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곡고 남자선수들이 쌓은 인간 피라미드. 동료를 신뢰해야 피라미드을 쌓을 수 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경기도 연천군의 전곡고등학교(교장 김규대) 테니스부 장인선 감독은 지난 3월 20일 경북 김천에서 열린 종별선수권대회가 끝난 뒤 학부모에게서 감사의 전화를 받았다.
"방학내내 공은 안치고 체력 훈련만 해서 종별대회 성적이 걱정되었는데 선생님 말씀이 맞았어요. 우리 애들이 참 잘했어요. 감사합니다." 학부모는 전화기에 대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전곡고는 국내 학교테니스부가 전체 나오는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여러 쟁쟁한 선수들을 물리치고 단식과 복식 준우승을 차지했다. 선수들 성적을 합산하면 종합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전곡고 학생선수들의 대다수가 상반기에 랭킹이 올랐다.
연초에 주니어 남자랭킹 16등으로 시작한 선수는 6월말 현재 4위가 됐고 131위인 선수는 40위권까지 올랐다.
엄관용의 경우 출전하는 대회마다 8강 이상 오르고 준우승만 세번을 기록했다. 제주국제주니어대회에선 준우승, 4강, 8강 ,16강 성적을 4명이 올렸다. 지난해 별 성적이 없어 유명무실했던 전곡고가 괄목상대하게 바뀐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7월 1일 전곡고등학교 테니스부 훈련 현장을 찾았다. 운동장에 트레이닝 장비를 10여개 놓고 순환하면서 체력을 다지고 있었다.

▲ 체력훈련. 전곡고는 오랫동안 테니스를 하기 위해 체력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볼 안치고 체력훈련 하는 것에 궁금증을 보였다. "볼 안쳐요?"
"겨울동안 일주일에 한번만 라켓을 잡았다. 나머지 시간에 체력훈련만 했다. 군청에 가서 겨울 체력훈련비를 어렵게 만들고 코치들을 설득했고 부모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 결과 전반기에 부상으로 시즌을 접은 선수가 하나도 없고 3시간씩하는 경기에서도 누구하나 근육경련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체력훈련을 하면서도 지도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했다. "종별대회가 얼마 안 남았는데 불안합니다. 될까요?"
그래도 장 감독은 "믿고 합시다. 몸이 안되면 볼이 안되요." 강하게 밀고 나갔다.
이제 전곡고 코칭스태프의 지론은 '고등학교 선수 생활이 끝이 아니다. 앞으로 10년 이상 테니스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규대 교장도 "성적보다는 선수들이 전곡고 시절 즐겁고 행복한 선수 생활이었다는 것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개의 선수가 대진표 나오면 자신의 성적을 미리 정해둔다. 하지만 전곡고 선수들은 성적의 한계가 없다.

학교와 지도자, 선수들의 관계는 그렇다치더라도 문제는 학부모와의 관계다. 한 두자녀 낳아 운동을 시킨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고 도박이다. 투어 선수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고 이형택, 정현처럼 후원을 받아 운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운동하는 자녀에게 올인을 한다. 심지어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한사람의 봉급을 온통 아들에게 들어간다고 말하는 부모도 있다. 자녀의 경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기고 지는 것이 삶의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의 부모 심정이다. 대회 라이브 스코어가 있어 자녀가 경기에 들어가면 한시라도 눈을 떼지 않는 것이 선수 부모다.

장 감독은 스마트폰 네이버밴드에 '전곡고 Tennis Love~'를 만들어 연습과정, 경기 결과, 감독의 의견을 밴드에 수시로 올린다. 처음에 지켜만 보던 부모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학교를 신뢰하고 아직도 가능성있는 선수들을 격려해 달라고 한다. 장 감독은 경기 뒤에도 부모에게 문자와 전화로 선수의 잘한 점과 부족한 점을 전해준다. 심지어 장 감독은 테니스부 한달 지출보고서를 부모에게 알려 살림살이를 같이 해나간다고 생각을 한다. 투명하게 하고 운동 선수 부모의 부담을 최소화하자는 것이 학교의 지론이다.
선수 지도에도 적극적인 장 감독에 문병률(남자선수 담당), 홍두진(여자 선수 담당) 코치도 동참한다. 그래서 전곡고에는 코치가 3명이 있다고 안팎으로 이야기한다. 세 지도자는 선수들을 한번 더 세심히 봐주고 1대1로 지도하는 장점이 있다

지도자들간에 호흡이 맞고 학교에서 단기 성적보다는 학생의 장래를 더 배려해주고, 학생들도 지도자를 믿고 부모들도 테니스부 운영을 훤히 아는 전곡고 테니스부에는 신뢰의 강이 흘러 보인다.

전곡고 테니스코트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소홀히 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테니스부의 모토로 삼고 있는 듯했다.
 

▲ 전곡고 테니스부. 앞줄 왼쪽부터 장인선 감독, 김규대 교장, 이재명 교감, 짐 콰트로 피지컬 트레이닝센터 정재훈 대표.김규대 교장은 전 대한테니스협회 김두환 회장과 사촌간이고 이재명 교감은 테니스마니아, 장인선 감독은 건대부중-건대부고-명지대를 거친 테니스 선수출신으로 순위고사에 합격해 교사로 임용됐다

▲ 테니스장 벽에 걸린 '사람 존중'에 관한 글

▲ 전곡테니스러브 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