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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이 빚어낸 테니스 사상 최고 브랜드가치142년 전 테니스의 기준 세운, 윔블던
글 오룡(코멘터리 편집주간) 사진 윔블던=황서진 기자  |  tennis@tennispeop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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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7  12: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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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는 언제 시작됐을까. 일부 스포츠사학자들은 그 기원을 12세기 프랑스로 끌어올린다. 당시 수도원에서 손바닥으로 공을 쳐 넘기는 운동을 했는데, 이것이 테니스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맨손 또는 장갑 낀 손으로 공을 주고받아 명칭도 ‘손바닥게임(jeu de paume)’이었다.

하지만 이 가설은 호된 비판을 받았다. 라켓스포츠는 라켓이 핵심인데 손바닥으로 한 운동을 원조로 보는 건 무리라는 반론이다. 이후 테니스 발상 시기는 라켓을 사용하기 시작한 16세기로 내려왔다. 초기 테니스는 주로 프랑스와 영국 왕실,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프랑스혁명 때는 테니스장이 공격 대상이 되곤 했다. 사실 테니스코트는 프랑스혁명을 이끈 역사의 현장을 제공했다. 성직자, 귀족, 평민 등 3개 신분으로 구성된 삼부회에서 평민 의원들이 개혁 입법을 요구하자 루이 16세는 의회를 폐쇄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회를 구성한 평민과 일부 귀족, 성직자 의원들은 1789년 6월20일 베르사유 궁전 실내 테니스장에 모여 “헌법을 제정할 때까지 해산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 사건이 바로 프랑스혁명에 시동을 건 ‘테니스코트의 서약’이다. 당시 현장 모습은 로베스피에르, 장 폴 마라 등 주역이 생생하게 그려진 자크 루이 다비드의 명화로 남아 있다.

 

   
 

테니스가 근대스포츠 종목으로 정립된 것은 윔블던(Wimbledon)에서다. 1877년 7월9일 윔블던 크로켓경기장에서 첫 공식 테니스 경기가 열렸다. 크로켓 클럽이 새로운 종목으로 테니스를 도입한 것이다. 당시 잔디경기장에서 기구를 사용하는 스포츠는 게이트볼의 원형인 크로켓과 크리켓, 폴로, 골프 등이 있었다.

크로켓 잔디경기장 한가운데 테니스장을 설치해 ‘센터코트’라 했다. 이후 꼭 중앙에 있지 않더라도 센터코트는 메인 경기장을 지칭하는 테니스 용어가 됐다. 경기는 남자 싱글 한 종목에 선수 22명이 참가했고, 유료 관중 200여 명이 결승전을 지켜봤다고 한다. 라켓은 눈 신발 모양의 나무 프레임이 사용됐다.

이후 테니스는 인기 스포츠로 떠올랐다. 1885~87년 거문도를 점령했던 영국군이 주둔지 바닷가에 코트를 만들어 테니스를 쳤던 것만 봐도 그 열풍을 짐작할 수 있다. 20세기 들어 국제 스포츠 면모를 갖췄다. 1908년 런던올림픽부터 올림픽 종목에 포함돼 윔블던에서 경기가 치러졌다.

크로켓 클럽은 크로켓과 테니스 대회를 함께 열면서 이름을 아예 전 잉글랜드 크로켓 테니스 클럽(The All England Croquet and Lawn Tennis Club)으로 바꿨다. 이 단체명은 크로켓과 론 테니스 순서만 바뀐 채 오늘날까지 윔블던 주최기관 이름으로 남아 있다. 1882년 이후 크로켓 경기는 열리지 않지만 전통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명칭만 살려뒀다.

 

     
   
     
   
▲ 제복. G4S. Good for security(굿 포 시큐리티)의 약자 로고가 가슴에 있다. 이들이 제복을 임고 윔블던 경비를 선다. 찰리 채플린 복장 같기도 하고 아무튼 눈에 띈다

클레이-론 죽음의 코스 ‘채널슬램’

잔디경기장 전통 또한 고수해왔다. 4대 그랜드슬램 대회 중 론 코트는 윔블던이 유일하다. 호주오픈과 US오픈은 하드코트, 롤랑가로스는 클레이코트다. 코트 바닥은 테니스 경기를 좌우하는 가장 큰 변수다. 정상급 스타들에게 4대 그랜드슬램 석권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해에 4개 대회 우승컵을 모두 차지한 ‘그랜드슬래머’는 남녀 합쳐 5명에 불과하다. 같은 해는 아니지만 4개 대회를 제패한 ‘커리어 그랜드슬래머’도 10명뿐이다. 특히 프랑스오픈-윔블던이 난코스다. 클레이 코트에서 뛰다 잔디 바닥에 적응해야 하는 간격이 1달도 안 된다.

7월1일 막을 올린 2019 윔블던은 14일까지 2주간 열전을 치른다. 롤랑가로스가 6월9일 끝났으니 꼭 3주만이다. 같은 해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을 동시에 우승하는 걸 ‘채널슬램(Channel Slam)’이라 한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 해협을 ‘채널’이라 부르는 데서 나온 말이다.

그동안 채널슬램을 작성한 남자 선수는 로드 레이버, 비요른 보그, 라파엘 나달, 로저 페더러 등 딱 4명뿐이다. 여자 선수는 빌리 진 킹 등 6명이다. 올해 프랑스오픈 우승을 차지한 나달이 윔블던까지 우승한다면 사상 최초로 채널슬램 2회 달성이란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윔블던의 풀네임은 ‘윔블던 챔피언십 대회(The Championships, Wimbledon)’다. 윔블던은 런던의 32개 구(borough) 중 하나인 머튼(Merton)에 속한 지역이다. 런던 중심가 차링크로스에서 11㎞ 가량 떨어진 인구 6만8000여 명의 한적한 교외다. 테니스가 아니라면 세계적 인지도가 생길 수 없는 평범한 동네다. 저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이 고장 출신이다.

   
▲ '인류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라는 책을 쓴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기념비. 토인비는 윔블던 출신이다

이 지역은 중세 이후 주로 영주의 저택(manor)이 들어섰다. 지명 또한 윈만(Wynnman)이란 영주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뒤에 붙은 ‘don’은 언덕을 의미하는 ‘dune’의 변형이다. 즉 ‘윈만의 언덕’이란 뜻이다. ‘Wymbaldon’ 등 여러 표기가 쓰이다 19세기 초 현재 스펠링으로 정착됐다.

19세기 말 최초 테니스 공식경기를 열어 테니스의 기준을 세운 윔블던은 자타가 공인하는 테니스의 본산이자 종가다. 상업 브랜드가 아니지만 그 자체로 테니스가 낳은 최고 브랜드가치를 구가한다. 윔블던은 잔디코트 외에도 몇 가지 전통을 엄격히 지켜왔다.

흰색 경기복 의무 착용, 상업광고 금지, 남녀 부문 젠틀맨과 레이디 지칭, 일부 관중석 드레스코드 등이 그것이다. 진녹색 코트를 수놓는 하얀 경기복, 상업성에 오염되지 않은 품격 있는 경기장 환경은 윔블던만의 시그너처다.

엄청난 브랜드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지켜왔다. 그러면서도 공식 공급자, 중계료와 입장료 등으로 다른 메이저 대회 못지 않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품위 유지와 실속 챙기기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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