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속사진) 두꺼운 임팩트 직후, 와이퍼 스윙으로 라켓 헤드만 돌리고 있는 아드리안 마나리노

마나리노가 ATP 투어에서 살아남는 이유는 흡수력이다.
 
아드리안 마나리노(프랑스, 31위)는 지난 6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열린 라쿠텐재팬오픈(총상금 156만4천달러/ATP500시리즈) 8강전에서 일본의 새로운 희망 스기타 유이치(40위)를 1시간 52분 만에 6-2, 6-4로 물리치고 500시리즈 첫 4강에 진출했다.
 
이전까지 기자는 마나리노를 방송 중계 화면으로만 봤다. 모니터로 본 그는 투어급 선수지만, 올해 1월 호주오픈시즌 컬렉션 나이키 의류와 바볼랏 2013년 버전 나달라켓을 사용하며 다른 선수들에 비해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마나리노는 겉모습에 비해 올해 성적표는 굉장했다. 7월 터키 안탈랴오픈(ATP250시리즈) 준우승, ATP마스터스 8강에 1회, 16강에 3회 진출했으며, 윔블던 16강에 오른 바 있다.
 
이날 기자는 그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인 5m 앞에서 취재했다. 별 거 없어 보이는 스윙과 몸동작이었으나, 이 선수에겐 투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노하우가 있었다.
 
어떻게 스기타를 이길 수 있었을까. 마나리노는 이날 경기 전까지 스기타에 상대전적 2승 1패로 앞서 있었다. 상대전적으로 봤을 때는 유리할 수 있었으나, 마나리노는 일본 관중들과 스기타를 포함해 9,500대 1로 싸웠다. 이 분위기 속에서 그는 힘을 앞세우기 보단 침착한 대처로 스기타를 야금야금 괴롭혔다.

▲ 이날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이 약 9천 5백명이었다

마나리노의 키는 180cm로 크진 않지만, 왼손잡이의 슬라이스 서브는 사이드 깊게 빠져나갈 정도로 까다로웠다. 포핸드 테이크백은 크지 않지만, 두꺼운 임팩트 후 와이퍼스윙이 마치 채찍질을 하는 듯 했다. 스기타의 강한 볼을 손목회전 스윙으로만 터치하며, 상대의 힘을 역이용했다.
 
스기타는 관중들의 응원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지며 경기를 풀어나갔다. 마나리노의 끈질긴 리턴으로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번번이 에러가 나왔다. 경기 후반에는 점점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날 마나리노의 승리 비결은 체력소모 없이 라켓회전으로만 상대의 파워를 흡수한 것이었다.
 
마나리노는 ATP투어 선수다운 품위나 인기도는 떨어진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무기는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알 수 있다. 따라서 전력분석 자료를 참고한다 해도, 막상 코트 위에서는 상대하기 힘든 선수라는 것을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