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외신에 단골로 등장하는 기업이 하나 있다. 신제품 출시 같은 굿 뉴스가 아니라 창업주 2세 체포 소식이다. 중국 IT기업 화웨이(华为, Huawei)가 그 장본인이다. 사태는 지난해 말 캐나다 당국이 미국의 요청에 따라 멍완저우(孟晩舟·47)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함으로써 촉발됐다.

현재 보석 상태에서 미국 인도절차에 들어간 이 사건은 대이란 제재 위반이란 표면적 명분 뒤에 의미심장한 배경이 깔려 있다.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 나아가 서방권과 사회주의권이 정보보안, 기술패권을 놓고 벌이는 세기적 대결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미국은 화웨이 통신장비가 들어오면 국가안보가 위태로워진다고 보고 있다. 핵심정보를 빼내는 도·감청, 해킹 등 사이버 간첩행위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화웨이는 ‘신(新)냉전’의 뇌관이란 말까지 나온다. 이 사건의 본질을 들여다보려면 화웨이가 과연 어떤 기업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 렌젱페이가 1987년 친구 5명과 2만위안으로 화웨이를 창업했다

화웨이기술유한공사는 1987년 광둥성 선전에서 설립된 중국 최대 네트워크·통신장비업체다. 인민해방군 통신장교 출신인 런정페이(任正非·74)가 창업자다. 대중에겐 삼성과 애플을 추격하고 있는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유명하다. 초고도 성장을 이룩해온 화웨이는 2012년 에릭슨을 누르고 세계 최대 통신장비 제조사로 올라섰다.

화웨이의 기업 성격은 브랜드네임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이 회사와 브랜드 이름은 번체로 ‘華爲’. ‘중국의 행위’란 뜻이다. 부연하면 ‘중화민족을 위한 노력’이다. 중화 민족주의 쇼비니즘 냄새가 강하다는 반응이 일자 ‘중국이 세상을 위해 만든 좋은 것’이란 뜻이라고 애써 얼버무리기도 했다.

어쨌든 ‘중화민족을 위하여’란 브랜드명이 중국 내수시장 석권에 막강한 힘을 발휘했음은 분명하다. 성장 방식도 중국 특유의 ‘콴시(關係)’에 의존했다. 창립 초기부터 정부와 인민해방군 사업, 조달을 수주 받으며 성장했고, 알바 댓글 등으로 애국심 마케팅의 선봉에 섰다.

뿌리깊은 정경유착을 통해 풍부한 자금력을 갖춘 뒤 1997년 홍콩을 시작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2005년 수출이 내수 매출 규모를 넘어서면서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로 업그레이드됐다.

화웨이의 성공에는 물론 시장 요구를 충족시키는 성능·가격 경쟁력이 뒷받침됐다. 2010년대 초만 해도 화웨이 장비가 “싸긴 하지만 성능이 시스코, 에릭슨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술력 확보를 통해 단시간에 세계 최고 수준을 따라잡았다.

삼성·애플 위협···특허보유 세계 1위

화웨이는 주력분야가 이동통신 설비지만 휴대폰과 태블릿 컴퓨터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최근엔 TV 등 가전 영역으로 제품라인을 확장하고 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016년 삼성, 애플에 이어 3위로 올라선 이래 3강 구도가 유지되고있다.

국내에는 2014년 화웨이 아너 6를 LG유플러스 전용폰으로 내놓으며 본격 진출했다. 이후 화웨이 Y6, 넥서스 6P를 출시하면서 점유율을 조금씩 높여가고 있다. 국내 3위 통신사업자인 LG유플러스가 화웨이 파트너가 된 데 대해 비판여론이 거세지만 아직 결정적인 반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세계시장에선 화웨이가 중국 공산당, 군부와 긴밀히 연관돼 있다는 의혹의 눈길이 여전하다. 미국이 화웨이 견제에 앞장섰다. 미 의회는 화웨이 통신장비가 중국 정부의 스파이 활동에 활용돼 국가안보를 해칠 수 있다며 미국시장 진출을 사실상 봉쇄했다. 이어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대만, 일본 등이 이에 동조했다.

캐나다의 경우 국가안보 위해 가능성을 들어 5G 분야에서 화웨이 장비를 원천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도 국가기관, 공공기관 통신장비 조달 시 사이버 공격과 정보유출 가능성이 있는 장비 구입을 지양하겠다고 밝혔다. 서방국가들이 문제삼고 있는 부분은 정보유출 기술인 화웨이 통신장비의 ‘백도어’다.

사실 화웨이만큼 기업활동이 온통 논란 투성이인 기업도 흔치 않다. 정경유착부터 중국 국가정보법에 따른 감시·감청·검열, 기술·영업기밀 탈취, 지적재산 복제, 해킹, 특허 침해, 성능 조작까지 그 리스트는 끝이 없다. 통신사업 영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편법·탈법을 망라한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는 트럼프 행정부 들어 무역갈등과 맞물리면서 더욱 강력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화웨이와 또 다른 중국 IT기업인 ZTE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국방수권법을 발효시켰다. 화웨이와 거래하는 외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사이버안보와 기술패권을 둘러싼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하지만 문제가 단순하지만은 않다. 경제논리가 작동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화웨이 배제원칙에 동의하면서도 온도차가 사뭇 다르다. 유럽연합(EU)는 최근 화웨이 전면금지 대신 보안위험 감축 대책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나라들은 아예 미국의 안보위협 경고를 과잉반응이라 일축하며 화웨이와 거래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화웨이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을 따르자니 중국시장과 투자를 잃을 것이고, 화웨이를 택하자니 미국시장 불이익이 걱정되는 것이다. 한국도 그 중 하나다. 검증이 필요하다고 외치면서도 정부 차원에서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http://www.srook.net/tennispeople/636903135781929730?pageNo=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