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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는 흔한 테니스 선수는 아닐 것이다’스무살 프란시스 티아포의 성장 스토리
이은정 기자  |  ejlee5079@tennispeople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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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3  17: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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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 3위)는 지난해 US오픈 1회전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간신히 승리를 거뒀다. 팬들의 관심은 페더러가 2회전에 진출했다는 사실보다는 ‘도대체 누가 페더러를 괴롭혔는가’ 에 집중됐다. 덕분에 유명세를 타게 된 주인공은 바로 스무살 신예 프란시스 티아포(미국, 70위)였다. 미국에서는 이미 차세대 주자로 유명한 그는 이 경기를 계기로 세계 테니스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US오픈 코트 중 가장 화려한 아서 애쉬 스타디움에서, ‘살아있는 전설’ 페더러와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친 밤이었다. 그 전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인터뷰룸에 들어선 티아포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에서 경기하는 것을 상상했고, 아빠에게 내 꿈을 말하곤 했다. 형, 엄마, 아빠에게 이런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라며 감격했다.

그의 소감은 여느 선수들의 신인시절 인터뷰 한 자락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런데 티아포가 테니스를 어떻게 시작했고, 자신의 꿈을 어떻게 키워왔는지 알게 된다면, 그의 감격은 예사롭지 않게 들릴 것이다.

식민지, 내전, 자연재해, 세계 최빈국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이곳에 뿌리를 두고 있는 티아포가 플레이어 트리뷴에 기고한 테니스 스토리를 직접 들어보자. 편집자


나는 시에라리온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내가 어릴 때, 아빠는 미국 메릴랜드 컬리지 파크 주니어 테니스 챔피언 센터(JTCC) 신축 공사장의 인부로 일했고, 센터가 완성되자 시설 관리인으로 남게 되었다.

나는 아빠가 일하는 밤 시간이나 주말이면 빈 코트에서 테니스 놀이를 하곤 했다. 낮 동안에 아카데미 학생들이 배우던 것을 눈여겨 봐놨다가 담벼락에 공을 치며 따라했다. 이곳은 US오픈이 열리는 대회장이고 나달이나 페더러가 저 담 너머에 있다는 상상을 하며 공을 때렸다. 쌍둥이 형 프랭클린과 나는 야간근무를 하는 아빠를 기다리다 선수용 마사지 테이블에서 잠이 들곤 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드디어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받게 되었다. 테니스 아카데미에 합격한 후에도 나는 부잣집 아카데미 아이들이 쓰던 라켓이나 중고 데모 라켓을 물려받아 썼다.

나는 사람들에게 얘기하곤 한다. “내가 테니스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테니스가 나를 선택했다”고, “나는 테니스를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 하지만 그렇게 얘기한다 해도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내가 자라서 테니스 선수가 되겠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웃었다.

나의 일이라면 항상 지지해주는 아빠도 그 중의 하나였다. “해볼테면 한번 해보던가” 하는 식이셨다. 엄마는 적극적으로 말리는 쪽이셨다. 프로로 전향해서 비록 많지는 않지만 돈을 벌기 시작하고 나서도 엄마와의 투쟁은 늘 진행형이었다. 엄마가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형과 내가 대학에 진학을 해야 하고,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며 살아야 한다는 것. 엄마는 나의 꿈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나는 언제나 나보다 가진 게 많고 대학 진학이나 돈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아이들을 상대로 경기를 했다. 프로에 입문하는 것은 여러 장점들이 있지만, 나에게는 비참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에게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주저 앉아서 신세한탄만 하면서 슬퍼하거나(실제로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부자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바라며 많은 시간을 허비해버렸다), 아니면 탈출구로 이용하거나.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내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을 부정한다면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그걸 바꿀 수는 없다.’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일 뿐.

아카데미 아이들에게는 없는 나만의 동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가족과 이웃을 먹여 살리는 일이었다. 그들은 테니스가 아닌 무엇을 하더라도 괜찮았지만, 나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들이 많았다. 테니스는 나에게 탈출구였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못할 일이 없다” 는 진부한 말을 신조로 삼았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을 ‘해낸다’ 는 부분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2016년 여름은 그런 생각에서 빗나가기 시작했던 시기이다. 틀에 박힌 생활에 빠져있던 것 같다. 바닥부터 시작했던 ATP랭킹이 서서히 올라가자 언론의 관심도 많이 받았다. 길거리에서나 대회장 락커룸에서도 점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유명 선수들이 목례를 하며 아는 척 해줬다. 어느 순간부터 삶이 편해졌다.

   
▲ 주니어대회에서 우승한 티아포

14, 15살 때부터 나에게 쏟아지던 기대가 조금씩 부담이 되던 터였다. 여전히 치열하게 연습을 하긴 했으니 느긋해진 건 아니었다. 단지 애초에 왜 프로선수가 되기로 했었는지에 대한 마음에서 멀어지면서 그냥 현실에 갇혀 멈춰있는 느낌이었다. 열심히 하면 성공은 저절로 오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경기에 나가면 때때로 긴장이 풀리기도 했는데, 그러다 위기가 찾아오면 스스로를 지나치게 압박하면서 회복하려 발버둥쳤다. 어렸을 때 내가 어땠는지 다시 생각해봤다. ‘메릴랜드 테니스 센터의 그 벽 앞에 서있던 나는 그저 즐거웠고 자유로웠는데…’ 경기를 마치고 하루를 마감하며 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을 떠올리려고 했다.

내 인생은 흔한 테니스 선수의 스토리는 아니다. 나는 내가 테니스를 하는 이유는 내가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가족 중에 가장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되어 부모님 고생을 덜어드리게 된 것은 물론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게 이유는 아니다. 나는 그저 테니스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코트에 들어설 때마다 매번 나는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1년 전 나의 랭킹은 170위 언저리에 있었다. 일반 테니스 팬들은 선수들 일정이 얼마나 빡빡한지 아마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매주마다 철저한 몸 관리는 필수고, 단 하루도 빠짐 없이 몇 년을 테니스 훈련에만 보내기도 한다. 이런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엄청난 체력관리가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작년에 주로 참가했던 챌린저 수준의 투어는 그리 화려하지 않다. 상금이 높은 것도 아니고 ATP랭킹을 한 단계씩 높이며 자존감을 높여나가는 단계이다. 랭킹이 선수 경력을 대신 말해주고 앞으로 다가올 기회도 결정짓기 때문이다. 바로 이 단계에서 나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프랑스오픈을 앞두고, 챌린저 대회에서 두 번 연달아 우승을 차지했다. 랭킹이 훌쩍 올라 60위권에 들어서자 주요 ATP투어는 물론이고 그랜드슬램 본선 직행티켓을 따낼 정도가 되었다.

올해 신시내티 마스터스에서 나는 세계랭킹 7위 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이겼다. 지금껏 승리를 거둔 상대 중 가장 높은 랭킹의 선수였다. 또 한 발짝 크게 내딛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70위권에 머물고 있으니 앞으로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와도 경쟁할 만 하고, 내가 상상했던 것을 뛰어넘어 이뤄낼 수도 있다.

작년 마이애미 마스터스에서 나는 페더러와 맞붙는 엄청난 경험을 했다. 이전에 그의 에이전트가 나를 영입하려 한 적이 있어서 몇 번 연락을 주고 받고 연습볼을 쳐볼 기회가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고, 친하다고 할 수도 있는 사이가 됐다. 덕분에 경기를 앞두고 그렇게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 2017 US오픈 1회전 페더러와의 경기

 

   
▲ 2017 US오픈 1회전 페더러와의 경기 입장

내가 코트에 들어서자 함성이 들렸다. 14000명이나 되는 관중이 나를 위해 이렇게 환호를 해주다니, 흥분되고 솔직히 약간 으쓱해졌다.
다음 순간, 페더러가 들어섰다. 코트 전체가 흔들거렸다.
장내 아나운서가 그를 소개했다.
윔블던 챔피언 7회!
우승 타이틀 통산 93회!
US오픈 챔피언 5회!
그랜드슬램 18승에 빛나는,
로 저~ 페더러!

순간, ‘이럴 수가, 내가 로저 페더러와 경기를 하다니, 현역 선수 중 세계 최고와 플레이를 하다니. 이건 현실이 아닐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짜릿한 것은 내가 그를 물리칠 기회도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결과는 7-6, 6-3으로 그의 승리였다. 하지만, 첫 세트에서 6-5까지 갔을 때는 로저 페더러 같은 사람을 이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로저 페더러 말이다.

경기에 패하고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을 때, JTCC의 벽에 공을 치던 8살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이민자의 아들인 나 같은 아이가, 그렇게 테니스를 접하고 성장해온 나 같은 아이가 로저 페더러와 눈을 맞추기라도 할 확률이 얼마나 된단 말인가? 그와 네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있던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내가 아는 나보다 더 위대해지기 시작한 그 순간을.

나는 진정으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10년 전 내가 담벼락에 공을 치며 따라 했던 나달이나 페더러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누군가가 TV에 나오는 나를 보면서 ‘나도 프란시스 티아포같이 되고 싶다’ 는 마음을 품는다면?

나의 스토리가 그렇게 흘러갔으면 한다. 왜냐하면 올해 내가 특별히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의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고, 나는 흔한 테니스 선수는 아닐 것이다.’

   
▲ 티아포, 형 프랭클린, 엄마 알피나, 그리고 뒷줄 아빠 프란시스 시니어(Credit Jahi Chikweniu/The Washington Post)

프란시스 오레스 티아포(미국,20살)

거주 보카라톤, 미국 플로리다
출생 1998년 1월 20일 매릴랜드주 컬리지 파크
신체 188cm
프로입문 2015년
플레이 오른손잡이(양손백핸드)
코치 니콜라스 토데로, 로비 지네프리
총상금 $849,255
투어단식 11–32 (25.58%)
투어우승 없음
최고랭킹 60위(2017년 7월 24일)
현재랭킹 91위  (19 February 2018
그랜드슬램 성적
호주오픈 2회전(2017)
프랑스오픈 1회전(2015,2017)
윔블던 2회전(2017)
US오픈 1회전(2015~2017)

 

   
▲ 11년간 티아포의 아빠와 그 의 형이 기거했던 테니스 센터의 오피스 룸(Credit Matt Roth for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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