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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어떤 나라?
글 이병효 논설실장 사진 대만관광청  |  bbhh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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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3  06: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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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완 수도 타이페이 시내
   
 

한국 사람에게 타이완에 대해 물어보면 가장 많은 대답은 아마 “잘 모른다”일 것이고, 그 다음은 “별 관심이 없다”일 것이다. 세 번째 대답은 “일본은 좋아하고 한국을 싫어한다는데 이유를 모르겠다”가 아닐까. 대만이라 하면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이고 그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이런 대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꼭 바꿔야 할 이유가 꽤 있다. 첫째, 타이완은 우리가 마냥 무시하거나 조롱할 대상이 아니다. 둘째,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한국은 대만과 동남아 등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과 최대한 친선우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셋째, 대만이 친일인 것은 역사적 이유가 있는 데 반해 혐한이라는 것은 주로 시기심과 경쟁심리 때문이라는 것이 타이완 사람들 자신의 분석이다. 대만 언론의 선정적 보도와 인터넷 여론의 무책임한 왜곡과 선동도 한 몫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 어떤 계기를 잡아서 한국과 대만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만은 아시아에서 일곱 번째로 큰 경제이고, 세계에서 구매력 기준 18번째 경제규모를 갖고 있다. 특히 반도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 전자부품과 컴퓨터 등 IT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1인당 GDP는 25,534달러(2018)이지만 구매력 기준으로는 52,960달러에 이르러 일본을 벌써 추월했다. 외환보유고는 세계 6위로 9위인 한국보다 높다. 이처럼 대만의 경제적 위상이 높고 한국과 대만 사이에 관광 등 교류가 잦은 데 비해 상호 간의 이해도는 낮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만 사회와 역사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때 대만은 경공업과 중소기업을 바탕으로 경제개발을 추진해 한국의 지식인 가운데는 한국의 재벌과 중공업 중심의 기관차식 개발보다 대만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는 선단운항 방식이 더 우월하다는 견해가 유행하기도 했다. 한국 경제의 장래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가운데 대만의 경쟁력을 경시하는 것은 신중한 태도라 할 수 없다.

   
 

최근 한국은 여러 가지 이유와 상황 때문에 외교적으로 고립돼 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과 일본 모두 잠재적 적성국이라며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구한말 시대 “믿지 마라”라는 속언처럼 미국이 언제까지나 믿을 만한 나라인지는 의문이다. 최근 베트남에 한국의 투자가 집중되고 있지만 공산주의 체제의 속성과 관료들의 부패 등으로 언제 태도를 표변해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경고도 있다. 터키는 한국 뿐 아니라 일본도 형제국가 라고 부른다는 둥 크게 미덥지 않다. 때문에 이런 나라들을 포함해서 아시아 권역에 있는 중소 국가들과 잘 사귀고 가깝게 지내는 것이 긴요하다. 싱가포르는 미국의 준동맹국이지만 중국과도 잘 지내고, 중국의 비위를 거슬러가면서도 대만과의 친선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경제력과 군사력이 다인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한 국가의 신용과 품격, 줏대와 평판 역시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중국의 눈치만 지나치게 보지 말고 대만과 상식선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일본은 넷우익을 중심으로 혐한 공세를 펼쳐왔고 최근 들어서는 일반인 사이에도 반한적 태도가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치고 타이완은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혐한을 하는 걸까. 여론조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몇몇 타이완 사람들에게 왜 혐한을 하냐고 물어보니 그들도 혐한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타이완과 단교했기 때문이라는 언급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과 대만의 단교는 1992년이라 젊은 세대는 당시 정황을 알지도 못한다. 일본은 그보다 20년 전인 1972년 타이완과 국교를 단절했고, 미국도 1979년 돌아섰다. 그러니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오래 원망을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내가 대화를 나눠 본 타이완 젊은이들은 혐한 현상의 원인을 시기 질투라고 짚었다. 자세하게 부연은 안 했지만 타이완 사람도 중국인이 최고이며 한국 등은 속국이라는 중화사상으로 물들어 있는 데다 과거 자신들이 한국보다 위에 있다고 여겼다가 어느 순간 추월당했다고 느끼자 열등의식이 폭발했다는 얘기였다. 그들은 한국과의 스포츠 경기에서 자주 진 것과 저질과 과당 경쟁으로 유명한 타이완 언론이 국민감정에 불을 지른 것도 또 다른 까닭이었다고 덧붙였다.

타이완이 친일적인 이유는 한 가지 사실을 들어 설명할 수 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타이완을 식민지로 삼았을 때 타이완 전체의 도로망 총연장은 고작 164㎞였다. 40년이 지난 1935년 도로망은 4,456㎞로 늘어났다. 청나라가 1683년 타이완을 정복한 후 200년 동안 사실상 한 것이 없었던 반면 일본은 의도야 무엇이든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뜻이다. 일본통치 시기에 무장항쟁에 나선 것은 주로 원주민이었고 일부 하카족(한족 이주민)이 가담했을 뿐 푸젠 성에서 넘어온 한족은 초기에만 잠깐 합세했을 뿐이었다. 장제스·징구오 부자 이후 첫 타이완 출신총통이 된 리덩후이는 하카 출신인데 노골적인 친일파였다. 차이잉원 현 총통의 전임이었던 마잉주 역시 일본의 식민시기 업적을 평가하는 발언을 했다.

타이완의 역사를 보면 선사시대부터 오스트로아시아 계통의 원주민이 살아왔다. 그들은 해양민족이라 바닷길로 퍼져나갔는데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타히티 옆의 라이아테아라는 섬에 가면 먼 옛날에 선조들이 새로운 섬을 찾아 대양 항해에 나섰다는 유적이 있다. 폴리네시아인들과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원래 타이완에서 출발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거쳐 이주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몇 해 전 타이동(臺東)에 타이티인들이 찾아와 조상들이 그곳에서 해양 대장정을 시작했다면서 고향방문 행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한 고산부족 사람이 전했다. 일부에서는 마다가스카르인도 타이완 고산부족의 후예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골상이 좀 다른 편이라 그리 믿어지지 않는다. 어쨌건 원주민들은 9∼10세기 송나라 때 한족의 이주가 시작된 후 산으로 밀려올라 가기 시작했고 19세기까지 고산지대와 동해안 지역은 그들의 차지였다. 17세기 명나라 푸젠성의 지방관은 화란인들이 점령하고 있던 펑후 열도를 되찾으면서 그들에게 포모사(타이완의 옛 이름) 섬을 점령해 개척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명나라가 타이완을 사실상 화란의 동인도회사에 넘겨준 셈이다.

   
▲ 1661년 4월 정성공이 네덜란드의 요새가 있던 타이완의 안핑(지금의 타이난)에 상륙해 침략군으로 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콕싱가(Coxinga)와 네덜란드 점령군의 타이완 전투가 소개된 책

 

   
▲ 정성공

이것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어떤 나라가 자기 나라 바로 옆에 엄청나게 크고 비옥한 섬이 있는데 멀리서 온 이방인들에게 선뜻 넘겨준다는 말인가. 더구나 이렇게 중요한 주권 사항을 일개 지방관이 조정의 승인 없이 처결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 먼저, 명나라는 태조 주원장의 명령으로 ‘해금(海禁)정책’을 고수했다. 농업 인구가 바다로 유출돼 생산력이 저하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였지만 왜구의 발호가 심해지면서 중국인들이 해적활동에 가세하거나 왜인으로 위장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해금 정책을 유지하려면 본토에 사는 한족들이 섬으로 불법 이주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펑후 열도는 본토에 바로 붙어 있기 때문에 외인의 점령을 용인할 수 없었지만 대만해협은 상당히 넓고 타이완 섬은 떨어져 있어서 명나라가 실효 지배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이 때문에 화란인들에게 타이완을 넘긴 것이다. 왜구는 약탈과 살상행위를 자행하는 해적들이었지만 포르투갈과 화란 등은 통상을 원하는 세력이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그러나 이런 결정의 저변에는 동양과 서양 사이의 영토관념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가 깔려있었다. 서양인들이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했을 때 원 목적은 통상을 통한 이득이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인도 등지의 주민들이 군사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을 파악한 다음 그들은 가는 곳마다 금과 은을 요구했다. 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강탈했고 금은이 없으면 포로를 잡아 노예로 팔아 넘겼다. 식민지로 삼은 다음에는 세금을 최대한 뜯어내고 원주민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그러나 이런 대상은 기후가 백인들이 살기에 맞지 않는 곳들이고 북아메리카와 남아프리카, 호주 동남해안 등 날씨와 토질이 좋은 곳은 원주민을 절멸시킨 후 본국에서 하층 농민들을 데려다 직접 경작하도록 했다. 서양인의 관점에서 땅은 모든 재화의 근원이고 소유와 이용의 대상이다. 사람, 특히 원주민은 노예나 강제 노동의 대상일 뿐 없는 편이 수월했다.

동양의 경우 사람이 없는 땅은 그냥 공간일 뿐이었다. 광물을 캐내려도 광부가 필요했고, 세금을 걷으려 해도 농민이 있어야 했다. 자신들이 정복해서 지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 땅에는 관심이 없었다. 타이완의 원주민들은 청나라 때도 생번이라고 해서 자신들의 통제 밖에 있다고 치지도외하고 계선(界線)을 설정해 한족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했다. 청나라가 타이완을 굳이 정복한 것은 정성공이 타이완에서 화란인들을 내쫓고 ‘반청복명’의 기지로 삼아서 안보상 위협을 가했기 때문이었다. 정성공의 손자가 청나라에 항복 교섭을 하면서 “조선과 같이만 처우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가 인조의 항복을 받은 다음 왕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모든 제도·인원과 두발, 복식 등을 그대로 온존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을 가리킨 것이다. 강희제는 그러나 “조선은 언어가 다르고 한 번도 중국에 속한 적이 없는 나라이지만 대만은 중국말을 쓰는 중국인들이니 들어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 대만 예스진지는 대만 필수 답사코트. 예스진지는 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이라는 지역의 앞 글짜만 딴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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