 선수들 못지않은 188 센티의 큰 키와 체격도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고 봅니다.

-1994년 16세의 나이로 윔블던 주니어(18세)부에서 준우승을 한 선수를 예로 들면서 한국 테니스가 안 되는 이유를 거론하셨습니다. 당시 결승에서 맞붙었던 힝기스는 바로 프로로 전향, 수많은 프로 대회에 참가해 경쟁력을 쌓았고 미국 닉볼리티에르 아카데미 등 유명 클럽에서 다양한 상대와 훈련하며 야생의 쌈닭으로 성장했고 결국 세계 1위로 성장했다. 반면 우리 선수는 당시 계속 주니어 대회를 맴돌고 한명의 코치와 지루하게 공을 치고 연습하면서 점점 힘없는 집닭으로 변신하고 있었다고 언급하셨습니다.
정현은 앞서 언급된 선수와 다른가요. 정현 선수는 갑자기 나온 스타가 아닙니까.

=거듭 언급하지만 정현은 에디허, 오렌지볼 12세부 우승후 IMG 아카데미(구 닉볼리티에르 아카데미) 에서 훈련한 것이 아주 중요한 모멘텀이라고 봅니다. 어렸을 때 서구선수들과 어울려 훈련한 것이 테니스를 보는 관점을 바꾸었다고 봅니다. 또한 서구 선수들 못지않은 188 센티의 큰 키와 체격이 받쳐주었습니다.
과거에 어려서 닉볼리티에르로 유학간 선수들이 있긴 하였지만 체격과 체력이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또한 소질에 있어서 현재 정현만큼 되지 못했습니다.
초대형 선수는 가끔 나옵니다. 일본도 마츠오카 슈조 이후 근 20년 만에 니시코리가 나타났습니다. 정현선수는 그런 관점에서 이형택이후 나타난 혜성이며 훈련과정에서 IMG 에서 훈련한 것이 크게 주효했다고 봅니다.

   
▲ 국내 최초 테니스아카데미를 열었던 서의호 포항공대 교수. 이병구 코치가 아카데미에서 활동을 했다

- 오픈된 경쟁 속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야생마처럼 자라야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물론입니다. 지금 여자골프를 보시면 한국여자골프가 압도적으로 일본여자골프를 이기고 있습니다. 한일전이 의미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는 한국여자골프는 미국LPGA에서 야생마처럼 자라고 일본여자골프는 일본에서 곱게 자라기 때문에 경쟁력에서 차이가 납니다.
모든 스포츠는 경쟁에 의해 성장합니다. 들판에서 야생마처럼 경쟁하는 자를 이길 수 없습니다.

- 정현이 국민에게 준 희망과 교훈은 어느 정도인가요.
=정현이 그랜드슬램을 우승할 날이 올 것이라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각종 그랜드슬램에서 8강, 4강, 준결, 결승까지 진출하는 일들이 최소 10년간 일어날 것입니다. 이는 테니스 팬들에겐 환상과 같은 일입니다. 저도 유료 ATP 사이트 구독을 하기 시작했고 모든 ATP 경기를 라이브로 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현의 경기를 보는 희망으로 가슴이 뜁니다. 밤을 새면서 봅니다. 테니스를 모르는 국민들도 엄청난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제가 봅슬레이를 모르지만 봅슬레이 우승을 보면서 희망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로젠탈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부심이 늘면 생산성이 오른다는 이론인데 아마도 정현 붐은 한국 사회의 여러 면에서 희망을 줄 것입니다.

-정현의 호주오픈 성과를 볼 때 좀 늦긴 했지만 윔블던 2000이 아니라 윔블던 2020이 가능할까요?
=윔블던 2000 은 2000년대라고 본 것이니까 사실은 2000-2010년 이었죠.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2020년에 충분히 가능한 목표입니다. 여자 테니스도 자극을 받아야 합니다. 이소라 선수가 오렌지볼 14세 우승하고도 프로에서 고전하고 있는데, 이는 반성해야 할 포인트입니다. 통계적으로 여자는 14세부 세계제패는 프로성공을 거의 보장합니다. 과거 힝기스, 안나쿠르니코바 등 수많은 예가 있습니다.

-지금 대한테니스협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정현의 붐을 더 키워야 합니다. 정말 한국 테니스 역사상 처음 찾아온 황금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테니스붐을 일으키는 마케팅 활동, 주니어 테니스의 저변확대 및 훈련방식의 개선, 주니어 테니스의 국제화, 투어 대회 유치 등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현재 2002년 창설하여 전국 2만 명 가까운 회원을 가진 단테매(단식테니스매니아) 등 테니스 동호인들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서의호 교수는
1952년 출생하여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카이스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1977년 현대건설및 숭실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를 거친 후 198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석사학위, 1986년 일리노이 대학교(어바나-샴페인) 경영정보시스템/경영과학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테네시 공대 오클라호마 주립대 교수를 거쳐 1989년 귀국 포항공대(POSTECH)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로 28년 재직한 뒤 퇴직했다. 현재는 포스텍 교수와 DGIST(대구경북과기원) 총장특보를 겸하고 있다.

서 교수는 테니스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1990년대 대한테니스협회 이사, 국제심판, TV 해설자 등으로 활약하면서 <윔블던2000>을 창설하였고, 1998년 STA 주니어 아카데미를 국내 최초의 테니스 아카데미로 창설하여 국가대표 선수들을 육성했다.

서의호 교수 프로필

1971년 경기고 졸업

1975년 서울대학교 공학사

1977년 한국과학기술원 공학석사

1982년 스탠퍼드대학교 공학석사

1986~89년  미국 TTU, OSU 교수

1987년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 경영학박사

89~2017년 포스텍 교수 

2017년~  디지스트 총장특보


테니스관련 경력 

1991년 STA 테니스아카데미 창설

1994년 ITF국제심판

1998년  한국스포츠TV 테니스해설위원, STA 엘리트 테니스 아카데미 창설

2002년 단식테니스매니아 창설


테니스 관련 기고문 

<세계 100위로 가는 길> 서의호 교수

   
▲ 아카데미 운영시절 미국 닉 볼리티에르 아카데미에서 연 대회와 훈련에 참가했다

 

   
 

 

   
 

 

   
 

 

   
 

 

   
 

 

 

   
▲ 공대교수의 테니스사랑. 동아일보 98년 9월 26일자 

 

 

 

[관련기사]

글 박원식 기자 사진 황서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네이버 구글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테니스피플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614-2 원당메디컬프라자 606호  |  대표전화 : 031)967-2015  |  팩스 : 031)964-7780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경기 다 50250(주간)  |  출판사 신고번호:제2013-000139호  |  상호명 : (주)스포츠피플 | 테니스피플  |  사업자등록번호:128-86-68020
대표이사·발행인 : 김기원  |  인쇄인:정영무(한겨레신문사 대표)  |  편집국장 : 박원식  |  정보기술책임 : 최재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재혁
Copyright © 2011 테니스피플.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tennispeopl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