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피플
피플명사
안동테니스 상록수, 손영자 부회장
안동=황서진 기자  |  nobegub@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10.05  08:14:14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네이버 구글

 

   
안동테니스협회 손영자 부회장(오른쪽 두번째)이 안동오픈 복식 시상식에서 살포시 인사를 하고 있다
   

안동시테니스협회 손영자 실무부회장 
1961년생 현풍초중고. 효성여대,대학원 졸업. 국민생활체육안동테니스연합회 부회장 5년, 안동테니스협회 실무부회장 12년째 수행 

 

안동은 테니스도시다.

초등학교부터 실업 팀까지 테니스팀의 수직계열화가 이뤄졌고, 안동오픈 엘리트대회부터 웅부배 전국주니어대회, 안동하회탈배 동호인복식대회, 안동단테매 동호인단식대회에 이르기까지 대회의 종류를 합치면 명실상부 그랜드슬램대회급이다. 안동은 전통적으로 주니어 테니스 선수를 꾸준 히 육성하여 전국 최강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것을 구축한 데는 안동에서 오랫동안 초등학교 테니스를 키운 권영식 선생의 노력이 크다. 현재는 안동시테니스협회(회장 김수진)의 노력이 지대하다. 안동시테니스협회는 행정관청인 안동시와 학생 교육을 담당하는 안동교육지원청의 안동용상초, 서부초, 안동중, 복주여중, 안동여고, 안동고의 각 학교장이 삼각편대를 이루며 '학교 테니스'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다. 안동 출신 선수로는 국가대표 황덕모, 지승호,권용식, 권오희,조윤정, 임용규, 권순우 등이 있다.

이는 7~80년대 선수와 동호인들이 나무 라켓을 들고 전국 최장 거리인 50m 길이의 백보드 연습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등 일찌감치 안동은 테니스의 대표적인 도시가 됐다. 

이 테니스 토양을 북돋우는데 어찌 한두사람의 땀과 눈물만이 있으랴마는 이를 발전시키고 테니스도시로서 각인하고 전통을 계승하는데 두 딸을 테니스 선수로 남부럽게 키워내고 협회 운영을 힘있게 하는 한국테니스 '철의 여인'이 있었다.  안동테니스협회 손영자 부회장이다.  현풍초, 현풍여중고(현재는 포산중)시절 약 5년 테니스 선수생활을 한 인연으로 평생 테니스인으로 살고 있다.

9월 21일부터  '대한민국 테니스선수 다 출전하다시피한' 안동오픈테니스대회 기간 중에 손 부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살펴보고 만나 인터뷰했다.

안동테니스협회  손영자 실무부회장은 대회때마다 매일 아침 일찍 떡방앗간부터 찾는다. 금방 만들어진 떡을 사서 코트로 나르는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가끔은 떡에 물릴까봐 제과점으로 가서 빵과 커피를 사오기도 한다. 올해는 추석명절앞이라 방앗간이 붐벼서 떡을 많이 사지는 못했다고 미안해했다. 안동을 찾아오는 손님들 서운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기를 12년째다. 선수들은 그래서 안동가면 살찐다고 한다. 관계자들은 ‘안동오픈에 가면 정말 제대로 대접받는 느낌이다’ 라고 한다. 올해는 선수 휴게실이 부족하고 코트가 부족해 미안해 했다. 

손 부회장은 두딸에게 테니스선수의 길을 걷게 했다.  두 딸은 협회 일을 하는 엄마를 어떻게 보고 생각할까. 

큰 딸 정영원(안동여고-NH농협은행)은 "엄마로서, 안동 테니스협회 부회장으로서도 정말 대단하고 멋있는 사람"이라며 "충분히 엄마 할 만큼 했으니까 괜히 힘든일 도맡아서 하지 말라고 말리기도 한다. 엄마는 테니스 선수출신이라는 책임감과 사명감 하나로 일을 놓지 않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정영원은 "내게 엄마는 테니스인생에서 정신적 지주이자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존경하는 테니스선배"라고 말했다.

둘째 딸 정보영(복주여중-안동여고)은 "안동협회 부회장으로서 항상 좋은 말과 먼저 나서서 일을 하는 행동파"라며 "테니스 선수시절과 협회일을 해 오면서 겪은 삶의 철학을 보고 들으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선수부모, 협회 임원으로서의 손 부회장의 테니스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동시 테니스협회 실무부회장을 12년째 해오고 있는데 어떨 때 보람을 느끼는가
= 코로나19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안동웅부배와 안동오픈을 열게 허락해 주신 권영세 안동시장님을 위시해 안동시체육과 과장님과 직원들, 안동시체육회 관계자 여러분들게 감사드리고 싶다.

협회일 하면서 큰 보람은 보다는 사명감으로 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보람이라면 부족한 나에게 늘 고맙다고 말해주는 동호인들의 응원에 힘을 얻는다. 사실 동호인들에게는 항상 미안하다.  엘리트 선수들은 인생이 걸린 문제니 취미로 테니스를 즐기는 동호인들 보다는 선수들에게 더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 분들께는 더욱 감사하면서 기쁜마음으로 협회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협회 수장으로 묵묵히 버텨 주시고 나를 믿어주는 김수진 회장님과 친동생보다 더 큰 힘이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내편이 되어주는 황정모 부회장이 지금까지 12년째 협회일 하면서 얻은 큰 인연이고 재산이다. 또 두 딸과 안동의 선수들의 좋은 결과가 나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어떨 때 힘이 드는가
=내가 할 일은 꼭 하고 책임감 있게 해내지만 낯내는 일은 할 사람이 있을땐 적당히 빠져 주는 것,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본인은 다 잘하고 사는줄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반해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 잘 없다.
말을 안하는 사람은 결과에 욕을 덜먹지만 내가 잘한다고 떠드는 사람은 더 잘 살아야 하는데 실제보면 그렇지가 않다. 말만 앞서고 행동은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기운빠질 때 많다.
올해 안동오픈은 대학연맹에서 주관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을 문제삼기 보다는 오로지 대회를 잘 치러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대회를 준비했고 결과적으로 두 연맹이 서로 잘 하고자 하는 의지와 실제 대회진행을 깔끔하게 잘 마무리 해 주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대회가 선수들이 우선시 되고, 선수들에게 더 좋은 혜택이 돌아간다면 두 연맹이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구도는 오히려 잘 된 것 같기도 하다.

-테니스대회를 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안동시도 우리 선수들을 위함이다.
첫번째가 우리 안동선수들에게 와일드 카드 혜택을 주기 위해서다.
안동웅부배와 안동오픈대회는 내가 협회에 오기 전부터 하고 있었고 실무부회장을 맡으면서 새로 만든게 ATF국제대회였다. 올해부터는 ITF대회도 유치해서 열 계획이다.

예전엔 우리 안동 주니어들이 국제대회 본선을 갈 실력이 안 되었다. 그래서 우리 안동지역 선수들을 위해 대회를 만들어 와일드카드라는 혜택을 주고자 했다. 그래서 두 번 대회를 치렀는데 올해 코로나로 열리지 못했다.
지방에서 우수 선수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연습 조건은 전국에서 안동이 최고다.
초, 중, 고, 대학, 실업, 지도자들이 서로 연계되어 공부로 보면 월반 시켜서 하는 것처럼 선배들과 함께 훈련이 되는 곳이다.
연습에는 문제가 없이 월등히 유리한 조건이지만 투어급 선수 인솔이 제일 큰 문제 였는데 내년에는 그 문제도 긍정적으로 검토 되고 있어 그 문제만 해결 된다면 안동이 테니스선수 시키기 전국 최고의 조건이지 싶다.
특히 안동오픈의 제일 수혜자는 와일드카드 받고 출전한 강구건처럼 안동시청 소속이란 울타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안동오픈 뿐만 아니라 ATF ,ITF대회 유치의 목적이 선수를 키워보지 않은 일반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수도 있겠지만 고2가 돼서까지도 본선대회 못 뛰어 본다고 낙담하는 부모들이 늘 안쓰러웠다.
안동선수들에게 와이드카드를 줘서 외국대회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하는 국제대회에 본선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욕심일까 아니면 너무 소박한걸까

-이번 안동오픈도 그렇지만 바로 전에 초등대회인 웅부배까지 열렸었다. 연이어 대회를 치렀는데 힘들지 않았는지?
=협회일과 안동오픈 10년 치르고 나니 옆에서 자신의 일 제쳐두고 도와주는 지도자들도 많이 생겼다. 협회 이사들과 학부모들까지 적극 도와주신다. 공무원들도 많은 힘이 되어 주신다.
이번 안동오픈은 정현과 권순우 빼고는 대한민국 선수 다 왔다고 본다. 초등대회인 안동웅부배도 280명이 참가를 했다. 웅부배는 올해로 13회째다. 웅부는 안동의 옛 지명이다.
예전부터 웅부배는 최소 200명 이상 참가를 한다. 웅부배는 다른 대회와 달리 참가비를 받지 않는다. 참가선수들에게는 안동지역의 상인들께 도움을 주기 위해 안동에서 나오는 상품으로 선물을 준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대회가 9월에 열렸지만 보통 2월이나 3월에 열리기 때문에 날씨가 쌀쌀하다.
협회에서는 학교 학부모님들의 협조를 얻어 매일 오뎅탕을 끓여서 참가선수와 관계자, 관중들에게 대접을 해 왔다. 올해도 안동을 찾아주시는 선수단에게 섭섭하지 않게 다과도 많이 대접했고 마음을 많이 썼다.
웅부배는 우리 안동선수들은 거의 다 우승했다. 새싹부는 생긴지 얼마 안됐다. 강구건이 12세부 우승했고 권순우. 정보영 정영원도 우승했다. 정현도 10세부때 우승했었다.

-안동테니스에 대해 알려달라
=안동은 시골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지역 하고는 경제력도 차이가 있지만 생각의 차이가 크다. 서울 아카데미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들은 투자를 아낌없이 과감하게 한다. 지방은 아직까지 서울부모를 못 따라간다. 내 자식을 위해 내가 투자한다는 생각 잘 안한다.
안동에서 테니스선수는 돈이 거의 안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안동은 전국에 없는 유일하게 시예산에 꿈나무 육성지원금 이라는 운동부 예산이 있다. 예전에 체육회국장님 하시던 분이 만들어 놓으셨다.
안동에는 다른 도시에 비해 운동종목이 적은 편으로 총 종목이 20개 미만이다. 테니스를 비롯 축구 야구 육상 카누 인라인 정도다. 위상은 테니스가 단연 1위다. 도민체전을 해도 부동의 1위 종목이다.
안동을 대표하는 종목이다. 예전에는 축구가 1위였는데 테니스가 7~8년째 앞서고 있다.

-안동협회 어떻게 운영되나
=어디든지 혼자서 잘 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불협화음이 일든 화합을 하든 잘 이끌고 가는게 중요하다. 일단 김수진 협회장님은 어떤 경우에도 ‘잘 못한다,서운하다’ 는 말씀을 안하신다. 무조건 협조해주시고 응원해주신다.  동호인과 엘리트가 상생하는 도시가 안동이다.
어찌보면 그래서 코치들이 더 열심히 한다. 안동에는 코치들이 열심히 안하면 못살아 남는다 .
연말에 단식우승 한 선수에게 장학금주고 전체 선수에게 용품전달식을 갖는다. 테니스용품을 주는데 요넥스가 특히 안동테니스에는 은인이다.

안동지역이 테니스가 잘 되는 이유가 있다.
아마도 코치들이 잘 해주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꿈나무 지원금이 있기 때문에 선수개인에게 시합비 부담이 없다

전체 코트는 부족한데 학교코트는 전국에서 제일 잘 되어 있다.
안동서부초 2면 용상초 2면 안동중 5면 안동고 3면 복주여중 3면 안동여고 2면 등 학교 안에 전용코트가 다 있고 학교마다 숙소나 휴게실이 정말 잘 되어 있다. 예전에 시민운동장은 엘리트 선수만 칠 수가 있었다. 그래서 학교코트를 새롭게 정비해서 엘리트는 각 학교에서 운동을 하게 하고 시민운동장은 동호인들에게 돌려줬다. 야간에 전기요금 정도만 내고 낮시간엔 무료로 사용한다.

안동의 동호인들은 정말 좋은 분들이 많다. 이번에도 몇 개월동안 코트 공사하느라 동호인들이 운동을 하지 못했는데 웅부배 열리기 전 이틀동안 잠시 시민들에게 개방을 했었다.
몇 개월 기다린 끝에 단 이틀동안 사용을 하게 해 준것에 대해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오히려 우리 협회 관계자들이 미안해할 정도였다.

-테니스선수 출신으로 또 두 자녀를 테니스선수로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협회일을 오래 해 오면서 얻는 삶의 지혜도 많을 것 같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안동의 테니스 지도자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부모마음으로 제자를 본다면 실패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누구나 나 자신한테 서운하게 하면 금방 잊혀지지만 내 자식일에 서운하게 하면 두고 두고 속상한 것이다.

=나의 딸들에게는 늘 ‘밝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살라고 한다.
사람의 미래는 아무도 모르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니까 어떤 선택도 내몫이고, 결과를 가지고 남의 탓을 하면 내가 더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모든 잘못은 내 탓으로 돌려서 배움을 삼고 매사를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내가 먼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 주기 바라고 있다.

-선수부모로서 어떻게 자녀를 가르쳤나
=나도 두 아이를 선수로 키우고 있기에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게임에서 이기고 질 때마다 일희일비하며 애들까지 망치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다.
때로는 따끔하게 아이들 인성부터 챙기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지만 잘 변하지 않은 것을 보고 포기할 때도 많다. 그러면서 한 번 더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선수부모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은
='시합장 따라 다니고 박수치는 시간보다 돈을 벌어라. 일을 해라. 아이들은 지도자에게 맡겨라’이다.
나 자신도 아이들 경기 지켜보는 시간보다 협회일을 우선했다. 아이는 스스로 커갈 수 있도록 자신감 키워주고 아이가 필요한 부분 지원해주고, 음식 잘 챙겨 먹이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시합장 따라와서 게임에 개입하고 다른 아이 잘되는 것 보며 시기하고 자신의 아이 다그치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두 딸들이 엄마를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다. 자신감 넘치고 강하다고 느끼는데 실제도 그런가?
=나를 겉으로만 보는 사람들은 내 성격이 굉장히 강한 줄로 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은 나를 잘 안다. 매우 여리다. 다만 업무적으로 강한 사람에게 강할 뿐이다.
약한 사람한테는 매우 약하다. 어려운 사정 얘기하면 무조건 도와준다.

예전에 직장생활 때 말을 안하면 모르더라. 일만 묵묵히 하니 바보취급을 하고 상대에게 예우을 안해 주더라. 그래서 내가 바꾸었다. 이래가지고는 고생만 하겠구나 싶었다.
안동은 남아선호 사상도 강하고 꽤 보수적인 지역이다.

지금도 협회일을 하면서 동생들보고 얘기를 한다. 내가 열심히 했다고 나를 존경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존경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 내가 일을 하는데 그냥 믿고 따라주라고, 내가 먼저 걸어간 길이니만큼 속는셈 치고 따라와 달라고 얘기한다.

두 딸아이를 키우면서 갈등이 왜 없었겠나. 여자선수라서 중앙여중고로 보내라는 유혹도 많았다. 그런데 내가 안동이 좋다고 부모들께 한 말에 발목이 잡혀 될 놈은 어디서도 된다고 하면서 안동을 지켜내려 노력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아이들이 역차별을 당하는 적이 많았다.

   
78년 현풍여고 활약상

-테니스와 어떤 인연이 있나
=고등학교까지 선수를 했다. 현풍초, 현풍여중고(현재는 포산중)시절 약 5년 테니스 선수생활을 했다. 중학교 2학년때 테니스를 시작했다.
예전에 대구가 광역시가 되기도 전의 일이다. 70년대 중반 그 당시 대구고등학교에 테니스부가 잘 나갈 때 였는데 대구고에 계시던 선생님이 전근을 오시면서 테니스부를 만드셨다.

나는 그때 벌써 키가 170cm로 매우 컸었다.
반 전체 학생에게 라켓을 들게 하고 테스트를 하셨는데 책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테니스선수 하기 싫어서 일부러 공을 멀리 담장밖으로 쳐냈다. 아웃시키면 탈락될까 생각했던거 였는데 그게 오히려 선발이 된 이유였다. 힘이 좋다는 거였다. 우리 학교에 4반이 있었고 한반에 한명씩 선발이 됐다.

우드라켓에 스트링도 스스로 매는 시절, 테니스코치가 아닌 체육선생님이 공을 던져주던 시절이었다. 그때도 백보드 뒤에서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운동보다는 책이 좋았던 여학생이었다. 그래도 그 네 명이 소강배도 나갔고 전국대회 단체전에 나가서 입상을 해 지역신문에 나기도 했었다. 손영자. 송순임. 곽석자. 김연옥이 현풍4인방이었다. 옛날 얘기다 .

-테니스선수에서 어떻게 교편을 잡게 됐나
=초등학교 2학년때 일이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예뻐하셨던 것 같다. 친구들과 함께 담임선생님 자취방에 놀러 갔는데 학교 급식으로 나누어 주고 남은 옥수수빵이 가득 있었다.
그 빵을 우리에게 간식으로 주셨는데 어린 마음에 선생님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때 다짐했었다. 나도 이다음에 커서 꼭 선생님이 되어야지.
그런데 정말 사범대를 가고 교사가 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때 그 빵은 선생님이 집으로 가져갈 것이 아니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야 했다는걸 깨달았다. 그때 이후부터 그 선생님과 연락을 안하고 지냈다. 요즘 웅부배에 나오는 새싹부 선수들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생각은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고도 하지 않는가.

체육특기생으로 효성여대 사범대에 진학했고 열심히 공부했다. 학교 입학하자마자 게엄령이 선포되어서 학기초에는 정규과정 책도 제대로 들쳐보지 않았다. 그때 학교에 못가는 시간에 입시 학원에 재수생이라고 속이고 등록을 했었다. 체육특기자라서 아무 것도 모르면 수업을 따라 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국어 수학 영어 지리 등 모든 과목을 공부했는데 나중에 학교가 정상화 돼서 보니 정작 학부에서 필요한건 영어 외에 내가 공부했던 건 아무 쓸모가 없었다.
졸업할 때 과수석을 했다. 그때는 내가 왜 공부를 잘 하는지 이유를 잘 몰랐었다.
특히 실기과목은 뭐든지 잘 했는데 나중에 보니 탁구나 배구 했던 애들보다 테니스했던 나와 내 친구는 육상은 기본이고 무용까지도 잘 따라했다 그래서 테니스가 얼마나 훌륭한 스포츠인가를 지금도 주변사람들에게 얘기한다.

경주근처 안강여고에 첫 부임을 했다. 과수석을 했다고 스카웃을 하러 교장선생님이 직접 왔었고 면접을 보자마자 취직이 되었다.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학교선생이 되고 나서 내가 자장면 사줘가면서 대학교 체육과에 학생들 여섯명쯤 진학시켰다.
처음에 자장면 사줬더니 매일 연습 끝나면 배고프다고 했다. 매일 간식 사줘가면서 훈련을 시켰다. 그때는 이들에게 내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면서 보람을 별로 못느꼈는데 어느날 협회에서 동호인 대회하는데 누가 뒤에서 선생님 하고 등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협회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부회장님 보통 이렇게 부르는데 선생님 하고 불러서 해서 순간 의아했다.
알고 보니 학교시절 자장면 사줘가며 키웠던 제자였다. 그 제자도 다 커서 학교 선생님이 되려고 준비중 이라고 했고 늘 자장면 사줬던 선생님 얘기를 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 덕분에 내가 잘 사는구나. 또 한번 느꼈다. 내가 잘 하면 내가 잘 되는 게 아니라 주변이 잘되고 내 자식이 잘 되는구나를 더 크게 느꼈다.

-테니스선수면 꼭 테니스발전을 위한 어떤 사명이 있어야 하나 
=내가 테니스 종목을 택했기 때문에 얻은게 많다. 대학도 특기생을 들어갔고 교직원 생활할 때도 테니스선수 출신이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안동에 와서 살면서도 선출이라는 이유로 안동지역 동호인들하고 공을 칠 기회가 많았다.
테니스협회에 발을 들여 놓게 된 인연도 매일 밤 늦게까지 동호인들과 공을 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가게문을 닫는 밤 9시부터 밤1시까지 게임을 했는데 그때 당시 게임을 좋아했던 남자동호인들이 나와 게임을 하려고 코트에 몰려들었었다.

그렇게 연합회 부회장을 5년하고 안동협회 실무부회장을 12년째 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보다 더 잘 할 사람이 나오면 당장이라도 물려주고 싶다.

처음 협회살림을 맡았을때는 내가 노력하면 모든게 바뀌고 잘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게 아니더라.
이제는 내가 바뀌었다. 말을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말 안한다. 그냥 내가 한다. 지금 안동선수들이 잘하고 동호인들이 고맙다고 인사하면 그게 나한데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나를 강하다고 보지만 나는 지금까지 공무원들과 싸움한 적이 한번도 없다. 고함지르고 싸운다고 해결되는건 하나도 없다. 협회나 동호인들의 요구사항에 귀기울이고 대화로 해결한다.
가끔 여자라서 그런가 차별하나? 이런 생각 할 때가 많지만 그냥 모른척 한다.
그냥 기다려준다. 기다리다 안되면 내가 스스로 해결한다. 억지로 끌고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당당해 지는가 보다 .
늘 기도한다.
나도 사람이다보니 내가 베풀었는데 하면서 기대심리 없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생각 떨쳐버리려 늘 기도하면 산다 .
종교는 가톨릭이다. 삶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 . 일상생활은 못하면서 기도만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거꾸로 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산다.
내가 잘하고 사는 만큼 내 자식에게 돌려 주시길 바란다.
누가 나한테 못하는거 서운해 하기보다는 내 자식이 잘되면 그게 복이라 생각한다 .

앞으로 테니스코트만 제대로 만들어 진다면 내가 할 역할은 다 한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테니스 코트에 관해서도 누군가 먼저 나서서라도 만들어 주신다면 나는 얼마든지 힘을 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내가 해야 한다. 내가 다 해야 한다.는 생각 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나서서 안동의 테니스발전을 위해서 노력해 주신다면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자리만 탐내면 아무일도 할 수 없다.

 

   
▲ ▲'안동오픈의 보이지 않는 손' 안동시테니스협회 손영자 부회장과 테니스 선수 두딸.대구 효성여대 테니스선수출신인 손 부회장은 두 딸을 안동에서 테니스 선수로 키워 정상급으로 올렸다. 그리고 큰 딸 정영원(왼쪽)은 안동오픈 여자복식과 혼합복식 우승을 했다. 막내딸 정보영은 단식과 혼합복식에 출전했다.엄마는 딸 같은 선수들 대회 출전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지자체 설득해 대회를 열도록 거들었다. 안동시가 대회 개최 용단을 내리도록 정말 눈물나는 노력을 했다. 딸 우승시키려고 한것은 결코아니다. 선수들 생각해서다.그랬더니 선수들이 구름떼처럼 안동에 몰렸다. 손 부회장은 더 불안했다. 이러다 코로나?. 철저히 방역을 진행본부에 요청했다. 아침저녁으로 대회장 들렀고 밤마다 무사고를 기원했다. 대회기간내내 천우신조로 비 한방울 안내렸고 김노준 레퍼리는 코트 10면에서 남녀 예선 128드로, 본선 64드로를 밤 11시반까지 경기 진행했다. 십시일반 상부상조로 여러 사람이 대회를 돕게 이끈 이가 손 부회장이다. 각 시도 회장과 대한테니스협회 곽용운 회장이 안동오픈 대회장을 찾아 애씀을 확인했다. 이번 대회는 여기저기서 대박이라고 말했다. 특히 선수들은 볼하나 더 잡아보려고 코트를 누빈 것은 정말 큰 수확이다. 이번 대회 최대 수혜자는 손영자 부회장이고 안동테니스협회다.안동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고 명명해 쓰고 있는데 선수들은 어려서 로컬대회 등 테니스 대회를 일찌기 연 안동을 한국테니스의 수도로 여기는 듯 했다. 안동오픈은 보이지 않는 손의 오랜 정성이 이어지면서 오늘의 위치에 올랐다. 진인사대천명이다

 

[관련기사]

안동=황서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네이버 구글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Great mother
great!!
(2020-10-05 14:04:22)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테니스피플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614-2 원당메디컬프라자 606호  |  대표전화 : 031)967-2015  |  팩스 : 031)964-7780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경기 다 50250(주간)  |  출판사 신고번호:제2013-000139호  |  상호명 : (주)스포츠피플 | 테니스피플  |  사업자등록번호:128-86-68020
대표이사·발행인 : 김기원  |  인쇄인:김현대  |  편집국장 : 박원식  |  정보기술책임 : 최민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민수
Copyright © 2011 테니스피플.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tennispeopl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