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로부터 수십발의 총격을 받은 신문배달 트럭

미국에 가면 미국 경찰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LA 경찰은 악명이 높은데 며칠전 어이없는 일이 또 벌어졌다.
2월7일 새벽 LA 경찰관 7명이 주택가에서 잠복근무 중 신문배달을 하던 픽업트럭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1명에 총상을 입혔다. 이들은 생명 협박을 받은 경찰 간부의 자택 밖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용의 차량이 접근한다는 무전을 받고 아무런 확인도 없이 트럭 후면에 집단 사격을 해서 50발이 넘는 총탄 자국을 남긴 것이다.
등 부위에 두 방의 총알을 맞은 것은 71살의 멕시코계 할머니였고 <LA 타임스> 배달을 하는 딸(47)을 도와주러 나선 길이었다. 수배중인 경관살해범이 전직 경찰에다 중무장 명사수인 것을 아는 잠복 경관들이 겁에 질린 나머지 용의차량에 정지신호나 구두 경고도 없이 무작정 총을 갈겨 댄 것이다. 범인의 픽업은 닛산 흑색 차량이었고, 모녀의 트럭은 토요다 청색 차량이어서 형체만 비슷할 따름이었다.
2월 11일 현재 검거가 되지 않은 ‘2013년 남가주 총격사건’의 범인 크리스토퍼 도너(33)는 전직 LA 경찰관이자 예비역 해군 대위인데 수습경관 시절 자신을 감독하던 여자 상관이 용의자 체포과정에서 정신지체 장애자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고 보고를 했다가 자신의 감독관을 중상했다고 거꾸로 몰리면서 2009년 경찰에서 쫓겨났다.
불만을 품은 도너는 5년이 지난 이달 3일 징계위원회에서 자신의 변호사 역할을 맡았던 전직 경찰 캡틴(총경급)의 딸과 보이프렌드를 LA 교외 어바인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총으로 쏴 죽였다. 그는 다음날 인터넷에 인종 차별과 불의에 항의하는 ‘선언문’을 올리고 40명 이상의 LA경찰국 간부들에게 보복하겠다고 밝혔다. 도너는 이어 두 차례에 걸쳐 3명의 경관에 총격을 가해 1명을 사살했고 이후 종적을 감춰 남가주 일대에 검거령이 내려진 상태다.
이 사건에서 드러난 LA지역 경찰의 행태는 참으로 무능하고 비겁하다. 그러나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해 경찰 지휘부가 변명으로 일관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일 뿐 아니라 언론이나 시민 여론도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거나 추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앞으로 조사위원회를 적당히 운용하다가 해당 경관들은 직무를 수행하다 ‘정직한 실수’를 했을 뿐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기껏해야 ‘손목 때리기’ 징계에 그칠 것이 뻔해 보인다.
2002년 효순·미순이 사건도 그랬다. 운전병과 통제병에 대한 군사재판에서 가장 너그럽게 보더라도 중과실치사 혐의로 유죄 평결을 내리고 지휘관에 대해서도 최소한 지휘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한데 전원 무죄 평결에다 행정처분도 없었고 피고인들의 신병을 빼돌리기까지 했다. 하기는 미국인들에게 심대한 충격을 안긴 9/11사태 후에도 고위 관료 중 누구 한 사람 책임지고 사임한 일도 없는 미국이니 특히 놀랄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미국 경찰은 견제 세력이 별로 없어서 ‘길거리의 법이자 권력’으로 행세하고 누구도 그들을 가로막을 일이 없다. 우리나라 경찰이 검찰과 국정원, 경호실, 군 등 수많은 상전에 치이고 노조와 시민단체, 언론, 시위대는 물론 술주정뱅이에 이르기까지 항의를 받는 처지라 숨을 크게 쉬지 못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 경찰의 권한과 위상은 오히려 한국의 검찰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 듯하다. CIA는 당연히 국내 사건에 간여를 못하고, 연방경찰인 FBI마저 특정 범죄 관할권을 행사할 뿐 일반 범죄에 대해서는 지역 경찰과 협조관계를 유지할 뿐이다. 검찰의 경우 공소유지가 주요 기능이라 자체 수사권이 없고 경찰에 대해서도 수사지휘권은 없고 굳이 말하면 수사지도권이 있는 정도라고 봐야 한다.
문제는 법률집행자로서 군림하는 경찰의 일반적 수준이 그리 높지 못하다는 데 있다. 1968년 미 민주당 시카고전당대회 난동사건은 일명 ‘경찰 폭동’으로 불린다. 당시 항의 시위대에 대해 시카고 경찰이 과잉진압을 벌이는 바람에 전국적인 소요사태로 이어졌고 1960년 반전·민권운동의 대표적 전환점이 됐다. 그러나 시카고 경찰은 뉴욕 경찰보다 권위가 있고, 뉴욕 경찰은 LA 경찰보다 점잖다는 것이 중평이다.
LAPD를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면 첫 머리에 “고도로 부패한 경찰조직”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처럼 단정적인 표현을 써도 항의를 못할 만큼 부패사건이 많았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1965년 ‘와츠 폭동(Watts Riot)’은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순찰대가 과잉폭력을 행사한 데서 촉발됐고, 1992년 ‘LA폭동(로드니 킹 폭동)’ 역시 흑인 로드니 킹에 대해 백인 LA 경찰관들이 과도한 폭력을 휘두르는 현장을 찍은 동영상이 보도되면서 터졌다. LA경찰의 인종차별과 폭력, 총기남용은 흑인 경찰국장이 나오고 소수인종 간부들이 대거 임용된 이후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2009년4월 LA 교외 산타아나 경찰은 한국계 미국인 수지 영 김(여·김)을 30분간의 차량 추격전 끝에 사살했다. 경찰이 김씨를 쏴 죽인 후 김씨 자량에 접근했을 때 뒤 좌석 베이비 시트에 13개월짜리 딸이 총에 맞지 않고 무사한 채 뉘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도에 따르면 추격전을 벌이면서 일부 경관이 뒷좌석에 베이비시트가 보인다고 무전 발신을 했지만 다른 경관들이 이를 들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건 이후 <LA Times> 블로그포스트에는 독자 반응이 실렸는데 다수 의견은 총을 쏜 것이 정당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김씨 차량이 음주운전 혐의로 정지 명령을 받았을 때 김씨는 고속도로로 피했고 추격전 끝에 경찰 순찰차가 김씨 차를 멈추려고 들이받았을 때 김씨는 순찰차 2대를 들이받으며 다시 도주했다. 결국 경찰이 들이받은 것은 차량을 멈추기 위해 정당한 행위를 한 것이고, 김씨가 도망가려고 들이받은 것은 경관의 생명을 위협한 것이라 사살이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비무장이었고 다른 위협행위를 한 것도 없었다.
2007년 12월31일 밤에는 LA지역 경찰은 UCLA를 졸업한 미술가 한국계 마이클 조를 쇼핑몰 주차장에서 사살했다. 조씨가 쇠지렛대를 들고 경관들에게 접근했기 때문에 부득이 총을 쐈다는 것이다. 한참 전인 1996년 한국에서 미국에 사는 가족을 방문하러 온 김홍일(27)씨는 차량을 길가에 대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30분동안 도주하다 주차장에서 경찰 총에 맞아 사망했다. 경찰이 회전 위반을 하는 김씨 차를 발견하고 정지 신호를 보냈지만 영어를 잘 못하는 김씨가 도주하다 막다른 곳에 몰리자 경관 2명을 차로 들이받으려 시도했다는 것이다.
한국 또는 한국계 사람들과 관련된 사건만 찾아봐도 이 모양이니 흑인, 히스패닉, 백인들이 희생된 사건들을 망라하면 더 기막힌 일도 많다. 경찰이 이처럼 방아쇠를 쉽게 당기는 것은 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것과 관련이 있고 LA에 온갖 범죄자가 들끓고 있다는 것도 이유가 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경찰이 보호자가 아니라 범행자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더 심각한 것은 미국 사회를 이런 불의에 대해 눈을 감고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음주운전을 하다 도주하고 그 과정에서 경관을 들이받으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살을 한 데 대해 어떤 책임을 졌다는 보도를 본 적이 별로 없고 말을 들어본 적도 거의 없다. 아마 내가 가진 법적 정의의 개념과 그들의 정의 개념이 아예 다르거나, 아니라면 그들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불의를 행하고 있든지 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후자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뿌리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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