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박 조코비치

스스로 즐기면서 빠져드는 세르비아 스타일(Serbian Style)

안드레 애거시와 피트 샘프라스에 이어 ATP 무대의 잘 차려진 밥상에 마주 앉아 사이 좋게 식사하는 페더러와 나달의 면전에 ‘나눠먹자’며 용감하게 숟가락을 들이민 약관의 청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1위/25세)다. 나토(NATO)군의 폭격이 고향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동안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서워 텅 빈 풀장 안에서 하루 종일 테니스를 치던 소년이 그랜드슬램(Grand Slam) 5회 포함 통산 단식우승 33회에 통산상금이 450억 원이나 되는 불세출의 스타가 되기까지 그의 테니스 인생을 더듬어 보자.
 

출생 및 가족
그는 1987년 5월 22일 당시는 유고슬라비아였던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Belgrade)에서 축구선수이자 스키선수였던 아버지 스르잔(Srdjan)과 역시 스키선수였던 어머니 디야나(Dijana)사이에서 삼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삼촌 고란(Goran) 역시 테니스 선수였으며, 부모는 낮에는 스키레슨, 밤에는 식당을 운영하며 번 돈을 모두 아들의 테니스교육에 쏟아 부으며 공을 들였다. 네 살, 여덟 살 터울의 두 남동생들 역시 형의 뒤를 이어 프로 테니스 선수가 되기 위해 운동하고 있다.

구슬 꿴 코치
네 살 때 테니스를 시작한 조코비치는 여섯 살 때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 근처의 코트에서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테니스전설이자 유명한 코치였던 옐레나 겐치치(Jelena Gencic)의 눈에 띄게 된다.
모니카 셀레스, 고란 이바니세비치 등을 키워 낸 그녀는 조코비치를 처음 본 순간, “모니카 셀레스 이후 최고의 재능을 가진 아이” 라며 기뻐했고, 이후 6년 동안 조코비치를 가르치며 그의 재능에다 탄탄한 기술적 토대를 입혀 세계적인 선수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 해 주었다. 그녀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꿰지 않았다면’, 조코비치는 그냥 ‘구슬’로만 남아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폭격피해 외국으로
조코비치의 어린 시절 고국 세르비아는 발칸반도의 화약고였다. 거듭되는 내전으로 국토는 피폐 해 졌고, 경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그 와중에서도 조코비치는 부모의 헌신적인 뒷받침으로 그 당시 테니스 인프라가 형편 없었던 상황에서도 좋은 환경에서 테니스에 전념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9년 나토(NATO)군의 폭격이 3개월이나 계속되자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물 빠진 수영장에서 연습하기도 했던 조코비치는 스승 옐레나의 권유로 독일의 필리치 테니스 아카데미(Pilic Tennis Academy)로 유학을 떠난다. 그 당시 얀코 팁사레비치, 아나 이바노비치, 옐레나 얀코비치 등 동 연배의 세르비아 출신 선수들은 모두 폭격을 피해 외국에서 훈련 할 수 밖에 없었고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던 것이다.

황금시대(Golden Age)
2003년 프로 토너먼트를 시작했고, 2004년 프로선수로서 풀 시즌(full season)을 소화 한 조코비치는 첫 해를 186위로 마감하고, 이듬해 2005년 Top 100에 이름을 올렸다.(78위) 2006년 Dutch Open에서 생애 첫 ATP 투어 타이틀을 거머쥔 후 몇 달 후 프랑스에서 열린 Moselle Open에서 두 번째 우승함으로써 본격적인 우승사냥과 함께 Top 20 선수가 되었다. 2007년 마스터즈 시리즈를 포함 5승을 거두면서 페더러와 나달의 쌍두마차가 이끌던 세계테니스의 판도를 바꾸며 본격적인 황금시대(Golden Age)를 열었다. 2008년에는 호주오픈(Australian Open)에서 첫 그랜드슬램(Grand Slam)우승의 기쁨을 맛보며 4승을 거둠과 동시에 4개의 그랜드슬램 대회 결승에 오른 최연소 선수가 되었다. 2009년 5승, 2010년 2승을 거두며 주춤하는가 싶더니, 2011년에는 호주오픈, 윔블던, US오픈등 그랜드슬램 3승 포함 총 10승을 거두며 ATP의 지존이 되었다.

고래를 품은 새우
2009년 11월 조코비치는 세계 2위의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와 결별하고 이탈리아의 의류브랜드 ‘Sergio Taccini’와 10년간 장기후원계약을 맺었다. Sergio Taccini는 존 맥켄로, 피터 샘프라스, 힝기스 등의 선수들이 입었던 스포츠 브랜드였지만 나이키와 아디다스에 비하면 그 규모나 브랜드파워가 한참 뒤지는 업체였는데 당시 세계랭킹 3위였던 조코비치와 계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계약조건 때문이었다. 즉 성적과 관계없이 보장되는 금액은 다른 후원사가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적었지만,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 금액은 다른 후원사보다 훨씬 큰 규모였던 것이다. 당시 약관의 나이에도 세계랭킹 3위를 유지하던 조코비치의 자신감과 Sergio Taccini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계약이었으나, 문제는 그로부터 1년 후 발생했다. 2011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조코비치는 호주오픈을 비롯하여 윔블던과 US오픈 등 3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비롯하여 무려 10승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렸던 것이다. 계약에 의한 인센티브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불어났고, 급기야 Sergio Taccini사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후원사의 디자인과 유통등 사업적인 악재가 겹쳐 2012년 5월 양측은 결별에 합의했고, 조코비치는 올해 프랑스오픈(Roland Garros)직전 일본의 의류업체 유니클로(UNIQLO)사와 새로운 후원계약에 사인했다.

조커(Djoker)의 비밀
조코비치는 쾌활한 성격으로 동료선수의 흉내를 잘 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끔씩 자신의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 시간에 코트에서 샤라포바나 나달 등 선수들의 흉내를 내어 관중들을 즐겁게 해서 그의 이름 앞 글자(Djo)와 농담하는 사람(Joker)을 합하여 조커(Djoker)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2010년 까지만 해도 조코비치는 가끔씩 페더러나 나달을 이기기도 했지만 파워가 부족하고 체력이 떨어진다는 평을 들었다. 또한 잔 부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꾸준히 연간 4~5승은 올렸지만 2010년에는 2승에 그쳤다. 그런데 2011년에는 그랜드슬램 3승을 포함해서 무려 10승이나 올려서 후원사인 Sergio Taccini사를 두 손 들게 만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0년 조코비치의 영양사 이고르 체토예비치(Igor Cetojevic)는 조코비치에게 피자나 파스타 등 가공한 탄수화물이 포함된 음식을 멀리하라고 권고했다. 알레르기 테스트(allergy test) 결과 조코비치는 글루텐(gluten)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알레르기성 체질이었기 때문이었다(allergic to gluten). 그때부터 조코비치는 글루텐 다이어트(gluten-free diet)를 시작했고, 그 결과 만성피로, 소화불량 등 그를 괴롭히던 잔병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신체기능이 눈에 띌 만큼 좋아졌고, 그것은 US오픈 결승진출, 데이비스컵 우승, 호주오픈우승과 강철체력 나달을 4번이나 이기며 당시까지 39연승행진 등 경이로운 투어성적으로 나타났다. 사실 다이어트를 하기 전에도 그는 그랜드슬램 챔피언이자 세계랭킹 3위의 스타 플레이어여서 반드시 글루텐 다이어트(gluten-free diet)가 그의 경이로운 투어성적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조코비치 본인이 자신도 놀랄만한 투어성적의 일등공신으로 자신의 영양사를 지목했고, 스스로 다이어트 이후의 신체능력 및 컨디션에 대한 변화를 뚜렷이 느낄 만큼 효과가 있었다고 인정 한 만큼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011년 조코비치의 경이로운 투어성적에 대한 또 다른 배경으로 어떤 사람들은 조코비치의 부모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전까지 아들의 투어대회마다 동행했던 그의 부모가 2011년부터는 동행하지 않았기에 조코비치가 심리적인 부담감이나 압박감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 몬테카를로 오픈에서 조코비치와 맞붙었던 페더러는 경기도중 응원하는 조코비치의 부모를 향해 조용히 하라고(be quiet) 소리치기도 했을 정도로 조코비치의 부모는 극성스럽게 응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