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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테니스페스탈로치, 이종훈 교장"어린이가 배울 수 있는 지식의 양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원주=박원식 기자  |  editor@tennispeop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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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6.01  07: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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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횡성 우천초등학교에서 테니스 남녀부를 창단한 후 강원도대회에서 준우승하고 남긴 기념사진(뒷줄 맨좌측) 백승복, (앞줄 맨좌측) 고은희

테니스 국가대표 백승복과 한국테니스 간판 이형택 선수를 길러낸 전 횡성 우천초교 이종훈 교장이 석사학위 논문에 등장했다. 강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전공 김남규씨는 2019년 2월 한 테니스인의 삶에 비춰진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에서 체육교육으로서 테니스 선수 육성 교육과 생활 체육 지도자로 70평생을 살아온 한 테니스인의 인생을 구술 생애사 연구 방법으로 '테니스인 이종훈의 생애사'를 정리했다.

이 논문에는 이 전 교장의 유년시절부터 자라온 성장과정의 이야기와 교사시절 일화와 테니스를 가르쳐 훌륭한 선수로 키우게 한 실제 지도법 등이 소개됐다.
이 전 교장은 초등교사로 재직하면서 강원대 대학원에서 선수지도 방법 등을 심도 있게 연구했다.이후 한국체육대학교의 테니스 아카데미 과정과 태국 방콕에서의 테니스 국제심판교육을 이수해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키웠다. 테니스가 초등학교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84년에는 횡성의 작은 시골마을 우천초등학교에 특기교사로 발령받아 선수를 길러내기 시작했다. 그의 특별한 선수육성 지도로 강원도가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남자초등부 우승이라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종훈 교장은 학교 체육으로 테니스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교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테니스 보급에 앞장섰다. 1969년 초임 교사 발령 이후 약 25년간 테니스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테니스 코트가 전무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테니스 이론 및 자세 교육을 중심으로 학교 체육으로써의 테니스를 보급해 나갔다. 전국소년체육대회 초등부에 테니스가 시범 종목으로 채택된 1984년, 횡성 우천초등학교에 특기자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테니스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무렵 가난했던 어린이들에게 테니스를 매개로 인성 및 체력 향상 교육을 하고 테니스 엘리트 선수 발굴 및 육성에 중점을 두었다.

‘사람이 우선이 되는 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위인전 읽기와 배려를 위한 체험 교육을 수행해 그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배려의 자세를 견지하도록 했다.
남의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갚도록 하고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함양하도록 이끌어 나갔다. 이때 지도한 선수가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였던 백승복과 이형택 등이다. 1992년 횡성군 둔내면 둔내초등학교 조항분교장으로 재직할 때 테니스를 학교 체육 프로그램으로 채택·실행한 결과, 엘리트 선수인 박하나, 박종한 등을 배출해냈다. 또한 방과 후에는 지역 주민들에게 테니스를 보급하는 등 지역과 학교 간의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열정을 쏟았다. 2005년 횡성군 강림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이후 ‘강림 스포츠단’을 창설해 재학생은 물론 주민들에게 테니스 외 5개 종목을 상시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2009년 우천초등학교의 교장 재임 시에는 홍성찬과 한재석이 미국에서 열린 메이저급 국제 테니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2011년 2월 42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친 후에는 4-6세의 어린 아동들을 위한 ‘Kids 테니스’를 자비로 운영하고 있으며, 가난한 스포츠 꿈나무들을 돕기 위한 ‘꿈나무 패트런(patron)’ 단체의 회장을 맡아 지금도 유망주들을 찾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본지의 톱 플레이어의 기술 코너에서 스승의 날에 즈음해 이형택 등을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로 첫 발을 딛게 한 이종훈 교장의 테니스 지도에 대해 '테니스인 이종훈의 생애사' 논문에서 발췌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 교장의 지도법에서 세계 정상급 테니스 선수들이 갖춘 인성 교육을 엿볼 수 있다. 편집자

   
▲ 1985년 전국테니스 초등부에서 우승한 후 이형택과 함께 기념 촬영

1984년 3월 횡성 우천초등학교에 테니스 특기 교사로 부임한 이종훈은 당시 전국소년체육대회 초등부 경기에 테니스가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자, 그 대회 출전을 위해 4, 5학년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여 지도하였다. 그 무렵 늘 오후 늦게까지 테니스장 철망에 매달려 구경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바로 이형택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형택에게 테니스 라켓을 쥐어 준 이종훈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이형택이 타고난 운동 신경과 승부 근성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끈질기게 가족들을 설득한 끝에 테니스부에 가입시켰다. 입문 초기부터 발군의 실력을 보이기 시작한 이형택은 3년 후인 1987년 전국종별테니스대회 초등부 남자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 기간 동안 이종훈은 선수이자 제자들인 테니스 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훈련을 하면서, 가장 먼저 사람이 될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식사를 중요하게 여겨 지극 정성을 들였고 늦은 시간까지 테니스를 지도하는 열성을 보였다. 또한 위인전을 의무적으로 읽고, 상호 토론하게끔 한 그는 ‘신의’와 ‘의리’를 실천하는 데 경기 규칙이 잘 제정된 테니스가 효과적이라는 신념이 매우 강하였다. 테니스를 통해 인성 교육을 실천한 그는 비록 테니스 기술이 부족하더라도 인성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교육의 지침으로 삼았다.

‘하늘은 그러한 자를 도와준다. 근심하지 말고 열심히 해라. 지금 공부 못 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서서히 공부도 잘할 수 있다. 규칙적으로, 최선을 다하면 문제될 게 없다.’라는 식으로 사기를 북돋아 주니까 학생들이 빠르게 성장했다. 그래서 테니스를 가르칠 때마다 인성 교육을 빼놓지않고 실시했다.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였던 백승복과 고은희, 이형택 등은 이때 지도한 학생들이었다.

이종훈의 교육 철학을 대변해주는 것은 다음과 같다.
‘We know the amount of food a child can eat, but no one knows how much a
child can learn.’ (우리는 한 어린이가 먹을 수 있는 식사의 양은 안다. 그러나 한 어린이가 배울 수 있는 지식의 양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라는 특유의 교육 철학을 가지고 ‘어떤 어린이든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라는 신념 아래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북돋워 주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훈련방법

테니스를 육성하는 학교는 대부분 스트로크나 서브와 발리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줄넘기는 무조건 필수로 몸을 가볍게 한 후 근력을 올리기 위해 악력기를 양손 모두 쥐고 악력 향상 훈련을 실시했다. 굵고 긴 통나무에 올라가 굴리기를 해가며 몸의 균형 잡기와 발바닥과 다리 근육의 힘을 길러주었다. 냇가에 나가 물놀이도 하며 둥근 돌만을 밟아가는 극기의 훈련도 했으며, 밧줄 감아올리기를 비롯한 오리걸음과 뒷산 오르기 등을 통과한 선수들에게만 라켓을 잡게 했다.

경기력 향상을 위한 스포츠 과학을 접목시킨 이종훈은 테니스 그립을 잡는데 용이한 악력 훈련과 근력 강화 훈련 등 테니스에서 유리한 기초 체력 훈련을 학생들에게 맞게끔 개발해 접목시켰다. 즉, 스트로크와 서브, 발리 등 세 가지 기술을 집중적으로 지도했다.


선수 선발과 지도법

이종훈의 테니스 선수 선발에 대한 노하우는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초등학교 전교생 중 남자 어린이들을 상대로 축구 경기를 하게끔 해 운동신경이 좋은 어린이를 선발했다. 축구는 인내력·지구력·민첩성 등을 기를 수 있는 단체 경기로 초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축구 선수로 활약한 이종훈은 축구를 잘하면 모든 운동을 평균 이상으로 할 소질이 있다고 보았다. 둘째, 이종훈은 당장은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어린이의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테니스 부원으로 가입시켜 훈련시켰다. 셋째, 이종훈은 테니스 부원들의 영양을 적극적으로 챙겼다. 넷째, 이종훈은 인성 교육을 우선으로 지도하였다. 권선징악과 고통 없이 결과 없다(No gains, without pains.)는 진리, 고진감래(苦盡甘來) 이 세 가지를 테니스부원들에게 수시로 주입시켰다. 다섯째, 이종훈은 제자들이 성인이 될때까지 자주 연락하면서 조언과 지도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제자들이 성장하면서 심리적 갈등을 느낄 때마다 애정을 아낌없이 전해주었다.


국가 대표 테니스 선수 백승복·이형택과의 만남

1984년 우천초등학교에 처음 만난 이형택은 당시 3학년이었다. 이형택은 5학년인 백승복의 추천으로 테니스 부원을 선발하기 위한 축구 경기에 출전했는데, 2년 선배들보다 월등한 체력을 선보여 합격점을 주었다. 테니스 부원이 된 이형택은 이종훈의 기대대로 기초 체력이 뛰어난 데다가 훈련에도 성실히 임해 테니스 선수로서의 자질을 향상시켜 나갔다.
또한 첫 만남부터 뛰어난 지도력을 보인 백승복은 테니스 부원의 주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는 우천초등학교 테니스 부원들이 각종 대회에 우수한 성적 을 거두는 데 큰 공헌을 해 이종훈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조회 시간에 6학년생을 제외한 1-5학년 남자 아이들을 조회대 앞에 앉혀놓고 축구시합을 하도록 했다. 누가 축구를 잘 하냐 그랬더니 모두 “백승복이요” 했다. 그래서 백승복이 나오니까, 저쪽에서 ‘임성환이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두 아이가 주장을 맡기로 하고 ‘가위 바위 보’로 이기면 선수를 뽑도록 했죠. 두 아이는 자기 입맛에 맞는 아이들을 추려갔죠. 백승복이가 이겨 ‘박철순’이라고 외치니까 박철순은 백승복의 뒤로 붙고, 임성환 이 이겨 ‘김성기’ 하니까 김성기가 그 뒤로 가는 식으로 하는 중에, 백승복이가 여섯 번째로 3학년이었던 ‘이형택’을 뽑았다. 마른 체형의 3학년 학생을 덩치가 좋은 5학년 아이들을 제치고 여섯 번째로 뽑은 게 이상했다. 경기에 들어가니 놀라운 것은 3학년 꼬마 아이였던 이형택의 몸놀림이었다. 백승복이 패스를 해주면 이형택이가 재빠르게 드리볼을 해가면서, 매번 한두 명을 제치면서 슛을 했다. 그래서 그 둘은 가장 먼저 테니스 부원으로 뽑아놓고, 임성환 등 모두 여섯 명을 선발했다.
아이들을 진짜 자식처럼 지도했다. 어두워 질 때까지 테니스 연습을 하는 아이들이 대견스러웠다.
‘계속 힘내라. 너희들이 지금 이렇지만 넌 크게 될 수 있어. 바르게 살면 반드시 하늘이 도와준다’고 되뇌였다.
학생들에게 하늘이 도와준다는 얘기를 늘 했다. 줄넘기로 ‘두 번 뛰기’를 할 때도 5학년인 백승복도 잘 못하는데, 3학년인 이형택은 ‘뒤로 두 번 뛰기’도 거뜬히 했다.

   
▲ 2000년에 서울에서 열린 국제 퓨처스 리그 결승전에서 1, 2위를 차지한 이형택(왼쪽)·백승복과 함께 기념 촬영

운동에 전념할 여건 만들어준 지도자

이종훈 선생은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테니스뿐만 아니라 가정 사정, 심리 상태, 교우 관계, 학습 정도 등 모든 면에 신경을 썼다.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 모든 선수들이 싫증을 느끼지 않게끔 테니스를 재밌게 가르치고 테니스를 손쉽게 하게 했다. 선수들이 열심히 운동을 했고, 당연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자장면 나눠먹기 교육

테니스를 하게 되면 이런 점이 좋고, 대회도 나갈 수 있으며, 좋은 성적을 거두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학생들에게 수시로 했다.

시골에서 아무리 운동해봤자 우물 안 개구리라면서 주말마다 도회지인 원주로 나가서 운동을 했다. 학생들에게 버스를 타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 서서히 눈을 트게 해주려 했다.

원주 제조창, 원주 시청, 횡성 우천 등지에서 테니스 훈련을 하는데, 선수 두 명당 자장면 한 그릇을 배분해 나눠먹였다. 교사 월급이 박봉이다 보니 한 명당 한 그릇씩 사주지 못했다. 이는 이후 여건이 아무리 어려워도 운동을 계속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동계 훈련을 할 때에는 쌀, 라면 등을 가져와 손수 밥짓고, 라면 끓여주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했다. 훗날 제자들이 테니스 지도자 생활을 하는 원천이 되게 했다.

선수들은 모든 선수들에게 먹을거리를 손수 장만해 나눠주고 끝까지 격려했던 이종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고 학생이나 선수는 지도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게 된다. 심지어 지도자에 대한 사소한 감정과 생각까지도 표현할 수 있다. 당연히 지도자는 학생이나 선수를 온전하게 도와줄 수 있게 되어 교육 및 훈련 과정에서 저항이 생겨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다.

지도자 원칙 네가지

이종훈 선생은 테니스 지도자 생활을 할 때 네 가지 원칙을 실천하고자 노력하였다.
첫째, 누구와도 타협한다. 단 자신과는 타협하지 않는다. 약속을 한 것은 꼭 지킨다.
둘째, 경거망동을 하지 않는다. 셋째, 건강해야 한다. 넷째, 테니스의 신이 된다. 불우한 사람 도와주고 못 먹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된다.

   
▲ 2014년 8월, 연변조선족자치주 소재의 도문시 제2소학교를 방문해 강연한 이종훈

하고 싶은 일

2014년 8월, 이종훈은 중국 연변 도문시에서 특별 초청 강연을 했다. 당시 이종훈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소재의 도문시 제2소학교를 방문해 강연한 것이다. 또한 연변 테니스 관련 인사들과 백두산 여행길을 함께 나서며 테니스의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이종훈의 중국 연변에서의 강연으로 인해 연변 테니스인과 선수들의 국내 방문이 성사되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도문시 지성소학교 5학년 리승림 등에 대해 횡성에서 패트런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처럼 이종훈은 테니스를 통해 훈훈한 동포애로 발휘했다. 이종훈 선생은 앞으로 북한어린이 테니스보급에 뜻을 두고 있다.

   
▲ 2012년 꿈나무 페트런 축제 나눔행사에서 주니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 2012년 꿈나무 페트런 축제 나눔행사에 참석한 이형택 원장(인쪽 두번째)
   
▲ 2018년 8월 8일 이형택재단 주최의 영월국제테니스대회 때 이종훈 선생의 격려 편지와 함께 사과 2상자를 선물로 전달했다

이종훈 (李宗薰)
1949년 12월 3일생 (72세)

학력

1967년 춘천고등학교 졸업
1969년 춘천교육대학 졸업
1992년 강원대대학원 체육과 졸업

경력

1969년~ 영월군 흥월초외 단계,명륜,우천,공근,조항분,덕고 교사
2000년 횡성군 둔내초등학교 교감
2005년 횡성군 강림초등학교 교장, 횡성군 우천초등학교 교장
2007년 강원초등체육연구회장
2009년 전국 꿈나무 패트런(patron)회장
2018년 강원키즈테니스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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