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브랜드는 그 나라에서 인기 있는 종목을 기반으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이 폭넓게 형성돼 있는 인기종목 용품으로 국내시장을 장악한 뒤 세계적 브랜드로 도약하는 게 전형적인 성장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인의 대표적 스포츠 브랜드 조마(Joma)가 바로 그런 코스를 밟았다. 조마는 스페인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국민 스포츠 축구를 자양분 삼아 성장했다. 현재 유럽과 남미 여러 나라 국가대표팀과 클럽팀 스폰서로서 축구팬들에게 인지도가 높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로코 올림픽 대표팀을 후원하고, 루마니아·불가리아·우크라이나·케냐·온두라스 등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과 축구화 등을 공급해왔다. 특히 남미에서 인기가 폭발적이다. 축구강국 스페인의 이미지에다 같은 언어권이란 점이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발볼이 넓은 히스패닉계의 특성에 맞춘 스포츠화를 내놓은 것도 시장의 호응을 이끈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 팬들에겐 기성용이 활약하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스완지 시티의 스폰서로 친숙하다. 서울 유나이티드와 대구 FC 등을 후원했고, 현재 광주 FC, 전남 드래곤스, 강원 FC를 후원하며 유니폼 등을 공급하고 있다. 올해 후원계약을 맺은 강원 FC는 2018 시즌까지 조마 유니폼을 입을 예정이다.
활발한 스폰서십 마케팅 덕분에 국내 조기축구회 등 동호인들 사이엔 조마 축구화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다. 중고생 등 청소년 일상복으로도 선호도가 높다. 역시 축구를 기반으로 한 덴마크 브랜드인 험멜(Hummel)과 이미지가 비슷하다.
브랜드네임 ‘Joma’는 우리나라에서 영어 알파벳으로 읽은 ‘조마’로 굳어졌다. 국내 총판권을 보유한 조마 코리아(대표 권종철) 자체가 회사명을 조마로 쓰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스페인어 고유명사이므로 외래어표기법상 ‘호마’로 쓰는 것이 맞다.
‘Joma’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말이다. 흔히 쓰이는 사람이름도 아니다. 어감이 좋고 기억하기 좋게 만들어낸 브랜드명일뿐이다. 또 다른 스페인 태생 패스트패션 브랜드 ‘Zara’가 그냥 알기 쉬운 이름으로 만들어진 것과 마찬가지다. 두 브랜드는 로고를 글자 획 끝에 돌출선이 있는 평범한 블랙 세리프 계열 글자체로 만든 점도 비슷하다.
바르셀로나올림픽 최대 수혜자
‘J’자만 하단으로 돌출한 조마 로고는 단순하면서도 부드럽고 친근한 인상을 주는 타이포그래피다. 제품에는 이 브랜드 로고와 함께 독수리를 형상화한 역동적 이미지의 로고가 함께 쓰인다. 신발 제품 측면 등에는 ‘J’자를 옆으로 누이거나 바로 선 두 가지 로고가 새겨진다.
1965년에 조마를 창업한 스페인 사업가 프룩투오소 로페즈(Fructuoso Lopez)
조마는 1965년 스페인 사업가 프룩투오소 로페즈(Fructuoso Lopez)가 창업했다. 종업원 8명의 일반 구두 제조업체로 시작한 뒤 스포츠화 전문으로 전환했다. 스포츠 중에서도 축구에 눈을 돌렸다. 유럽 나라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스페인의 축구사랑은 유별나다. 구독자 1위 신문이 축구를 주로 다루는 스포츠신문일 정도다.
스페인 축구 대표팀은 월드컵, 유럽선수권대회를 포함한 국제대회 우승 73회의 막강한 전력을 자랑한다. 그런 만큼 조마가 축구화, 공 등 축구용품 개발한 초점을 맞춘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경기력을 높여주는 축구화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 조마는 1987년 마침내 회심의 밑창을 개발해냈다.
밑창에 챔버를 만들어 스파이크를 통해 전해지는 발바닥 압력을 조절하는 새로운 기술이었다. 조마는 이 기술이 적용된 축구화로 국내시장 리더로 올라섰다. 현재 본사가 있는 유서 깊은 고장 톨레도에 6만5000㎡ 공장을 세우고 양산체제를 갖췄다. 레알 마드리드 등 프로팀 선수들과 계약을 맺어 스폰서십 마케팅에 적극 나선 것도 이 무렵이다.
조마가 세계무대에 등장한 것은 자국에서 열린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이었다. 스페인 육상 중단거리 선수 페르민 카초 루이스가 조마 러닝화를 신고 뛰어 15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마는 알폰소 페레즈 등 당대 최고 축구선수들과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었다.
이들이 이끈 스페인 대표팀은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해 스페인 전역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조마 축구화가 최고 수혜자가 됐음은 물론이다. 조마는 자국 시장을 평정한 뒤 국제 스포츠 이벤트와 스폰서십을 통해 세계시장으로 도약하는 스포츠 마케팅의 정석을 보여준 셈이다.
상승세를 탄 조마는 1990년대 후반 축구화와 볼에 컬러를 불어넣어 선풍을 일으켰다. 검은색 일색이던 축구화를 흰색, 빨간색 등으로 만든 것이다. 알폰소는 1998년 시즌 조마 로고가 선명한 흰색 축구화를 신고 뛰어 화제가 됐다. 볼에도 다양한 색채를 적용했다. 조마의 축구용품 채색 실험은 ‘The Colour in Football'이란 프로젝트명으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조마는 1980~90년대 유럽과 남미시장에서 안정세를 다진 뒤 1999년 미국시장에 진출했다. 그 사이 테니스·풋살·사이클·농구·배구·핸드볼·수영·피트니스 등으로 영역을 크게 넓혔다. 제품 종류도 신발뿐 아니라 의류·가방·각종 장비로 크게 확대됐다. 테니스에선 세계랭킹 27위인 알베르트 라모스 등 정상급 선수들과 대거 후원계약을 맺었다.
창립자 로페즈의 딸과 손자가 참여해 3세 가족 경영체제를 갖춘 조마는 현재 70여 개국에 진출해 세계적 브랜드 대열에 합류했다. 스페인의 스포츠 소프트파워를 탑재한 조마의 질주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