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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인 1일 오후 장충체육관을 찾았다. 이날 오후 4시 여자배구 V-리그 GS칼텍스와 흥국생명의 대전을 관람하면서 이에 앞서 덤으로 GS칼텍스OB 대 서울시배구연합회의 스페셜 매치도 보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3년 가까운 리모델링 공사 끝에 올해 1월17일 재개장한 장충체육관을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밖에서 본 장충체육관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과거 우중충했던 외관은 은빛 새 지붕 덕인지 약간 더 밝아졌지만 회색 계통의 색깔은 여전한 가운데 규모가 커졌다는 느낌도, 디자인의 세련미도 없어 보였다. 장충체육관은 나이든 서울사람들에게는 추억의 명소다. 이곳에서 1966년 김기수 선수가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를 꺾고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이 됐고, 60년대와 70년대 ‘박치기 왕’ 김일 선수가 프로레슬링 경기를 벌였다. 수많은 농구와 배구, 핸드볼 경기로 팬들의 환성과 탄성이 교차한 곳이기도 했다.
또 하나 기억해 둘 일은 여기가 한때 대통령선거와 취임식이 거행된 곳이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1948년 초대부터 1971년 7대까지 역대 대통령 취임식은 중앙청 광장에서 열렸고, 4‧19혁명 직후 4대 윤보선 대통령만 태평로 국회의사당에서 간소한 의식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1972년 ‘10월유신’이라는 친위쿠데타를 감행한 뒤 박정희 대통령은 그해 12월23일 장충체육관에 2,359명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가운데 2,359표(무효 2표)의 지지를 받아 제8대 간선제 대통령에 당선됐다. 나흘 뒤에는 장충체육관에서 취임식을 올렸다. 이른바 ‘체육관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1978년 7월6일에는 역시 장충체육관에서 유신헌법 하에 제9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박정희 단일후보에 무효 1표의 99.9%찬성이었다. 12월27일 취임식도 같은 체육관에서 열렸다. 겨울철에 3,300명 이상의 많은 인원을 수용하려니 실내체육관 외에는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79년 12월 제10대 최규하 대통령 취임식까지는 장충체육관이 이용됐다. 1980년 역시 간선으로 당선된 제11대 전두환 대통령은 새로 건설된 잠실실내체육관을 취임식 장소로 택했다. 참석자 수도 8,800명으로 늘어났다. 1981년 3월 개정된 단임제 헌법으로 당선된 제12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이 잠실실내체육관이 열린 것이 치욕스런 ‘체육관 대통령’ 역사의 마지막이었다.
매표소에 가서 표를 사려니 열린 창구가 하나뿐이다. 다행히 다른 쪽 창구를 열어줘서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외국에서는 경기시간에는 손님이 있거나 없거나 매표구를 닫거나 줄이지 않는다. 역시 서울시 산하기관답게 공무원 위주 편의주의 작풍이다. 입구에 가니 아마 팬서비스용인 듯 바나나를 쌓아 놓았는데 아무도 가져가라고 말하지 않고 ‘갖고 가세요’라고 써놓은 표지도 없다. 그냥 지나칠 밖에.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니 접이식 의자는 괜찮아 보이는데 복도 밑바닥이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쾅쾅 울리고 삐걱거린다. 일부러 그랬을 리는 없고 돈을 많이 들여 리모델링을 했다는데 관중의 안락함에 좀 더 투자할 수는 없었을까.
경기장 구조도 맘에 안 들었다. 우선 핸드볼 경기가 가능하도록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코트 주위 광고판 뒤에 쓸모없는 공간이 넓어 보였다. 미국 LA의 스테이플스 센터를 보면 우선 겉모습이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 비슷하고, 안에는 관중석을 농구코트에 바짝 붙여서 거의 바닥까지 내려와 있다. 그러니 선수들의 작은 동작과 거친 숨소리까지 보이고 들릴 수밖에 없다. 장충은 본부석과 기자석이 높고 위압적인 모양새다. 아마도 다목적 행사용 무대인 듯한데 선거용이 아니라면 뭘까. 원래의 장충체육관 설계자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설계한 연세대 건축과 고 김정수 교수다. 그런데 50년 만에 대수선 공사를 하면서 설계가 그 전보다 나아진 게 없다. 리모델링 책임자를 지난번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처럼 식견이 모자란 사람을 선임한 탓이다.
스페셜 매치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GS유니폼을 차려입은 40대 이상 OB여자선수들이 남성이 대부분인 서울시배구연합회팀을 일방적으로 리드하고 있었다. 경기 시작하기 전에 장내 아나운서가 ‘전설의 언니’ OB선수들을 일일이 호명하고 소개했겠지만 나처럼 뒤늦게 입장한 관중을 위해 전광판에 백넘버와 이름이라도 알려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어쨌든 9인제 경기는 단 45분 만에 3대0 OB팀의 승리로 끝났다. 본 경기까지 1시간15분이나 남아 어쩔까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3시부터 양 팀 선수들이 들어와 몸을 풀고, 연습을 하는 과정이 팬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인 듯했다. TV화면에서 눈 익은 선수들이지만 바로 코앞에서 실물을 보면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GS칼텍스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경기는 흥미진진했다. GS칼텍스가 1세트만 이기고 내리 3세트를 흥국에 내주는 바람에 GS 1번 이소영 선수의 펄펄 나는 활약이 빛바랬다. 흥국에서는 17번 이재영 선수가 인상적이었다. 각도가 깊은 스파이크를 내리꽂는 모습이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의 영웅 ‘나는 새 조혜정’을 연상케 했다. 나오는 길에 한 젊은 관중이 “배구가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네”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서도 박진감 넘친 경기였던 것 같다. 프로배구 한 경기를 하기 위해 선수‧코치‧감독은 물론 심판‧감독관‧진행관리요원‧구단직원‧치어리더‧기자‧들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여하는가를 보면 놀라울 정도다. 특히 볼퍼슨(Ball person)과 몹퍼슨(Mop person 코트 바닥의 땀 닦는 사람)들은 자원봉사임에도 프로다운 모습이었다.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관중석의 절반을 채우지 못하던 것이 경기가 끝났을 즈음에는 3분의 2 가까이 되는 것으로 보였다. 배구가 최근 인기 몰이를 하면서 잘 나가고 있지만 경기장의 3분의 2 채우는 것과 만석은 하늘과 땅 차이다. 경기장 만석을 위해서 구단과 배구 관계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 봤다. 첫째, 경기장 외관은 못 바꾸더라도 내부는 재설계해서 과감하게 관중과 거리를 좁히면 좋겠다. 둘째, 경기 일정을 바꿔서 시즌 중 매주 일정한 요일에 ‘배구 보는 날’을 정하면 좋을 듯하다. 셋째, 장충체육관 등대도시는 홈팀을 복수로 하고 다른 팀끼리도 서울에서 더 많이 경기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현재 여자배구는 6개 팀에 불과하고 홈앤어웨이 원칙을 지키다 보니 팬들이 경기를 보고 싵어도 보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연고지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중소 도시보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서 배구 붐을 일으킬 수 있도록 경기 장소를 인구집중지역에 많이 편성할 필요가 있다. 야구, 축구와는 달리 배구의 연고지는 주로 소도시 중심이고 그나마 구단 합숙소는 모두 용인 일대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이밖에 팬서비스 차원에서 경품행사를 하는 것은 좋지만 현장에서 자의적으로 상품 받을 사람을 선정할 것이 아니라 입장권과 연계해서 좀 더 조직적으로 시행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또 이왕 65세 이상 시니어 시티즌에게 무료 입장을 시행한다면 남녀커플과 55세 이상 준시니어 시티즌에게 50% 할인제 도입을 검토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