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피플
피플국내선수
"5년내 100위권에 진입할 터"안성시청 김청의
박원식 기자  |  editor@tennispeople.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8.22  13:20:30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네이버 구글
   
 

오랜 침묵 끝에 4개대회 연속 우승한 프로테니스선수

김청의(25·안성시청)는 초등학교 5학년때 전세계 유망주들이 출전하는 미국 오렌지보울 12세부 우승을 하면서 '신동'으로 불렸다. 중학교 때부터 고교생이나 대학생과 기량을 겨뤄도 밀리지 않는다는 평을 들었다. 이형택의 뒤를 이어 한국 남자 테니스를 짊어지고 나갈 재목이라고도 했다. 성의중학교 2학년때부터 성인 무대인 퓨처스에 도전했다. 랭킹 포인트 1점을 따기 위해 수단, 케냐,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대회를 다녔다. 아버지와 인도에서 대회가 열린다는 정보 하나만 갖고 먼 길을 떠났다가 출전 선수가 너무 많아 코트에 서보지도 못하고 귀국하는 설움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 윔블던 우승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를 위해 22개 국가, 80여개 대회에 출전했다. 40시간이 걸려 아프리카에 간 적도 있고, 터키에서 이란까지 48시간이 걸리는 버스를 타는 등 고생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김청의는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하고 검정고시로 학업을 대신했고 병역을 일찍 마치고자 18살때 해군에 자원입대해 병역을 마쳤다. 2010년에 윔블던 우승 대신 병역만 마쳤다. 자신과 아버지 김진국씨를 제외하고 김청의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사람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갔다. "테니스 신동이 다시 코트에서 성적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았다. 오른손, 왼손 포핸드 스트로크를 연습할 때 주위에서 신기하게만 생각했다.

아버지마저도 '윔블던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기에는 "좌고우면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 꿈을 접었다"며 "인생을 살면서 또 자식을 키우면서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어디 본인 뿐이겠냐"고 심경을 밝혔다. 선수 자신도 혼신의 힘을 다했고, 가족모두 최선의 뒷바라지를 했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았다. 그리고나서 김청의는 지난 6월 대구퓨처스대회를 시작으로 김천 3개 퓨처스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그는 20대들이 즐기는 버블티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시간이 남자 대한테니스협회 볼 일을 먼저 보고 나왔다. 김청의의 손바닥 감촉은 미끈했다. 굳은살이 전혀 박이지 않았다. 차 한잔 하시지 않겠냐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져다 주었다.
처음 만났다. 코트에서 경기하는 모습은 몇번 지켜봤지만 기대만큼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우리는 처음 대면했으나 그전부터 익히 알던 사이였다. 그는 말을 할 때 내 눈을 똑바로 보았다.

내가 "테니스가 재미있나요?"라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는 항상 있었다. 성과가 없어 쉽지는 않았다. 1만불 퓨처스대회도 출전할 때마다 우승할 수는 없다. 투어급 선수도 아닌데 운이 따라주어야 우승 한다."

-25살이다
=많은 나이도 아니고 적은 나이도 아니다. 막 치고 올라가야 할 나이다. 테니스에 대한 이해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1년전에도 알고 있었는데 이제사 깨닫고 있을 뿐이다. 코트에 들어서면 누구를 만나도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10위권에 든 일본 니시코리 케이와 만나면 어떤가
=해볼만 할 것 같다. 수시로 유투브를 통해서 니시코리의 경기를 본다. 경기를 잘하면 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것을 보완하지 않으면 이길 수는 없다고 본다.


-서울오픈퓨처스때 경기를 지켜보니 무난하게 테니스를 한다고 보았다. 자기만의 무기가 필요한 것 같다
=그때에 비해 실력 차이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서비스가 좋아지고 콘트롤이 나아졌다. 20%만 빨리 쳐도 상대에게 압박을 할 수 있다고 안다. 어려서부터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대구퓨처스때 감이 왔다.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을 꺼내 경기때 사용하느냐에 달렸다. 완벽한 기회때 위닝샷 시도를 하기 때문에 볼이 오면 '침 한번 삼켰다'. 이것이 무난한 테니스를 하게 한 것 같다. 기술 실력은 누구를 만나도 이긴다고 생각한다. 이기려면 머리를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른손도 포핸드 스트로크도 하고 왼손도 포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했는데
=그부분에 대해 이론적인 부분에서는 공감한다.내가 성공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호걸형 스타일에게 맞는 기술이라고 본다. 그것을 해서 손해를 본 것은 없는데 마음 고생이 심했다.

-퓨처스 연속 우승은 어떤 의미가 있나
=이제 발판을 마련했다. 고생 시작이다. 400위 선수지만 100위와 200위 선수를 이길 수도 있다. 하지만 챌린저나 투어무대 선수들은 안보이는 실력이 있다. 노는 물이 달라야 안 보이는 실력을 알아낼 수 있다.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다. 아시안게임에 어떻게 출전하게 되었나
=5월에 1차 대표로 선발됐다. 운이 좋았다. 좋은 모습을 자꾸 보여주다 보니까 7월 최종 선발 확정하는데 작용한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자리이기에 출전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좋게 평가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외국대회 출전에 대한 부담은
=외국대회에 가도 불편하거나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다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갈 자신도 있다. 실업팀 소속 선수라면 100위~200위권 프로선수 대우를 받는다고 본다. 좋은 여건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부상은 있었나
=부상으로 한달이상 쉰 적은 별로 없다. 발목 다쳐서 3주 정도 휴식을 한 것 외에는 없다. 안 다치려고 스트레칭도 많이 한다. 먹는 것을 통해 피로 회복을 하려고 한다.

-본인 신체 조건에 대해서
=190cm 정도 되는 외국 선수에 비하면 크지 않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신체 조건(181cm)에도 감사한다.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부터 5년내 선수 생활을 왕성하게 해 일단 100위권에 진입하고 싶다.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를 넘어 아시아 최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다. 테니스가 내 직업이다. 라켓을 잡으면서 '최고까지 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름 석 자가 역사에 남을 만큼 하고 싶다. 겸손하되 자신있게 코트에 들어설 것이다.

김청의는 말을 잘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한다. 어려서 위인전, 학교 다닐 때는 역사서, 군대에선 자기계발서, 요즘엔 아버지가 추천하는 인문학 쪽 좋은 책을 읽는다. 지나고 나니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인터뷰 뒤 후배에게 김청의 선수와 인터뷰를 했다고 말하니 후배는 "꼭 한번 만나서 이야기 해보고 싶은 선수"라며 "목표를 이루려는 악착같은 모습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실업선수 김청의에게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김청의

90년 3월 23일 대구출생
오렌지보울 12세부 우승
대구퓨처스 우승, 김천1~3차 퓨처스 우승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출전
현재랭킹 414위(8월 22일 기준)

 

   
 

 

[관련기사]

박원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네이버 구글 뒤로가기 위로가기
테니스피플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614-2 원당메디컬프라자 606호  |  대표전화 : 031)967-2015  |  팩스 : 031)964-7780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경기 다 50250(주간)  |  출판사 신고번호:제2013-000139호  |  상호명 : (주)스포츠피플 | 테니스피플  |  사업자등록번호:128-86-68020
대표이사·발행인 : 김기원  |  인쇄인:김현대  |  편집국장 : 박원식  |  정보기술책임 : 최민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민수
Copyright © 2011 테니스피플.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tennispeopl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