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눈먼 돈'이 3가지 있다. 보조금과 보험금, 그리고 정부급여금이 그 3가지다. 이들 돈은 특정 집단의 아는 사람끼리, 최대한 속이고 부풀려서, 종종 정당한 근거와 대가 없이 타내는 것이 예사고, 흔한 말마따나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인 것이 특징이다. 이런 관점에서, 사보험이 지급하는 보험금을 제외하고는 보조금과 공보험의 보험금, 정부급여금이 사실상 정부 세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정부가 쓰는 거의 모든 지출금이 눈먼 돈이라는 뜻이 된다.

첫째, 보조금은 정부가 각종 명의로 개인과 그룹, 기업과 단체 등에 현금 또는 세금감면 형태로 지급하는 국고지원을 말한다. 둘째, 보험금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고용보험, 공무원·군인연금 등 공보험과 생명·손해보험 등 사보험에서 요건을 갖춘 피보험자에게 지급하는 돈이다. 셋째, 정부급여금은 협의로는 복지급여와 보훈급여 등을 뜻하지만 광의로는 공무원 및 공기업 임직원 보수와 구매물품 및 관급공사 대금, 정부가 지급하는 보상 및 배상금 등 정부 재정에서 사인, 법인, 단체에 지급되는 모든 지출금을 아우른다.

먼저, 보조금은 정부가 지급해야 할 의무가 없는 돈이다. 다만 우리 사회의 이익집단들은 입법부와 행정부에 대한 공식, 비공식 로비활동을 통해 공익이라는 명분으로 국고보조금 지원의 근거 법률을 입법화해서 자신들에게 돈을 쥐어주도록 만든다. 국회의원들은 관련 업계나 단체의 발전을 위한 비교적 순수한 동기에서, 또는 자신의 출신 직업이나 지역구의 이익을 위해 보조금 지급을 발의하거니 찬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고 보조금 예산 배정에 대한 대가로 선거구내 유권자들의 지지 약속과 공식적 정치헌금, 강연료·원고료·자문료 등 형태의 비공식 지원금, 특정 사안과 관련한 사례금과 뇌물, 향응·접대 등을 챙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행정부 공무원들은 해당 부처 담당부서의 관련 법규 제정과 인·허가권, 행정지침 및 지도 등과 함께 기금 관리와 보조금 지급이 관료들의 주요한 지배 수단이자 권력 기반이기 때문에 이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익단체들은 정기적인 선거에 따른 인적 교체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국회보다 관료제의 계속성이 보장되는 행정부처에 로비하는 것이 더 쉽고, 입법화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의회에 대한 로비가 중시되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한국과 일본에서는 행정부에 대한 로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입법부의 기능이 제한적이고 관료들이 국고를 틀어쥐고 있는 중국의 경우는 새삼 말할 것도 없다.

보조금이 흘러들어가는 대표적인 용처는 역시 농업과 산업, 연구개발부문 등이다. 교육부문도 사립 중고교에 대해 공립에 준해 국고 보조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액수가 매우 크지만 1995년부터 중학교육이 의무무상교육이 됐고, 고교진학률이 90%를 넘어 보편화돼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혜택범위가 넓다는 점에서 좁은 범위의 특정 집단에 보조금이 주어지는 여타 부문과는 차별성이 있다고 하겠다.

보조금과 관련해 낭비와 사기, 협잡이 가장 심한 경우는 1997년 IMF사태 직후 부실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위해 투입한 막대한 금액의 국고지원을 들 수 있다. 농업의 경우도 광의의 농업 지원액이 농업 생산액을 육박하는 불합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농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도시 서민이 값싼 수입농산물을 구득할 길을 제한해놓고, 도시민들보다 소득수준이 더 높은 농가들에 온갖 명목의 농업보조금이 주어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선진국이 복지지출 때문에 재정건전성을 희생하는 경우가 많다면 후진국은 주로 쌀과 빵, 식용유, 차량용 및 난방용 유류 등 생필품에 대한 보조금 때문에 재정적자를 키우는 경우가 흔하다. 문제의 본질은 일견 무해해 보이는 생필품 보조금마저 시장경제를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과 보조금 신청과 배정, 지급, 시용, 결산 등 전 과정에서 낭비와 협잡을 구조화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보조금은 관료조직을 비대하게 만들어 비용을 증가시키고 비효율성을 가중시킨다는 결정적 흠결이 있다. 특히 첨단산업과 환경기술, 중소기업, 문화예술에 대한 보조금은 전문성과 감시능력 부족으로 오용 또는 횡령되는 비율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