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씨가 국무총리에 지명됐다. 언론인 출신으로는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최남선의 동생 최두선 씨가 1963년 박정희정권 첫 총리로 임명돼 정일권 씨에게 넘겨줄 때까지 약 6개월 동안 재임한 일이 있었다. 2002년 김대중 정부 말기에는 <매일경제> 장대환 회장이 지명을 받아 관행에 따라 국무총리서리가 됐지만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됨에 따라 20여일 만에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당시 원내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정실과 오기에 따른 DJ식 파행인사가 빚은 예고된 참극”이라고 논평했다. 어쨌든, 최두선 총리나 장대환 총리서리는 모두 언론사 사장을 지냈을 뿐 직접 붓대를 잡지는 않았기 때문에 문창극 씨가 기자 출신으로 첫 번째 총리후보에 오른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나는 문창극 씨를 직접 만난 일이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언론계의 평판과 <중앙일보> 선후배들의 인물평은 어느 정도 듣고 있다. 또 문 씨에 대한 개인적 일화와 그의 글 등으로 갖게 된 일정한 인상과 개인적 평가도 갖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아는 한 문창극 씨는 언론인으로서의 자질이 많이 모자란 인물이고 인간적으로도 아주 속된 사람이다. 바꿔 말해 문창극 씨는 존경할 만한 구석이 없는 언론인이고 인격적으로 존중하기에도 망설일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총리지명 발표 직후에 그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은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거의 없이 폄하하는 견해를 굳이 밝힐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내 개인으로는 문창극 씨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코멘터리>를 쓰는 입장에서 느끼는 책무감에 따라 세평에 한 마디를 보태기로 했다.

가장 먼저 문 씨는 보수와 극우를 넘나드는 극단적 사고의 소유자다. 일일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언론매체들이 그가 칼럼과 강연에서 개진한 문제성 발언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새삼 덧붙일 필요가 없을 듯하다. 다만 그의 이념·정치적 입장은 우리나라의 기득권층 가운데 유별난 것이 없고 완전히 금지선을 넘는 것은 아니라서 원론적 허용범위 안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청와대 대변인 발표처럼 “강직하고 소신 있는 언론인”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든다. 정 그렇다고 생각하는 측은 문 씨의 어떤 글과 주장이 강직하고 소신이 있는 대목인지 예를 들어주면 토론이 가능할 것 같다. 반칙발언을 남발해서 실정법 처벌 대상인 지만원 씨도 천 마디 중 한 마디는 맞을 수 있고, 보수 논객의 대표 격인 조갑제 씨는 더러 바른 말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창극 씨는 하나마나한 ‘뻔한 소리’말고 특별히 바른 말이나 맞는 주장을 펼친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우익도 옳은 말은 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다음, 문 씨는 기득권 언론인의 대표적 존재다.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는데 그 출신 언론인 가운데 내 기억에 남은 사람들은 그리 훌륭한 인물이 없었다. 대표적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온 김인규 전 KBS 사장은 본부장 시절 인사 청탁을 위해 사장 집을 찾아다니고, 노무현 정부 때는 야당인 한나라당 추천 방송위원으로 내정된 다음 열린우리당에 접근해 여당 몫의 방송위원을 하고 싶다고 비밀 교섭을 벌인 사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명박 씨에게 접근해서 KBS 사장이 되겠다는 평생소원을 이뤘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다음 부사장으로 데리고 있던 길환영 씨를 사장으로 밀어 결국 청와대 외압 파문이 이는 데 일조를 했다. 같은 학교에서 똑같이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야당 정치인 김아무개 씨는 기자 시절 국방부에 출입하면서 “나는 해직기자 출신이니까 촌지를 못 받은 기간을 감안해 봉투를 두 개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는 전설을 남겼다. 또 하버드대 니먼 펠로로 선정돼 미국을 가기 전에 각군 참모총장을 찾아다니며 빨대처럼 전별금을 받아 챙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문창극 씨는 서울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라는 연고와 간판을 최대한 활용한 언론인 가운데 하나다. 서울대출신 관악언론인회 회장을 지내고 서울대 언론인 대상을 받은 것은 물론 현직인 서울대 초빙교수 자리도 총동창회에서 급여를 지급할 정도로 인맥을 유지해 왔다. 문제는 그가 취재기자로서 능력을 발휘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고 대표적 특종 기사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평소 많은 지식과 높은 식견을 가졌다는 평도 들어본 적도 없다. 오래 전에 기자협회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예상 밖에 호응을 얻지 못해 결국 낙선했던 기억은 난다. 물론 <중앙일보> 주필을 지내면서 신문편집인협회 회장이 돼서 잃었던 체면을 약간 만회하기는 했다. 그러나 관훈클럽 총무를 지낸 것도 주류 언론인 계열에서 한껏 혜택을 누렸다는 징표일 뿐이다. 후임자로 <한겨레신문> 출신을 추천함으로써 대범한 제스처를 보인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이 역시 대학 후배였다.

칼럼니스트로서 문창극 씨는 초라하기만 하다. 물론 일부 보수 계층은 그의 글을 높이 평가했을 수도 있겠는데 내가 볼 때는 전반적으로 수준 이하였다. 물론 문법상 말은 되지만 내용에서 새로운 생각이나 주장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좀 진부함을 벗어난 경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 공격했을 때 정도였다. 이마저 기본적 예의와 공정성을 결여한 채 심한 말을 퍼붓는가 하면, 비난의 근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중평이다. 평소 칼럼에서 펼친 주장이 범용했는데 특정 인물에 대한 공격은 이처럼 튀었다는 것은 그가 재벌 신문에서 온갖 요직을 누리며 일했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의 칼럼은 사주의 사견을 대변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전에도 지적한 바 있지만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언론사 세무조사로 자신을 전과자로 만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강한 원한을 품고 있었다. 또 주미대사를 하다 이른바 X-파일 사건으로 낙마한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깊은 유감이 있었다. 따라서 문 씨 칼럼의 관련 발언은 재벌 외척의 마름으로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문창극 총리지명자는 관상이 좋은 편이다. 후덕한 인상에다 글은 몰라도 말은 심하게 하는 것이 없으니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일단 호감을 느낄 만도 하다. 하지만 <중앙일보> 편집국에서 일해 본 사람들은 삼성과 <중앙일보>의 기업문화가 어떤지 잘 안다. 1970~80년대 기자실에서 <중앙> 기자들은 개인차는 있지만 잠시도 안절부절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가 경쟁을 중시하고 기사 물 먹는 것을 잘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기자 가운데도 의외로 매너가 안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예컨대 <중앙> 김아무개 기자는 국방부와 청와대를 각각 출입했는데 국방부에서 나온 기사는 “청와대에 따르면…”이라고 쓰고 청와대 가 출처인 기사는 “국방부에 따르면…”이라고 썼다. 이를 간파한 타사 기자들은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라고 그를 놀렸다. 그런데 문창극 씨와 문제의 김아무개 기자가 한 부서에서 일할 때 의견 충돌이 잦아 하루는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맞장 뜨자”면서 함께 나갔다는 것이었다. 둘만의 일이라 후일담은 못 들었지만 모두 성격이 만만치 않았던 같다.

어떤 <중앙일보> 직계 선배는 “중앙일보 출신 가운데 공직에 가서는 안 될 인물을 한 사람만 들라면 문창극”이라고 말했다고 전해 들었다. 이유를 물으니 “그보다 교만하고 버릇없는 기자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다분히 주관적인 평가라 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근거자료로서는 충분치 않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하면서 윤창중 같은 자들은 많이 봤지만 문창극 같은 자는 없었다”라고까지 한 것을 보면 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장점도 있기 마련이다. 또 동업자 출신으로 문창극 씨의 총리 임명을 돕지는 못할망정 굳이 “쪽박을 깨는 듯한 모습”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하고 많은 언론인 출신 가운데 겉만 멀쩡하고 속은 텅 빈 사람을 고른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파행인사는 윤창중에서 김기춘으로 이어졌고, 안대희에서 문창극에 이르렀다. 앞으로 문창극 씨의 전력에서 어떤 문제가 드러나 총리인준 과정에서 낙마할 수도 있고, 그런대로 넘어가서 총리를 한동안 지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일생을 재벌 신문에서 심부름을 하고 동창회 인맥으로 서울대 초빙교수나 하는 인물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저 형편없는 문창극 씨에게서 미처 몰랐던 장점이 드러나기나 바랄 뿐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더 이상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저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고, 저렇게 식견이 부족해서야 대통령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박 대통령 주변에 속 넓은 인물은 없고 편협하면서도 무능한 인물들뿐이다. 반반한 얼굴에 학별 좋고 겉으로 유능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저 남은 임기 동안 큰 문제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지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