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송파구 오륜동에 있는 오륜 테니스 코트를 찾았다.

잠시 오륜코트의 신태진 코치와 커피 한잔 하고 있는 사이 라커룸의 문이 열리며 주니어 선수가 들어선다. 유현호(전곡중 2년)다. 유현호는 전곡중학교를 다니면서 방학동안 이곳에서 오전 오후 집중적으로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유현호는 테니스를 초등학교 5학년때 시작했다. 여타의 주니어 선수들에 비하면 늦어도 한 참 늦었다. 시작이 늦었기에 일찍 시작한 선수들에 비해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간 간격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성장했을때의 성적은 분명 달라질게다. 그의 부모는 당연하거니와 그를 지도하고 있는 신태진 코치,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다. 물론 기자도 그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중의 한 사람이다.

유현호 선수의 등장에 이어 부모가 따라 들어왔다. 아버지(유승엽.43)는 초등시절 선수였다가 코치생활을 했었다. 그의 엄마(박지연.41)는 중앙여고를 거쳐 대학시절(명지대)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면 분명 그의 몸에도 테니스에 대한 유전자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유현호는 테니스가 너무 재미있다 한다. 요즘 그의 어머니는 바쁜 점심시간(유승엽씨 부부는 송파구청 건너편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이 끝나면 코트에 나와 자신의 아들과 시합을 한다. 

선수를 키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

점심시간이 끝났다.  동시간대에 갑자기 몰려온 손님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경기가 좋으면 사람을 많이 두어 좀 편하게 일하겠지만 최대한 긴축하여 운영중이다. 덕분에 자신이 1인 2역은 기본이요 3역까지 해야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요즘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란다. 몸이 무겁다. 좀 쉬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는 찰나 남편이 말을 건넨다. 

"오늘 현호가 엄마보고 한게임 하자고 하는데?" 나이 40이 넘어 어린 아들과 단식 몇 세트를 뛴다는 것은 사실 고역이다.  어제도 3세트를 뛰었다. 그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은 채로 몸에 그대로 남아있다. 내 몸이 힘든 것보다 아들의 연습이 우선이다.   지친 몸은 웃음 뒤에 숨긴다.  " 그래? 그럼 코트로 가야지~"  엄마는 그렇게 남편과 아들과 함께 코트로 왔고 자신의 구두를 벗어 가지런히 놓는다.

       "그래...지금 내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이라면 난 내 몸이 부셔져도 할 수 있어" 가방에서 라켓을 꺼내고 운동화 끈을 질끈 묶는다. 은근 비장함도 든다. 뿌드드한 몸을 스트레칭으로 푼다. 이렇게 보니 아들의 키가 부쩍 컷다. 어릴 적 병원에 참 많이 데리고 다녔던 아들이다. 죽을 고비도 넘겼다. 신께 제발 우리 아들 살려달라고 하릴 없이 눈물로 기도했다. 생각해 보면 참 많이 울었던 때다. 그런 아들이 지금  내 앞에서 나를 보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어느새 피로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절로 엔돌핀이 솟는다.   

 그 옆에서 아버지는 카메라 삼각대를 만지고 있다. 둘의 게임을 녹화할 휴대폰을 설치할 삼각대다. 아들은 아버지와 엄마의 꿈이자 희망이다.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이 실현해주길 바라는 맘 간절하다. 그러나...그리 안된들 어쩌랴. 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을 일을 하고 산다면 아버지로서 그것만으로도 족하리라.

                     아들과 아내가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동안 아버지는 삼각대를 설치하고...

                     황토 빛 코트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라인을 그었다.   깨끗하게 정리하고 반듯하게 라인을 그으면서 아버지는 생각한다. " 이 일을 평생해도 괜찮다...아들이 볼 만 잘 칠 수 있다면..."  라인을 다 긋고 잠시 코트를 바라본다.  깨끗하게 정리된 코트는 아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아내와 아들이 스트레칭을 끝내고 코트로 들어섰다.  새 볼을 그들에게 던져 준다.  깨끗이 정리된 코트, 새로운 테니스 볼, 이제 아버지는 코트의 라인 밖에 나가서 그들을 지켜 보며 휴대폰으로 녹화 할 차례다.

5분간의 워밍업이 시작됐다. 엄마의 몸은 여전히 찌뿌둥하다. 그래도 라켓을 몇 번 휘두르니 운동 열심히 했던 그 시절이 자연스럽게 몸에서 배어 나온다. 아들에게 시작하자 했다. " 엄마..몸 더 풀어야 하는데?" 한다.  " 이쁜 녀석...이럴땐 남편보다 낫단 말이지~ ㅎㅎ" 웃으려고 생각지도 않는데 절로 웃음이 나온다.

" 엄마 괜찮으니 빨리 시작하자" 하니 " 서브 두 개만 넣고요~" 라고 대답하고는 서브 연습을 한다. 아들은 오늘 오전 서브 연습을 했다.  지켜보니 어제 보다는 많이 좋아진듯 하다. " 그래...네가 성장하는 것이 엄마 아빠의 기쁨이란다 "

 네트에 같이 섰다. 아들과 함께 게임을 하기 위해 악수 하는 것은 언제나 두근거림이고 즐겁다. " 아들...오늘은 어제보다 쫌 만 더 잘하렴"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들은 알까? 

아들이 사진을 한 번 더 찍자 한다. "왜?" "그냥~ V하고 찍게~"  다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했다. 아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장난끼 많은 녀석...분명 내 머리 뒤에서 장난질 하고 있을 게다.

가위 바위 보로 토스를 했다. 내가 이겼다. 아들에게 먼저 서브를 넣으라고 했다.  오늘은 어떻게 게임을 해줘야 아들에게 도움이 될까? 봐줘가면서? 전력을 다해? 자신감을 위해서는 가끔씩 맞춰줘야 하고 강한 멘탈을 위해서는 또 전력을 다해서 게임을 해줘야 한다. 항상 어려운 문제다.

 아들이 서브를 넣었다.  제법 강하게 플랫 서브로 들어온다. 어제보다는 스타트가 좋다. 그래...매일 매일 이렇게 조금씩만 성장해 주렴.

아들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 시켰다.  브레이크는 시켰지만 그래도 아들의 샷이 괜찮았다.

 1세트... 아들에게 "0"을 먹였다.  자식의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른게 엄마라지만 게임에서는 아들에게 빵을 먹이고 싶지는 않다. 

1세트가 끝나고 엔드 체인지다.  아들은 "0"먹은것에 마음 상한 듯 얼굴이 굳어 보인다. 애써 아들의 눈빛을 외면한다. 

 길게 보냈다 짧게 놓고, 또 또박 또박 받아 넘기고 로브 띄우고... 빠른 볼에 익숙한 아들은 체인지 업 위주의 내 볼에 많이 힘들어 한다. 그러나 나의 볼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다. 아들에게 있어 나의 볼은 넘어 서야 할 첫 번째 관문이다.

강하게도 때려 보고, 드롭 샷을 놓기도 하고... 그러나 자꾸만 에러하자 아들이 신경질 적으로 변한다.

어찌해야 할까? 살짝 맞춰줘 볼까?  다시 또 마음에서 갈등이 인다.  " 아들...엄마는 널 믿는단다. 넌 분명 금새 엄마를 넘어 설거야. 자신감을 가져~"                     아들이 짧아진 볼을 달려와 위닝샷을 날렸다. 나의 미스샷이다 .  2세트  듀스 끝에  한 게임을 내가 졌다.  내가 졌는데 막 웃음이 나온다. " 아들...너무 잘쳤어~ 멋져~"              엄마의 칭찬에 쑥쓰러웠을까? 아들이 고개를 숙이고 씩 웃는다. 그래...그렇게 웃으렴...테니스를 즐겨야 넘어 설 수 있단다.

 아들이 조금은 살아 났다.  강력하게 때리는 볼...많이 아웃 되고 에러 했지만 내가 꼼짝하지 못한 볼도 많았다. 그리고 간신히 받은 볼, 받았어도 밀린 볼도 많았다.  아들의 볼이 강해져 좌우 코스로 볼을 보냈다. 그래도 제법 잘 뛰어 라켓에 볼은 맞춰 넘기려 한다.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 그래...지더라도 그렇게 열심히 해야해~"

 웃음으로 시작해서 굳었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다시 웃음을 찾았다. 세트 후반에 갈 수록 볼이 좋아지고 있다.  게임도 이제 일방적이 아니라 제법 스코어가 간다. 듀스 게임도 몇 게임을 했다.  아들에게 서브 에이스도 먹었다. 그래도 아직은 아들에게 져줄 수 는 없다.  강력하게 넘어오는 볼에 반격을 가했다.

2세트는 아들이 두 게임을 땄다.  6-0 6-2로 이겼다. 아들이 한 세트 더 하잔다. 

"네가 열심히 했으니까 엄마 쫌만 쉬었다가 한 세트 더 해줄께" 라고 답해줬다.

아쉽게도 3세트는 약속이 있어 보지 못하고 왔다.  이 들 뿐만이 아니라 자식이 테니스 선수인 부모들은 모두가 같은 마음일게다.  좀 더 좋은 선수를 넘어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를 말이다.  세계적인 선수는 누가 키우는가?  부모의 제대로 된 생각과 제대로 된 지도자의 교육, 그리고 사회적인 지원을 앞세워 충분한 시간이 키우는게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