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나달과 접전을 펼칠 수는 있다. 그러나 결국 작은 차이에서 무릎 꿇는다.

정현(한국체대, 삼성증권 후원, 55위)은 1일(이하 한국시간) 롤렉스 파리 마스터스 2회전에서 세계 1위 라파엘 나달(스페인)에게 5-7, 3-6으로 패했다.

이날 정현은 예상대로 정면승부로 나섰다. 둘은 첫 포인트부터 무려 18차례나 랠리를 하며, 강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세계 1위 나달이라고 하지만, 그에게도 긴장감이 가득해보였다. 초반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파워 스트로크' 정현 VS '위기탈출 넘버원' 나달

1세트 정현은 1-1에서 포핸드 다운더라인 위닝 샷을 성공시키며, 첫 브레이크를 했다. 굉장했다. 그러나 정현은 바로 브레이크를 당해 2-2 원점으로 돌아갔다.

곧 이은 나달의 서브게임에서 정현은 끈질긴 랠리와 리턴앤 발리로 트리플 브레이크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나달은 역시 위기탈출의 신이었다. 강력한 서브, 날카로운 패싱샷, 노련한 강약조절로 5포인트를 내리 따내며 결국 자신의 서브를 지켰다. 올시즌 50%가 넘는 서브게임 수비율을 증명한 것이다.

절호의 브레이크 기회를 놓친 정현은 이후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내리 2게임을 잃었다. 여기서 판가름이 나는 듯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현은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가볍고 재빠른 스트로크에 이은 신속한 리커버리로 추격을 시작했다. 견고한 포핸드로 나달을 좌우로 흔들어 브레이크에 성공했고, 또 다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압박감

5-5까지 추격한 정현은 기회가 날 때마다 공격을 시도했지만, 이 때부터 나달의 리턴 움직임이 달라졌다. 게다가 정현의 샷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볼이 바운드되는 지점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앞뒤로 현란한 스텝을 밟았다. 단 0.1초 만에 흐름을 전환하는 나달의 세밀한 전술이 정현의 템포를 뺏은 것이다.

5-6으로 밀린 정현은 결국 1세트 세 번째 브레이크를 당했다.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키고 타이브레이크 승부에 돌입할 수도 있었지만, 중요한 고비에서 압박을 받았다. 심리적으로 부담을 떨쳐내지 못한 채 더블폴트까지 범하며 러브게임으로 1세트를 내줬다.

종이 한 장 차이도 큰 차이다

2세트에선 정현이 나달의 볼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정현은 나달의 노련한 템포 조절을 간파해, 무리한 공격보다는 빠른 리커버리로 맞대응했다. 1-2에서 정현은 자신의 서브게임을 12분 16초간의 접전 끝에 지키며, 역전 기회만 노렸다.

하지만 정현은 3-4에서 실력과 경험의 차이가 드러났다. 또 다시 더블폴트를 범한 데다, 백핸드 샷이 두 차례 네트에 걸리고, 포핸드 샷이 사이드라인 바깥으로 빗나가면서 3-5가 됐다. 이후 나달은 황소처럼 돌진하는 플레이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날 정현은 세계 1위 나달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연출했다. 나달을 상대로 정현은 준비한 전술을 모두 풀어냈지만, 세밀한 경험 차이에서 오는 숙제들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