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호 가문과 58회 장호배 입상자들

대한테니스협회장을 지낸 장호 홍종문의 가족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테니스 가문이다. 선친이 떠난 뒤에 유산을 모아 장호체육진흥재단을 만들어 주니어대회를 58회째 열고 있다. 5월 19일부터 22일까지 장충장호테니스코트에서 열린 대회에서 나타난 장호 가족들의 7가지 모습 속에서 테니스 대회 한국 테니스의 소중한 자산을 발견했다.

▲ 해마다 재활용하는 장호배 안내 펼침막

검약과 절제

장호배 대회 현수막은 단 1개만 만든다. 대회장 입구에 걸어 오가는 차량에 대회를 알리고 장호를 기억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표지판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회장 내부에는 수년전 디자인 잘한 펼침막을 곳곳에 걸어 놓았다. 이는 수년전에 만들어 재사용해 온 것이다. 장호의 손녀, 증손녀들이 디자인해 만든 뒤 대회때마다 내걸어 쓰고 대회 뒤 조심스레 모아 보관한다. 1회용 현수막이 아닌 5년~10년 이상 사용하면서 현수막에서도 전통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정성스런 식사

장호 가족은 대회때 선수와 코치진, 선수 가족들에게 해마다 점심 식사를 대접했다. 대접하는 점심 식사는 세심한 배려로 전통 대회의 명예를 드높였다. 즉 매년 대접하는 식사에 올해는 일체의 인스턴트 음식을 배제시켰다. 튀김, 돈까스, 미트 볼 등 어린 선수들의 입맛에는 맞을 지 몰라도 운동하는데는 도움이 안된다 생각되는 먹거리는 식단에서 일절 제외했다. 식사를 준비하는 출장뷔페업체와 대회전에 수차례 전화가 오간 끝에 메뉴를 정했다. 현장에서 직접 조리하는 음식과 야채류 중심의 반찬으로 구성되어 출장뷔페업체의 기성품 메뉴에 없는 장호 가족 요청의 맞춤형 '건강' 식단이었다. 대회 기간 나흘동안 메뉴가 매번 바뀌어 소위말하는 정성스런 '집밥'을 장호배에서 먹을 수 있었다.

▲ 선수, 코치 등에게 제공하는 점심 식사 메뉴

나서지 않는 가족들

장호배 시상식에는 장호의 미망인 이순옥 여사가 참석해 선수들을 격려했다. 백수가 넘은 고령으로 지난해부터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대회 기간 중 승용차를 타고 대회장을 지나가며 현수막을 보고만 갔다. 차안에서 이 여사가 그동안 대회를 열어온 것들이 생각나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는 모습이 선하다.
대회 기간 중 손님 접대하고 대회장 준비하는 것은 장호 가족들의 몫이었다. 자발적으로 나와 집을 찾는 손님맞이하는 것처럼 음료와 떡 등을 챙겨 선수가족과 코치들에게 일일이 건넸다. 시상식장에서도 뒷전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볼 뿐 나서지 않는다. 나선다면 오로지 모든 행사가 끝난 뒤 선수들과 단체 사진 1장 찍는 것 뿐이다. 이때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 증손자 들이 다 나와서 큰 일을 해냈다는 뿌듯한 표정과 미소를 머금고 사진 촬영을 한다.
흔히 재단만들고 가족들이 이사장 맡고 재단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데 장호재단은 달랐고 장호 가족들은 달랐다.이사장은 덕망있고 경륜있는 인사에게 맡겼고 이사들도 테니스계 큰 족적을 남긴 테니스인들을 세웠다. 가족들은 그저 이사회가 결정한 것을 따르는 집행위원을 맡는 정도다.

대회 운영비는 오로지 재단에서

장호배는 볼 외에 일체의 협찬을 받지 않는다. 선수들이 먹는 물조차 구입해 사용한다. 모든 경비를 장호재단에서 충당한다. 전통의 대회를 한다고 지방자치단체나 기업들의 후원 받을 길도 찾을 수도 있으나 일체 손을 내밀지 않고 대회를 치른다. 남녀 우승자에게 국제대회 출전 경비를 위해 각각 3천달러 상금을 제공하고 준우승 상금 1500달러를 전달한다. 장호배를 국제대회로 바꾸어 여는 대신 우수 주니어들에게 국제대회 출전 경비를 지원하는 방식도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하는 가문의 특징으로 보인다.

▲ 선수 이름이 정성스레 쓰여진 점수판

세심한 배려
장호재단 홍순모 집행위원장은 코트 바닥에 금이 가서 선수들에게 매우 미안해했다.선친이 서울시 부지를 제공받아 개인 재산을 들여 우리나라 대표적인 코트를 만든 지 근 반세기가 흘렀다. 중간에 클럽하우스도 만들어지고 클레이코트에서 하드코트로 바뀌고 관중석 의자도 만들어지는 등 여러 변화가 있었다. 대한테니스협회가 오랜 기간 운영을 하다가 코오롱그룹 계열사가 지난해부터 서울시 경쟁입찰을 통해 운영권을 받았다. 서울시와 코오롱 그룹의 노력으로 주변 환경을 개선되었지만 테니스코트의 기본인 코트 바닥은 대회를 치르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홍순모 집행위원장은 대회전에 백방으로 노력하지 못하고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온유

장호 가족들은 대회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승자나 패자와 관계없이 선수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격려하고 부모와 코치에게 말을 건네며 훌륭한 선수로 키워달라고 당부하는 모습이 대회장 곳곳에서 일어났다. 선수들의 기량이 예전만 못하고 싱거운 결승전일지라도 대회를 통해 한국테니스를 만방에 알릴 선수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다. 선수들 입장에서 국제주니어 랭킹 포인트 1점도 없는 대회이지만 전통있는 대회에 참가해 꿈을 이어가고 대회장의 선수우대라는 따뜻한 분위기에 흡족해한다.

▲ 58회 장호배 우승자 김다빈, 정현

3연패, 4연패하는 우승자 전통

장호배는 다른 대회와 달리 3연패, 4연패 우승자가 나오는 대회로 자리잡았다. 대회의 명성과 권위는 우승자의 기록에 있는데 장호배는 중학교 3학년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우승하는 임용규가 배출되고 고등학교 1학년부터 내리 3년간 우승한 홍다정이 탄생했다. 한국 간판 스타 이형택도 장호배에서 준우승을 해 역대 입상자 명단에 이름을 남겼다. 또한 전국각처에서 뽑힌 대회 출전 선수들은 대회전날 체부동 장호 자택에 서 열린 전야제에 참석하고 숙식을 하면서 대회에서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 장호배 결승전을 찾은 관중들

프로 테니스 선수들이 꼭 우승하고 싶어하는 대회는 그랜드슬램대회 윔블던이다. 상금도 많고 테니스 본고장의 큰 대회이고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대회라 어려서 테니스라켓을 잡은 선수들 꿈의 무대다. 우리나라 테니스 선수들이 꼭 우승하고 싶어하는 윔블던같은 대회가 있다면 바로 장호 홍종문배전국주니어테니스대회다. 장호체육진흥재단이 올해로 58회째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의 윔블던 같은 대회다.
유망주 정현이 부산오픈챌린저의 격한 경기를 치르고 나서 휴식의 틈도 없이 바로 출전했다. 장호배의 특징은 honor system(명예제도)다. 결승을 제외한 1~3회전은 심판없이 경기를 치른다. 사실상 선수들이 셀프 카운트를 하면서 스스로 판정하는 시스템이다.
듀크대 경영대학원의 MBA(경영학석사) 재학생 9명이 학교에서 쫓겨난 일이 있다. 교수가 숙제로 내준 과제물이 서로 비슷하다는 게 원인이었다. 학교에선 이런 부정 사례를 포착하고 정밀 조사한 결과 과제물을 베낀 것으로 간주했고 남의 지적자산을 모방한데 대해 학생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퇴학 조치를 했다. 이렇듯 장호배에서 선수 스스로 판정을 하는 명예제도를 오래전부터 채택해 왔다. 대회장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 초청 선수로 뽑힌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우승을 한다면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장호배 경기 진행과 출전에 이러한 명예가 걸려 있다는 것 외에 대회본부에서는 선수와 코치진, 가족들에게 대접하는 점심 식사 또한 상대에 대한 세심한 배려로 전통 대회의 명예를 드높였다. 장호배는 스쳐 지나가는 선수들을 상대로 외부의 현금 지원을 받아 의례적으로 대회를 열어 우승자를 정하는 여느 대회와는 격이 다르다. 내년 대회에는 역대 우승자들이 시상식에 참석해 테니스로 우리나라 품격을 올리는 장호 가족들의 정성에 화답할 일만 남았다.

▲ 역대 우승자 이름이 새겨진 장호배 우승 트로피

장충장호테니스코트는

장충테니스코트는 1971년 9월에 건립됐다. 대한테니스협회 6대 회장(1965.2~1971.1월)을 역임했던 고(故)홍종문 회장은 당시 아파트값 10채에 해당하는 2천5백만원을 들여 장충동의 남산공원에 센터(하드)코트1면과 클레이 코트 8면을 건립했다(현재는 9면 모두 하드코트).
홍종문 회장은 코트가 완공된 후 서울시에 기부 채납했고 서울시는 38년동안 대한테니스협회에 무상으로 사용토록 했다. 이에 따라 2007년까지 협회에서 관리하다 2008년부터 입찰에 부쳐 졌고 2012년까지 연간 8,800만원의 임대료를 내고 협회에서 관리해 왔다.
5년의 임대기간이 끝난 지난 2013년 입찰에 코오롱스포렉스가 입찰에 참여, 2억2300만원에 낙찰을 받아 2016년까지 운영계약을 했다.
2013년 11월 13일, 장호 테니스재단(이사장 류재성)은 장충테니스코트를 서울시의 개명허가를 받아 장충 장호 테니스장으로 개명했고 이 이름으로 코트 입구에 간판이 서 있다.

장호배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제58회 장호 홍종문배 주니어테니스대회는 한국 테니스 발전의 전기를 마련코자 고 홍종문 전 대한테니스협회장이 만든 우수 주니어 초청대회로 남녀 우승자에게는 3,000달러, 준우승자에게는 1,500달러의 해외대회출전경비를 지원한다.
테니스계의 대부로 큰 족적을 남긴 고 홍종문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미망인 이순옥 여사와 슬하의 3남 3녀가 한국 테니스 발전을 위해 46억 5천 만원을 출연하여 국내 최초로 공익재단법인인 장호체육재단(이사장. 류재성)을 2000년 6월 5일에 설립하였다.
장호체육재단은 장호 홍종문배 대회의 영속적인 개최와 우수 선수 발굴과 육성, 장학사업 그리고 테니스 기술자료 수집과 연구에 관한 사업, 종로구 체부동 사저의 장호기념관 관리 및 운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