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S 산업이 있다. 3S란 Screen, Sports, Sex를 지칭하는 말로 이 세 가지와 관련된 산업을 3S 산업이라 칭한다. 이 세가지는 무릇 감동이 있어야 한다. 영화도, 스포츠도, 사랑도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으면 그것은 무우 맛 나는 수박과 같이 살아도 이미 죽은 것일 뿐이다.

16일. 멜버른 파크의 하루는 수다 떨만한 일들이 꽤나 많았다.

살이 익는듯한 느낌이 들 정도의 폭염이 3일째 지속되는 가운데 온도가 43도까지 오르자 대회 조직위원회는 올해도 어깁없이 현지시간 오후 1시50분에 폭염 규정(EHP, Extream Heat Policy)을 적용해 모든 실외 경기와 연습을 중단 시켰다. 폭염규정은 일정 온도 이상 올라가게 되면 대회 슈퍼바이저가 경기를 중단 또는 연기할 수 있게 만든 규정으로 그 무엇보다 선수와, 심판, 볼키즈의 안전에 최 우선을 두어야 한다는 취지로 1998년 도입되었다.

대회 첫날부터 더위로 인해 경기를 포기하는 선수가 대량으로 나왔다. 그러나 대회조직위원회는 연일 40도가 넘는 온도에도 경기를 지속했으나 오늘도 살인적인 폭염이 이어지자 폭염규정을 적용하여 경기를 중단 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경기장 지붕이 개폐식으로 지어진 로드레이버 아레나와 하이센스 아레나는 지붕을 덮고 실내경기로 운용하여 페더러, 나달, 라드반스카는 실내에서 경기를 진행했다.

약 4시간 후 폭염 규정이 해제 되어 경기를 진행 하려 하였으나 이번에는 갑작스런 소나기로 인해 경기가 중단 되어 밤 7시(현지시각, 호주는 한국보다 2시간이 빠르다)가 넘어서야 금일 예정된 경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더워서 한 번, 비가 와서 한 번, 각기 다른 기상 여건으로 하루에 두 번씩이나 경기가 지연된 것도 하나의 기록이라면 기록일까?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주, 야를 막론하고) 선수들은 틈만 나면 얼음 팩을 목에 걸쳤고 냉수를 머리에 부으면서 올라간 체온을 조금이나마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본선 2회전 마지막 날인 오늘(16일)은 아시아인들의 숨소리가 코트에 울려 퍼진 날이다.
아시아에서 랭킹이 가장 높은 일본의 니시코리(ATP랭킹 17위, 16번 시드)를 필두로 해서 아유미 모리타, 구루미 나라, 대만의 루엔순이 단식에 나섰고 일본의 미키 미야무라, 중국의 정지에, 그리고 일본의 기미코 다테 크롬과 중국의 장수아이 페어, 대만의 슈스웨이와 중국의 펭슈아이, 중국의 한신윤과 일본의 미키 미야무라가 복식에 나섰다.

이가운데 단식의 니시코리가 두산 라조비치(세르비아)에게 3-0, 쿠루미 나라가 32번 시드인 막달레나 리바리코바(슬로바키아)를 2-0으로, 복식에서 펭슈아이 조가 3라운드에 진출했다. 미키 미야무라 페어는 17일로 미뤄졌다.  17일은 중국의 리나와 정지에가 4라운드에 도전한다.

패한 선수들은 아쉬움에 잠 못 이루겠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기자는 참으로 부러웠다. 중국, 일본, 대만 등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나라들은 모두들 이곳 멜버른 코트에서 자국민들의 힘찬 응원을 받으며 열심히 본선에서 뛰고 있는데 우리 선수들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언제쯤 우리나라 선수들을 시니어 무대의 본선에서 볼 수 있을지. 그들이 너무 부러운 하루였다.

16일 게임의 하이라이트는 마가렛 코트 맨 마지막 매치로 나온 베놋 페이리(프랑스, ATP28위, 27번시드)와 호주의 닉 키르기오스의 경기였다. 1,2세트를 타이브레이크에 가서 승리하며 호주인들의 기대를 한 컷 부풀어 오르게 한 닉은 3,4세트를 페이리에게 넘겨주고 파이널 세트에 돌입한다. 랭킹183위의 만 18세 청년에게 그랜드슬램의 풀 세트 접전은 무리였을까? 세트 들어 서자마자 부자연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던 키르기오스는 2게임을 하고 나자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이른바 다리에 쥐가 난 것이다. 관중들은 망연자실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경기동영상 1  경기동영상 2

다리를 절자 엔드 체인지시 주심이 괜찮냐? 경기할 수 있겠냐? 라고 묻자 그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하며 다리를 절뚝이며 리턴 준비를 하러 베이스 라인에 섰다. 기대주인 버나드 토믹이 너무 쉽게 부상을 핑계로 기권을 한지라 호주인들은 포기하지 않는 어린 청년에게 열광했다.

페이리의 강 서브에 손 하나 대지 못해도 관중들은 박수를 보냈고 한 포인트를 따면 지붕이 날아갈 만큼 환호성을 질렀다. 게임은 세트 스코어 3:2(6-7(5) 6-7(5) 6-4 6-2 6-2)로 3시간 20분만인 새벽1시40분에야 끝이 났다. 0:2로 지고 있다가 역전승을 했으니 페이리도 승리의 세리머니를 할 만도 하건만 절뚝이며 걸어오는 키르기오스를 의식해 조용히 네트로 다가선다. 둘은 진한 우정을 쌓은 친구처럼 껴안았다. 그야말로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 둘에게 관중들은 더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하다.

호주오픈 4일차, 태양 볕에 열 받고, 우리 주변국들이 이곳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이 부러웠고, 마지막 선수들이 감동을 주는 하루였다. 두 시가 넘어 경기장에서 나왔으나 결코 힘들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 자리에 있다는 그 자체가 뿌듯하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