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팍팍한 한국인 운동 부족 심각해…
맘 편히 운동하게 국민을 돕겠다는 공약은 어디 있나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막판 세몰이에 나선 후보들은 하루 24시간을 분(分) 단위로 쪼개가며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그야말로 체력전이다. 이들이 '코피 터지는' 강행군을 견뎌낼 수 있는 건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체력을 다져온 덕분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단전호흡과 팔굽혀펴기, 기(氣)체조 등으로 건강을 지킨다. 젊었을 때는 수영과 테니스 등을 즐긴 박 후보는 40대 초반부터 단전호흡을 시작했다. 어지간한 장정들도 어렵다는 '세 손가락으로 팔굽혀펴기'를 20회쯤 할 수 있는 내공을 자랑한다.

▲ 단전호흡하는 박근혜 후보

▲ 테니스하는 박근혜 후보. 박근혜 후보는 “테니스를 잘 치려면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며 “그때 그때 편하게 하면 실력이 늘지 않으므로 꾸준히 기본기를 갖춰야 한다”며 "손목으로만 치면 안되고 온 몸으로 쳐야 공도 잘 맞고 힘도 실린다. 끝까지 공을 보고 쳐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삶도 결국 테니스와 같은 것 아니겠는가”라는 말로 세상살이에서 기본과 원칙에 충실할 것을 강조했다.

특전사 출신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소문난 등산 애호가다. 부산 지역 변호사들의 등산 모임에서 산행대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총선 출마 요구를 뒤로 한 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로 트레킹을 떠났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챙기는 스타일이며, 목을 보호하는 사탕을 차 안에 놓고 챙겨 먹는다고 한다.

▲ 등산을 즐기는 문재인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아침에 1시간씩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근력운동을 해왔다. 최근엔 너무 바빠서 가끔씩 건너뛴다고 한다. 학창시절 체육시간에 운동은 하지 않고 혼자 나무그늘에 앉아 책을 읽었다는 안 후보는 최근 자신의 책에서 "열심히 식스팩(six pack·복근)을 만드는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 통나무를 이용해 신체단련하는 안철수 후보

대선 후보들은 요즘 '건강이 없으면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고,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걸 절감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민이 마음 편히 운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는 제대로 된 공약을 내놓는 후보가 없다. 우리 국민의 운동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조금만 자료를 뒤적여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주 2회 이상, 1회 30분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국민이 41.4%밖에 되지 않고, 청소년 5명 중 1명은 일주일에 단 하루도 30분 이상 운동을 하지 않는 게 우리 현실이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건강은 국민이 각자 알아서 챙기라고 하는 건 대통령 후보의 도리가 아니다.

지난 20여년간 국정(國政)에서 '국민 건강을 위한 체육'은 늘 뒷전이었다. 체육 복지 정책을 책임지는 정부 조직부터 점점 쪼그라들었다. 1980년대 체육부는 200명 가까운 규모였다. 지금 문화체육관광부의 체육국(局) 소속 공무원은 50여명뿐이다. 관련 업무는 보건복지부 등 다른 부처로 쪼개져 나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체육 관련 업무를 조율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이다. 학교 체육만 해도 주무 부처가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과학기술부로 양분(兩分)돼 있다. 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생활체육시설 조성은 문체부가 하는데, 노인들을 위한 운동사업은 보건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다. 칸막이 행정 때문에 덜컹거리는 체육 관련 정책이 수두룩하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얼마나 사느냐'의 차원을 넘어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시기다. 선진국 대통령들은 일찌감치 체육 활동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프랑스의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은 '삶의 질(質)'이라는 연설에서 중산층의 조건으로 '스포츠 하나쯤은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꼽았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내가 이끌 행정부의 원동력은 체력"이라며 국민 건강과 체력 향상에 방점(傍點)을 찍었다.

대선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대통령 후보들에게 새로운 체육 복지정책을 급조(急造)해 내놓으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자기 건강 지키겠다고 운동을 하거나 보약(補藥)을 챙겨 먹을 때, 제 몸 챙길 여유도 없이 팍팍한 삶을 사는 국민을 한 번쯤은 떠올려주길 바랄 뿐이다. 조선일보 스포츠부 조정훈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