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박종규 코치가 아들 박의성을 가르치고 있다

1 체계적, 과학적 훈련시스템

박의성 이란 선수가 있다. 만 12세, 신안초등학교 6학년 재학중.
2010년과 2012년 교보생명컵 남자12세부에서 우승을 한 유망주이다.
올 해 12세인 이 어린 선수가 세계 100위에 드는 선수로 성장하려면 어떤 시스템이 필요할까?

오늘의 박의성을 키운 것은 테니스 아카데미나 다른 어떤 시스템이 아니다. 박의성 뿐만 아니라 정현(삼일공고)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망주들이 한국테니스의 시스템에 의해 성장 한 것이 아니라, 부모나 초등학교 테니스부 코치의 지도하에 현재의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것은 시스템의 부재에서 기인 한 바 크다. 불행히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유아나 어린아이들에게 체계적으로 테니스를 가르치는 곳이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테니스 꿈나무들은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기본기나 운동습관을 형성하는 등 가장 중요한 시기를 부모나 초등학교 테니스 부의 지도를 받으면서 보낸다. 물론 이것도 광의의 시스템일수도 있지만, 객관적 효율성이 검증된 체계적인 시스템은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엘리트 선수들의 부모나, 초등학교 테니스 부 코치들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 어린 선수들을 꾸준히 키워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국테니스의 장래를 생각하면, 그들의 짐의 덜어주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유아 테니스교실이든, 유소년 테니스클럽이든, 테니스 아카데미든 말이다.

지금은 박의성 선수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세계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프로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당장의 화려한 기술보다는, 테니스를 즐기는 방법과 탄탄한 기본기를 배우는 것이 중요한데, 애석하게도 박의성은 세계수준의 검증된 시스템을 통해 그것들을 갖출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박의성에게는 테니스 대디(tennis-daddy)가 있었다. 맡길 시스템이 없으니 아버지가 직접 가르쳐서 현재 12세부 국내 1위의 선수로 키워 낸 것이다. 그럼 계속해서 아버지에게 맡긴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지금까지 해 온 것만해도 엄청난 성과를 이룬 것이다. 한계에 온 것이다.

일본의 니시코리는 13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의 팀(Team)에 의해 관리를 받으며 본격적인 프로선수로 키워졌다. 박의성에게도 세계수준의 검증된 훈련시스템이 필요하다.
문제는 돈(money)이다. 불행히도 아직까지 박의성에게 후원 제의를 해 온 기업이나 단체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윌리엄스 자매는 10대 초반에 그녀들의 재능을 알아본 한 의류업체와 후원계약을 체결하여 그 수입으로 아카데미근처에 가족들이 거주할 집을 마련하여 안정적인 훈련을 함으로써 세계적인 선수로 성공했는데 말이다. 현재 12세의 박의성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고, 더 이상 나쁜 자세나 습관이 몸에 배이기 전에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이 가능한 세계수준의 시스템이 갖추어진 환경에서 훈련해야 한다. 더그 맥커디의 주니어 육성팀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더그 맥커디의 주니어 육성팀이 있다. 맥커디를 아는 미국의 어느 테니스 지도자는 "맥커디의 종전 방식이라면 미국 시스템으로 선수를 끌어들여 인큐베이팅하는 것이 방법일텐데 그렇지 않은 방법을 택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평했다. 국내 지도자들 일부는 맥커디가 주니어 선수보다 국내 지도자들을 교육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2 전략적 투어 스케줄링(Strategic Tour Scheduling)
박의성이 ATP랭킹 100위안에 들려면, 세계대회에서 성적을 내야하고, 그 세계대회는 수준별로 잘 마련되어있다. 우선 누벼야 할 무대는 ITF 퓨처스 토너먼트(ITF Futures Tournament) 이다. 2011년에만 534개의 대회가 열렸고, 올 해도 512개 정도의 대회가 세계 곳곳에서 열린다. 세계각국의 유망주들이 프로무대에 뛰어들기 전 여기서 기량을 점검하고 다듬는다. 그 다음에는 상금도 더 많고, 수준도 더 높은 150여 개의 ATP 챌린저 토너먼트(ATP Challenge Tournament) 대회가 있다.
여기를 거치면, 비로소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2천 5백억 원의 상금을 놓고 66개의 등급별 대회를 통해 각축전을 벌이는 ATP 월드투어(ATP World Tour) 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그 어떤 차별도 없다.
오직 테니스 실력만으로 성적을 낸 만큼 상금을 챙겨가는 것이다. 앞으로 박의성은 이런 무대에서 생활해야 한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각종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그의 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리 만만한 생활은 아니다. 퓨처스(Futures) 대회의 경우, 500여 개의 대회 중 약 60%가 유럽에서 열린다. 한국, 일본, 중국 등 가까운 나라에서 열리는 대회는 5%도 안 된다.
프로선수에게 대회가 주는 의미는 상금(Prize Money)과 랭킹점수(Ranking Points)다.
상금으로 투어비용을 대고, 생활비를 충당하고, 미래를 대비한 저축도 해야 한다.
랭킹점수는 대회에서의 성적을 점수로 환산하여 프로선수들간의 랭킹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
또한, 그 랭킹으로 다른 여러 대회의 출전자격을 정한다. 점수가 부족하면 랭킹이 낮아지고, 랭킹이 낮아지면 출전자체를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출전하더라도 예선부터 통과해야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또한, 선수가 1년 중 참가 할 수 있는 대회는 시간적, 공간적 한계로 인하여 제한되어 있다. 2012년 7월 31일 현재 ATP Top 100 선수들의 연평균 대회참가 수는 26개 정도이다.
따라서, 박의성이 1년 동안 참가 할 대회를 전략적으로 잘 선택해야 하는데, 그 선택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대회의 등급, 이동거리, 경쟁의 정도, 비용 등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여 전략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3 랭킹포인트 관리(Ranking Points Management)
ITF는 2004년부터 복식(doubles)경기를 장려하기 위하여, 통합주니어랭킹제(Combined Junior Ranking)를 채택했다. 이전 단식랭킹과 복식랭킹을 따로 산정하던 것을 합해서 하나의 랭킹으로 통합 한 것이다. 산정방법은 단식(best 6경기 포인트의 합) + 복식(best 6경기 포인트의 합)/4 이다.

현재 주니어 랭킹 1위의 포인트는 1,349점이고, 우리나라의 김재환(영남고) 선수가 448점으로 50위에 랭크되어있다. 김재환 선수가 어떤 시합에서 어떤 성적으로 448점을 획득했는지 간단하게 살펴보자. 지난 1년간 김재환은 8개의 주니어대회와 5개의 퓨처스(Furutres) 대회 등 총 13개의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이 중 주니어랭킹포인트를 획득한 대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위의 표를 보면, 김재환은 총 8개의 주니어대회에 출전하여 그 중 7개 대회에서 랭킹포인트를 획득했다. 출전한 대회도 최소한 2등급 이상의 수준 높은 대회를 골라 출전 한 셈이다.
현재 김재환 선수의 랭킹 50위 정도면 그랜드슬램을 포함한 모든 대회의 본선에 직행 할 수 있다.

4 투어비용 확보
프로선수로서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투어대회에 참가하는 데에는 당연히 비용이 발생한다.
미국의 경우 USTA(미국테니스협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프로선수가 ATP 월드투어 대회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1년에 약 14만 3천 달러(약 1억 6천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코치연봉과 피지컬 트레이닝, 멘탈 트레이닝 비용과 항공료, 숙박료, 식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도표참조)

물론 이러한 비용은 추정치이며, 개인별 투어형태나 방법 등에 따라 크게 달라 질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이와는 크게 다르지 않은 명목으로 비슷한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엘리트 선수나 부모들은 이러한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를 계획해야 한다.

5 경력경로(Career Path) 및 진로(Pathway) 관리
우리나라의 엘리트 선수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때부터 테니스를 시작하여 중.고등학교 및 대학교를 거쳐 실업팀에 입단하는 코스를 거치는 것이 전형적인 코스인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ATP 랭킹 100위 이내의 대부분의 선수들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졸업하지 못했다. 물론 미국의 존 이스너(11위)처럼 대학에서 선수로 활약하다 프로무대에 뛰어들어 성공한 케이스도 있으나, 아카데미에서 테니스를 배우고, 개인 코치를 두고 훈련을 하는 것이 전형적인 패턴이다. 이 같은 경력경로의 차이는 주로 테니스 인프라(Infra-structure), 사회적 인식 및 비용의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의 학원 테니스를 능가하는 사설 아카데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위험한 도박(?)으로 인식되며, 각종 후원 시스템이나 스포츠 마케팅은 어린 유망주에 초기 투자를 하기 보다는, 보다 더 확실한 성적을 거둔 스타선수들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이 아카데미에서 개인코치를 두고 테니스를 하는 것은 비용 때문에 엄두도 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학교를 다니지 말고, 아카데미에서 개인코치를 두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여건이 되는 테니스 선진국의 경력경로가 그렇다는 것이며, 우리는 한국형 테니스 경력경로를 만들면 된다. 또한 미국 테니스협회(USTA)에서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99%의 주니어선수들은 대학에 진학하여 선수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대학진학을 권장하고 있는데, 이 역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엄청난 비용 때문인 것이다.
실제로 USTA는 대학에서 4년간 테니스장학생으로서 받는 경제적 혜택을 연간 9만 달러, 총 36만 달러로 집계하면서 주니어선수들의 대학진학을 장려한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주니어 선수들의 진로는 대학과 실업 팀으로 국한되며, 이러한 진로(Pathway)를 거친 선수들이 세계프로무대에서 거둔 성적은 미미하다. 따라서,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진로(Pathway)나 시스템(System)을 별도로 구축해야 한다.

6 프로무대 손익분기점(Break-Even-Point) 랭킹 관리
프로 테니스선수로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프로대회에만 참가한다고 가정할 때, ATP의 경우 1년에 약 1억 5천만 원 에서 2억 원 정도 든다고 보면, 상금으로 최소한 비용을 충당하려면 어느 정도의 랭킹을 유지해야 할까? 2011년 말 기준으로 ATP 150위의 상금수입은 단.복식 합해서 약 15만 달러(약1억7천만원) 정도 되고, ATP 랭킹 100위의 총 상금수입은 약 35만 달러(약4억원) 정도이다. 따라서, 손익분기점 랭킹은 대략 150위 정도이며, 100위 정도만 유지해도 비용을 공제하고 대략 연봉 2억 정도가 보장되는 셈이니 꽤 괜찮은 직업이 된다. 물론 여기에는 각종 후원과 광고 등 다른 수입은 일체 포함되지 않았다. 랭킹이 올라갈수록 코트에서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코트 밖에서 버는 돈이 훨씬 더 많아진다. 그러나,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우선 Top 100에 이름을 올리려면 보통 3~4년은 걸리고, 평균 프로생활 기간은 약 7년 정도라고 보면, 막상 프로선수로서 돈을 벌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Top 10안에 들면 얘기는 좀 달라지지만 그건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의 대부분의 엘리트 선수들이 실업팀에 소속되어 월급 받으며 1년에 몇 번 국내경기에나 출전하며 안정된 선수생활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선수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라고 테니스 선수로서 세계무대에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지 않은 선수가 있겠는가? 현재 우리의 테니스 인프라 및 제반 시스템하에서는 그것이 너무나 힘든 가시밭길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모든 선수들에게 이형택처럼 도전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여건을 만들어 놓고 등을 떠밀어야 한다.

7 선수교육 및 복지
해마다 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에서는 유명 휴양지의 고급호텔이나 리조트에서 선수들을 모아놓고 ATP University 라는 2박 3일짜리 단기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한다. 그 내용은 주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Media Communication), 재정관리(Financial Management), 스포츠 마케팅 등 선수들이 코트 안팎에서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 강의, 워크샵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르치고 토론한다. 참석한 선수들은 하나같이 “정말 여태껏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유익한 내용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WTA는 선수들에게 은퇴 후 생활안정을 위한 자금마련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조기 저축 및 투자를 권장하는 가이드라인(Financial Fitness)등을 제시하고 보급한다. 우리도 선수들을 위한 복지제도나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조금만 신경 쓰면 할 수 있는 일이다. 테니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운동선수들 인터뷰하는 모습은 좀 촌스럽다. ATP 대학(ATP University)에서는 인터뷰하는 방법도 가르친다. 선수들이 매월 조금씩 적립하고, 협회 등에서 기금으로 보태서 테니스선수연금도 좀 만들면 좋겠다.

8 인성교육과 멘탈 트레이닝(Mental Training)
과거 운동선수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운동만 해서 세상물정을 잘 모르고 순진하다' 라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의 엘리트 체육육성 정책에 따라,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각급학교에서는 수업도 빼 먹고 오직 운동에만 전념하도록 하지 않았던가? 세상은 바뀌었다.
테니스 선수라고 평생을 라켓 들고 코트에서만 살수는 없다. 틈틈이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 코트 밖에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코트를 떠났을 때 준비되지 않은 선수가 닥치게 될지도 모르는 공황상태를 방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테니스를 얘기할 때 멘탈(Mental)이란 말을 자주 쓴다. 저 선수는 멘탈이 강하네 약하네 하는 말들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체계적이며 과학적으로 검증된 방법으로 멘탈 트레이닝(Mental Training)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가? 이미 테니스 선진국에서는 테니스 선수들의 훈련을 크게 두 영역으로 구분한다. 즉, 피지컬 트레이닝(Physical Training) 과 멘탈 트레이닝(Mental Training)으로 구분 할 만큼 멘탈 트레이닝은 경기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 것이다. 그래서 USTA의 보고서에는 선수의 비용을 산정할 때, 멘탈 트레이닝 항목이 꼭 들어있다.

이상으로 100을 깨기 위해 필요한 것들 이란 화두로 여러 가지를 나열 해 보았지만, 어찌 이것들 뿐이겠는가? 또한 여기에 나열된 항목들 자체만으로는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 모든 것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잘 융합해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탄생할 때 비로소 그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가다 보면 언젠가는 도착하지만, 가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곳에 영영 도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