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하이 마스터스에서 우승해 트로피에 입맞춤하는 페더러

 2014년은 로저 페더러에게 최고의 해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하이마스터스를 우승한 페더러는 그랜드슬램대회 우승 한 번 없이 최고령 1위로 시즌을 마무리 기회를 잡았다. 페더러에게 앞으로 5주간은 그의 테니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33살의 페더러가 최고령 연말 랭킹 1위에 오르는데 고향 스위스의 바젤 대회, 파리마스터스시리즈, 런던투어파이널 등이 놓여져 있다.
페더러의 오랜 에이전트인 토니 고식은 "시즌 막판에 페더러 앞에 사탕이 그득 담긴 바구니가 놓여져 있다"며 "페더러는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무리한 일정임에 틀림없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더러가 '테니스 마스터'라는 것에 깊은 신뢰를 나타냈다.
페더러는 자신의 육체적 한계와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동안 다른 선수에 비해 페더러가 부상이 별로 없는 것도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대처하기 때문이다.

33살에게 살인적인 일정

사실 테니스 선수 나이로 서른 세살이면 은퇴할 나이다. 페더러와 같은 나이인 러시아의 니콜라이 다비덴코가 지난주 은퇴를 선언한 것이 그 예다. US오픈 이후 긴 휴식을 가진 탓인지 페더러는 상하이마스터스 1회전에서 레오나르도 마이어에게 다섯번의 매치포인트를 잡혔다가 살아났다. 준결승에서 조코비치에게 6-4 6-4로 이기며 긴 휴식의 후유증에 마침표를 찍었다.
페더러의 시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향 스위스 바젤대회와 파리마스터스 1000시리즈에서 2주 연속 강행군을 한다. 그리고나서 한주를 쉬고 런던 길에 오른다. 이것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페더러 앞에는 프랑스 릴에서 열리는 데이비스컵 결승전이 놓여져 있다. 하루 7경기하며 우승하는 동호인 상위랭커의 처지가 바로 페더러다.
페더러 코치 세브린 루시는 페더러의 이러한 살인적인 일정에 대해 한술 더 떴다. "인간은 누구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로저가 바로 그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러나 페더러가 바젤대회에서 우승한다면 파리마스터스는 건너 뛸 것으로 보인다. 런던대회를 앞두고 심신 보강이 필요한 페더러에게 휴식은 아주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달 맹장염, 조코비치 아내 출산

지금으로서 시즌 막판 혹독한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슈퍼 스타는 페더러가 유일하다.
경쟁자 라파엘 나달은 맹장염 고통으로 당장 수술이 필요함에도 바젤 대회 조직위원회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진표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결장했기에 이번에는 출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달의 몸상태를 보면 페더러와 좋은 승부를 하긴 어려울 것 같다.
33살의 페더러가 최고령 연말 랭킹 1위에 오르는데 가장 큰 적수는 노박 조코비치다. 런던에서 열리는 투어 파이널에서 그를 넘어서야 기록을 세울 수 있다. 3년 연속 연말랭킹 1위를 지켜낸 조코비치는 아내 옐레나가 자신의 첫 아이를 곧 해산할 처지에 놓였다. 시즌이 끝나기 전에 아내가 출산하면 조코비치는 파리마스터스나 런던 월드투어 파이널을 불참하고 아내 곁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달과 조코비치의 개인사정을 살펴볼 때 페더러에게 넓은 문이 열려있는 셈이다.
ESPN스포츠의 테니스 평론가이자 코치인 브래드 길버트는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올해는 스타니슬라스 바브링카가 시즌 첫 그랜드슬램대회 우승으로 포문을 열고 시즌 마지막 그랜드슬램대회인 US오픈에서는 조코비치, 나달, 페더러, 머레이 등 그랜드슬램대회 결승 고정 출연자 대신 놀랍게도 '단역 배우' 마린 칠리치와 니시코리 케이가 트로피 판가름을 냈다.
페더러가 US오픈에서 17번째 그랜드슬램 단식 우승 기록을 세울 뻔 했지만 칠리치에게 4강에서 3-6 4-6 4-6으로 완패해 기회를 놓쳤다.
페더러는 이번 시즌 톱10들을 상대해 4승 10패로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지난해 13승 4패와 비교하면 페더러의 쇠락이 올해 눈에 띄었다.

새 라켓과 마인트 콘트롤

하지만 더 이상 페더러를 괴롭힌 등 부상 문제는 다시 거론되지 않았고 헤드 크기를 키운 새 라켓은 그에게 힘과 정교함을 더해주고 있다. 어린 시절 그의 우상인 스테판 에드베리는 페더러의 발리를 매만져주며 공격성을 추가시키는 등 그럴듯하게 움직이고 있다. 페더러는 올해 슬라이스 보다 원핸드 백핸드 드라이브를 자주 사용하고 다양한 칩샷으로 득점 류트를 개발하고 있다.
코치 루시는 "페더러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는 그가 자기 몸을 잘 조절하고 있고 건강상태가 좋다는 점"이라며 최고령 연말 랭킹 1위 등극에 큰 문제가 없음을 나타냈다.
길버트는" 현재의 페더러는 테니스를 즐기고 박빙의 승부를 사랑한다"며 안드레 애거시의 최고령 1위 기록인 33년 4개월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1위는 보너스이지 페더러의 주요 목표가 아니라는 코칭스태프들의 마음 가짐도 페더러의 부담을 한결 덜어주는 분위기다.
페더러에게 올해가 최고의 해는 아니지만 많은 것을 이룬 한 해였다. 몇장 남은 하얀 도화지 스케치북에 페더러가 뭔가를 더 채울 시간만 남았다.  자료 출처 <뉴욕 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