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점수가 없으면 대회 출전이 어려운 것이 테니스다.

테니스는 일정한 랭킹 점수가 있어야 예선도 출전하고 점수가 많으면 본선에 자동출전한다.   한점도 없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대회 대진표에 이름을 올리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나라 많은 주니어들이 국제대회 점수를 1점이라도 얻으려고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며 애를 쓴다.  

일단 점수를 받으려면 본선 1회전에서 승리를 해야 하는데 본선 와일드카드가 점수를 받는데 지름길이다. 점수가  없는 선수가 본선 와일드카드를 받기 어려우면 예선 와일드카드를 받으면 된다. 그러면 예선에서 최소한 전승을 해서 본선에 올라 1승을 하거나, 예선 결승에서 지더라도 경기장 주변에 어슬렁 거리다 본선 1회전 출전 선수가 갑자기 배탈 등이 나서 경기를 못하면 대신 출전하는 럭키루저로 본선 출전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이런 기회를 잘 살려 본선에서 1승을 하면 1점을 딸 수 있다.

이렇듯 테니스 선수가 1점을 따는 과정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필자는 최근 고양국제주니어아카데미 박상욱 코치로 부터 국제대회 와일드카드를 받아 출전해 점수 따는 과정을 들어 주니어선수를 자녀로 둔 부모와 지도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소개한다.

우선 국제랭킹 점수가 없는 선수의 점수 획득을 위해 박 코치는 멀리 스리랑카에서 열리는 대회를 택했다.   우리나라에서 먼거리이고 테니스가 활발한 나라가 아니어서 비교적  상위 랭커들의 출전이 어려운 대회다.  대진표를 자국선수로 다 채우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먼 비행시간이지만 출전을 감행했다. 예선 출전을 못하겠느냐 하면서.

문제는 출전권.   대회에 참가하기 전에 머리를 썼다. 레퍼리에게 전화를 하고 편지를 썼다. '열심히 하는 선수인데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국제대회 성적이 필요하다. 점수가 하나도 없으니 단식 예선 와일드카드라도 제공해 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내용이 주다.  단식이 안되면 복식이라도 와일드카드를 달라는 내용을 덧붙였다.  일단 이메일로 보내고 나서 대회 직전에 도착해 레퍼리를 찾았다.

레퍼리에게 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편지를 선수로 하여금 직접 전하게 하고 답변을 기다렸다. 아울러 비행기를 여러번 갈아타고 16시간이상 비행시간을 거쳐 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 스리랑카. 우리나라에서 가려면 비행시간이 16시간 걸린다

대회 레퍼리로부터 얻은 답변은 자신에게는 권한이 없으니 토너먼트 디렉터를 접촉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박 코치는 토너먼트 디렉터의 전화번호를 달라해서 전화를 하려고 하니 레퍼리가 말렸다.  "전화보다는 편지가 좋다. 저쪽에 가면 대회 코디네이터가 있으니 그녀를 통하면 토너먼트 디렉터에게 내용이 전달될 것"이라는  도움말을 레퍼리로부터 얻어냈다.

그 즉시 박코치는 종이를 꺼내 앞에 기술한 내용을 자세히 적고 제발 예선 와일드카드하나만이라도 달라는 내용을 썼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편지에 사인을 하게 하고 코디네이터에게 직접 전달하게 했다.  코디네이터는 편지를 받더니 두시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코디네이터는 전화로 토너먼트 디렉터에게 부지런히 내용을 전하더니 좀더 기다려 보라는 손짓을 창문 너머로 했다. 

시간은 흘러갔다. 이러다 16시간 비행기를 다시 타고 가야하는 것은 아닌지 초조한 것은 코치뿐 아니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렵게 모은 돈으로 대회 출전의 모험을 강행했는데 수포로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들이 스쳤으리라.

코디네이터 사무실 앞에서 턱을 빼놓고 기다리다가 두시간 뒤 코디네이터로부터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받았다.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첫 말은 "굿 뉴스".   레퍼리에게 이야기 해놓았다하고 경기 잘하라는 격려를 받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야호! 선수와 코치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복식 본선 와일드카드와 단식 예선 와일드카드를 받아낸 것이다.

이제부터 경기만 잘 하면 되는 것이었다.  결과는 단식 예선을 거쳐 본선 8강성적을 냈다. 복식에선 4강이나 들어. 단 1점이 아닌 10점 이상을 얻었다. 결과는 대 성공.     와일드카드를 준 대회본부와 레퍼리에게 감사인사를 했고 레퍼리에게는 수시로 캔음료를 제공했다.

박 코치는 또한 경기내내 한마디의 어필도 하지않고 스마일표정으로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물론 코트에서 영어로 선수들에게 화이팅을 주문했다. 소리가 워낙컸던지 외국인들의 관심꺼리와 폭소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말로 하면 코치를 한다는 주의를 받았다. 그래서 영어로 말을 하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   화이팅 주문, 집중하라는 주문이었다.   아무튼 1차대회는 잘 마쳤다. 문제는 다음 2차대회.

복식 4강을 하느라 2차대회 단식 예선을 출전하지 못했다. 복식 4강 점수로 2차대회 단식 본선에 자동 출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민박집에서 대진표를 보니 단식 본선 대진표에 두 선수의 이름이 빠졌다. 다음날 부랴부랴 대회 레퍼리를 찾아 이야기를 했다. 1차대회 복식 4강을 치르느라 2차대회 단식 예선을 못 치렀다. 본선 스페셜 이그잼프(SE: 특별대우) 대상인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니 레퍼리와 토너먼트 디렉터가 유심히 보더니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더니 대회장 방송을 통해 대진표가 잘못되었으니 다시 짠다는 말을 알렸다.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냥 넘어가자고 대회본부에서 할 일을 인정하고 수정에 들어간 것이다.

대회본부에서는 단식 본선 와일드카드를 받은 자국 선수에게 설명을 하고 멀리 한국 선수를 포함해 대진표를 다시짰다.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국 선수를 제치고 외국 선수에게 공정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결국 단식 본선에서 2회전에 진출해 점수를 보탰다. 복식에선 4강에 다시 올랐다.   이들 선수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은 점수는 총 35점.  한 선수는 그동안 점수가 하나도 없고 노랭킹인데 단식 20점, 복식 7.5로 27.5점을 단박에 따내 이제 와일드카드없이 4~5그룹대회에는 자동 출전할 수 있게 됐다.

 

▲ 단식과 복식에서 각각 20점,30점을 획득했다. 총점에서는 복식 점수를 할인해 보탠다. 그래서 총 27.5로 노랭킹에서 1000등에 이름을 올렸다.

 

▲ 스리랑카 대회 복식 4강 두번을 들어 30점을 획득한 선수의 성적표.

 

 결론적으로 세상에 마음 먹으면 안되는 일보다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긍정적인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도전을 하면 대회에도 출전하고 경기에서도 좋은 플레이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리랑카라는 나라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꽤 합리적인 사람들이 대회를 운영하고 유연성도 있다는 점이다. 사정을 이야기하면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한가지 사례로 합리적인 나라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진인사대천명하듯 테니스를 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아무튼 남부여대식으로 멀리 대회에 출전해 좋은 결과를 얻어낸 선수와 지도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스리랑카 테니스협회 로고. 1915년에 협회가 만들어졌다

스리랑카 테니스 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