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바우티스타 아굿의 하이 발리. 1시간 넘게 연습 경기를 하면서 허투루 치는 샷이 하나도 없는 미스터 성실맨이다. 이 선수를 권순우가 이기면 좋겠다

▲ 경기에 져 라켓 바닥에 던지고 허탈하게 앉아 퍼져 있는 알베르-라모스

 데이비스컵 발렌시아 대회장에서 생긴 일 1

12일 데이비스컵 월드그룹 16강전 조별리그가 열리는 스페인 발렌시아 경기장.

우리나라 테니스 남자 대표팀이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참가한 대회다.

12일 오전 9시부터 캐나다, 한국, 스페인, 세르비아 대표팀의 연습 과정을 지켜봤다.
그중 스페인 35살 동갑나기 바우티스타 아굿과 알베르 라모스 비놀라스의 단식 연습 경기에 적지않은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두 선수는 20년 이상 ATP 투어에서 50위안에 든 꾸준한 선수들이다.
나달, 다비드 페러에 가려 그랜드슬램 대회장 인터뷰룸에 거의 초대받지 못했지만 탄탄한 실력을 오래 갖추고 투어 생활을 해 왔다. 100억원 이상의 상금 수입도 갖고 있는 이들이다.

데이비스컵 국가별 대회 월드그룹 조별 예선에서 스페인은 조 1위로 월드그룹 베스트8에 제일먼저 들어갈 국가로 예상들 하고 있다. US오픈 우승한 카를로스 알카라즈가 뉴욕에서 스페인 남부도시 발레시아로 날라오고 있고 바우티스타 아굿, 복식 전문선수들이 있어 전력이 참가 4개국중 가장 탄탄해 보였다. 여기에 비행기로 한시간 거리인 마요르카 섬에 있는 나달마저 합류한다면 우승도 가능하다.

그런 스페인 팀이 12일 매치 코트에서 훈련을 했다. 그저 볼 맞히고 서브 넣고 하면서 프로농구장에 특설 테니스코트 적응이나 하겠지 했다.

세르게이 브루게라 감독은 2018년 데이비스컵 우승을 이끈 캡틴인지라 다시 사령탑을 맡았다. 브루게라 감독과 함께 아굿과 알베르 라모스가 등장했다. 아굿도 개인 코치, 알베르 라모스도 개인 코치를 대동했다. 코치들은 볼과 수건을 들고 코트 한켠에 있으면서 이들 두 선수의 랠리 워밍업을 도왔다. 한 20분 랠리를 하다 말겠지 했는데 웬걸 정식 한 게임을 시작했다. 2시부터 4시반까지 코트를 스페인이 쓰고 두시간 반가량 나라마다 쓰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아굿의 서브로 시작한 게임. 스위스 시계 톱니바퀴 물려 돌아가듯 서브 자세가 간결하고 자연스러우면서 원하는 지점에 총을 쏘듯 꽂혔다. 알베르 라모스의 리턴 또한 빨래줄로 네트 살짝 넘어 갔다. 좌우, 크로스, 다운더라인으로 톱스핀과 슬라이스가 오갔다. 베이스라인 뒤에서 아굿의 서브를 보니 마치 프로야구 포수 뒤 명당 자리에서 관전하듯 볼이 뱀처럼 휘어들어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걸 선수들이 어떻게 치지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빠르고 강한 볼은 자유자재였다. 신기하게 박스에 들어오는 볼을 알베르-라모스는 기가 막히게 상대에게 보내고 아굿이 슬라이스로 3구 리턴하자 라모스는 바로 가서 크로스로 감아 보냈다. 이런 과정을 한시간 넘게 하는 사이 알베르-라모스가 자신의 플레이에 마음이 안드는지 주머니에 있는 볼 하나를 관중석에 쳐 올려 보냈다. 관중이라곤 경기장 데코레이션 하는 장인들만 있었다. 일하다 말고 경기를 지켜보고 관중석에 떨어진 볼을 지켜봤다.

그리고 얼마 안있다가 경기는 6대3으로 아굿의 승리로 끝났다. 네트 앞에서 두 선수는 경기 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육혈포 결투를 마친 두남자는 각자의 벤치로 돌아갔다. 알베르-라모스는 라켓을 땅에 패대기쳤고 그 소리는 공간을 때리면서 경기장을 긴장시켰다. 알베르-라모스는 벤치에 인생 망한 것처럼 엉치부터 목뼈까지 벤치에 축 늘어붙여 앉았다. 경기때 볼 주고 수건 건네던 중년의 코치가 다가가 물을 건네며 말을 던졌다. 스페인 복식 선수들이 들어와 워밍업을 하는 시간까지 벤치에서 코치와 선수의 대화가 이뤄졌다.

그러더니 이내 알베르-라모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 광경을 브루게라 감독은 다 지켜보면서 경기장을 나가는 아굿과 한참을 진지하게 그리고 조심스럼 태도로 이야기했다. 먼발치로 목격한 지라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르지만 아굿에게 이날 경기의 내용과 과정에 대해 평가를 한 것 같다. 아굿 코치는 같은 고향 출신의 선배로 ATP 50위안에 들었던 선수출신이다.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고 코치역할을 할때는 조심스럽게 조용히 선수에게 말을 건네는 사이였다.

단식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나가고 스페인 복식전문 선수들이 들어왔다. 철저히 개인적이었다. 팀이라고 경기장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쿨다운시간을 가졌다. 코치도 각각 따라와 붙었다.

브루게라 감독은 신,구 복식 조를 구성해 경쟁을 붙였다. 그라노예르스와 페드라를 복식 1진으로 꾸미고 다른 신예 두명을 복식 2진으로 해서 실제 경기를 했다. 서브와 감각적 리턴은 말할 것도 없고 서브때 파트너 서버와 사인을 주고받는 것은 두팀 모두 당연히 이뤄졌고 리턴때도 파트너와 등 뒤 손가락 사인을 주고 받아 볼 하나에 사활을 걸었다. 앞선 단식 경기보다는 선수들이 화합과 팀워크, 파트너 실수에 대한 격려를 위해 얼굴에 미소를 보였다. 이에 앞서 브루게라 감독은 네트에 있는 싱글 포스트를 제거했다. 아쉽게도 한국 대표팀이 복식 연습때 싱글 포스트를 그대로 둔채 한 것에 비하면 스페인코칭스태프는 아주 디테일했다.

복식 경기를 코트 레벨에서 목격하는 경우는 그동안 드물었는데 역시 경기 관전은 코트레벨이고 베이스라인 뒤가 명당이었다. 결론적으로 4개국중 스페인 전력이 가장 고르고 강했다. 우리나라의 권순우가 알베르-라모스와 만나 1승을 하고 복식 남지성-송민규가 스페인의 그라노예르스-페드라 조와 상대하면 무적함대 스페인과의 대회 마지막날 경기를 멋있게 할 것이다.
연습을 실전처럼 하는 조별 리그 개최국 스페인을 이긴다면 기분좋은 출장이 될 것이다.

12일 4개국 대표 선수들의 실전같은 연습 경기를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지켜보면서 맨처음 그랜드슬램 출장때의 가슴 뻐근함이 다시 생겨났다. 테니스라는 종목에 관심을 두고 해외 기라성 같은 선수와 대형 경기장을 보면서 가슴 벅참은 지금도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있어서 그 힘으로 이후 테니스 기사를 3만건 이상 쓰고 있다.

그런 와중에 우리나라 대표팀이 월드그룹 16강에 오르면서 테니스 강국들을 접하고 대형 무대를 볼 수 있었다.  홈앤드 어웨이 국가대항전과는 사뭇 달랐다. 프로 선수들과 아마추어 선수들의 차이도 가까운 거리에서 확인할 수있었다. 실력의 차이, 랭킹의 차이는 연습 경기에서도 고스란히 목격됐다. 이들은 고대 대표 급 기사 1인으로 전투의 승패를 결정하는데 나선 전사들이고 자신이 문제가 생기면 팀 전체에 패배를 안겨 가족도 잃고 땅도 잃고 나라도 잃는다는 각오로 경기를 했다. 그것도 같은 팀의 1,2장끼리 연습 경기를.

이에 앞서 4개국 중 데니스 샤포발로프 등이 빠지면서 최약체로 꼽히고 우리나라가 해볼만한 나라로 보인 캐나다는 펠리스 오제 알리아심이 12일 매치코트에서 연습 경기를 하면서 강세로 돌아섰다.

큰 키에 자로 잰듯한 자세로 서비스 박스 곳곳에 볼을 찔러 넣는 것은 혀를 내두르게 했다. 팔을 쭉 뻗어 먼 거리에 볼을 두고 왼발을 축으로 하고 크로스와 다운더라인 임팩트는 매번 위너이기에 충분했다. 볼 하나를 신중하게 총을 쏘듯 상대에게 보냈다.

캐나다의 상대 선수는 펠릭스와 영광스럽게 경기를 한다는 자세로 연습에 임했다. 코치도 연신 설명을 하며 자세 교정에 들어갔다. 짧은 시간에 익힐 수 있을까 의심이 들지만 언제 어리지만 세계 20위권 선수와 경기하는 것에 대만족을 하고 하나하나 배워갔다.

대표팀은 에이스 하나로 다른 나머지 선수들이 상향 평준화 되는 교육의 장이고 훈련의 장인 것이 캐나다 대표팀의 훈련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펠릭스의 연습 경기는 그것으로 끝나나 했다. 하지만 옆 체육관에 마련된 곳에서 패턴 연습이 이어졌다. 오전 9시부터 1시까지 매치코트에서 연습을 하고 잠시 요기를 한 뒤 특설 예비 코트에서 메디신 볼을 들고 베이스라인에서 트레이닝을 한 직후 라켓을 들고 코치가 보내오는 박스볼을 매번 위너로 냈다.  트레이너는 코치에게 볼 방향과 속도를 이야기했다. 펠릭스가 좋아하는 코스 약한 코스에 볼이 바운스됐다.  코치와 트레이너 그리고 선수가 온 코트 훈련을 했다. 셔츠가 젖어 다시 갈아입은 펠릭스는 매의 눈으로 선수의 코트 구석 구석 볼을 보내는 코치에 집중하면서 장점 살리는 연습을 했다.

펠릭스 옆에선 세르비아의 라슬로 제레, 케마노비치가 실전을 방불케하는 연습을 하며 저마다 조별 리그 통과를 목표로 뛰고 있다.

데이비스컵 월드그룹 16강 조별리그 연습 첫날을 취재하면서 11월 23일부터 열리는 베스트 8들의 8강, 4강, 결승전 장소 말라가 항공권을 덜컹 예약했다. 인천에서 스페인 말라가 까지 비행기는 세번을 타고 갔다오는데 100만원 정도다. 우리나라가 그곳에 간다면 금상첨화겠다. 못가더라도 프로들의 국가 기여 의식과 개인 성취의식이 담긴 진정한 프로 모습을 볼 수 있기에 그 비용은 투자할만했다. 9월은 16강 조별리그로 스페인에서 취재한다면 11월은 베스트 8들을 만나게 된다. 스페인이 올라간다면 나달과 카를로스가 합류해 우승을 향해 달릴 것이 뻔하다. 그래서 말라가에서 대회를 유치했다. 스페인, 세르비아 등등 테니스 선진국의 자존심 대결이 예상된다.

각설하고.

13일 밤(한국시각) 한국과 캐나다의 경기로 대회 막이 올라간다.

한국은 잃을 것이 없는 언더독. 지금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시스템의 레벨상 대단하다. 권순우가 있기에 가능했고 남지성-송민규 복식 조가 있기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 팀 조화에 기여하는 홍성찬도 있고 오랜 대표팀 트레이너 경력의 왕서훤 트레이너, 평생 테니스를 성실하고 차분하게 대해온 김영준 코치와 박승규 감독의 삶이 발렌시아에서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대회장에서 언더독에서 다크호스가 과정은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한국 선수들은 경기전 공식 인터뷰에서 한마디씩을 했다. 송민규는 "그동안 흘린 땀과 눈물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고 남지성은 "큰 복식 경기를 많이 하고 호흡을 오랫동안 맞춰와 어느 팀을 만나도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좋은 결과를 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에이스 권순우는 "형들이 잘 해주고 나도 내몫을 한다면 좋은 경기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세계 주니어 톱3 출신 홍성찬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당찬 어조로 말했다.

사실 100위안에 있는 선수 1명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하지만 팀워크는 4개국중 1위, 배운다는 겸손한 자세 또한 2위안에는 든다. 여기에 정현이 가세했다면 우리는 베스트8에 너끈히 드는 나라가 될 것이다. 아무튼 출전만으로도 취재만으로도 결과에 관계없이 대만족이다. 이제 막이 오르면 얼마나 더 많은 일들이 생길까 기대된다. 기대하시라.

▲ 연습 경기때도 볼을 고르는 스페인의 바우티스타 아굿. 코치를 전 테니스 선수출신의 동네 형을 대동했다

▲ 대표팀의 공통점은 테니스를 벽돌쌓듯 하나하나 쌓으면서 성실하게 올라왔다는 것

▲ 남지성의 포핸드 임팩트. 볼을 멀리 놓고 치는 편이다.

▲ 국가대표 송민규. 동기들은 실내테니스장 지도자로 활약하고 송민규는 대표 복식 선수로 자신의 가치를 올리고 있다

▲ 싱글포스트가 옥에 티

▲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물 두병만 마신채 매치 코트에서 4개국 선수 연습 과정을 지켜본 신태진 원장(신태진아카데미). 2018년 윔블던 동행 취재에 이어 2022 데이비스컵 월드그룹 취재에 테니스피플 기술 고문 자격으로 동행했다

▲ 스페인 선수들 연습 경기를 팔짱 끼고 앉아서 보다 일어서서 보는 신태진 원장

▲ 캐나다 알리아심이 바르셀로나로 급히 날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