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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지로 마요르카 추천지중해의 그곳 - 팔마 데 마요르카
글 사진 마요르카=이병효(코멘터리 발행인)  |  bbhh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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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0  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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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요르카 지도

내가 올 유월에 마요르카를 처음 가게 된 것은 라파 나달의 나달 테니스 아카데미 때문이었다. <테니스피플>의 취재여행에 동행한 것인데 그 전에는 그저 독일 관광객이 득실거리는 유명한 휴양지이자 쇼팽과 조르주 상드가 ‘사랑의 도피행’을 했던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실제로 가 본 마요르카는 역사와 문화, 자연이 넘치는 곳이었고 거기에다 지중해성 기후와 스포츠 관광까지 어우러져 다음번엔 일주일 이상 머물다 가야겠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 선생이 마요르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를 지냈고, 1965년 타계하기 직전까지 살았던 것 때문에 낯익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나의 마요르카 여행은 파리를 떠난 에어프랑스기가 마요르카 공항에 착륙하면서 시작됐다. 공항은 예상보다 큰 규모였고 이용객들로 북적였다. 알고 보니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이어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공항이고 2017년에는 총 2790만명이 오갔다고 한다. 이 공항의 이름이 팔마 데 마요르카공항(PMI)인데 이름이 비슷한 라스 팔마스의 그란 카나리아공항(LPA)과 함께 라 팔마 섬의 라 팔마 공항(SPC)이 있어 혼란을 가중시킨다. 팔마는 라틴어로 종려나무 또는 야자수(palm)를 말한다. 중동지방에 많은 대추야자(Date palm)와는 같은 과(科)에 속하지만 다른 종(種)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코코넛 나무도 같은 야자수과이지만 다른 열매를 맺는다.

   
▲ 팔마 해변

 

당초 파리에서 마요르카를 거쳐 폴란드 그단스크로 가려는 계획을 가졌는데 값싼 항공권을 찾는 과정에서 팔마 데 마요르카와 라스팔마스를 혼동하는 바람에 라스팔마스에 들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고교시절 국어선생님이 자신의 동창이 원양어선을 타고 라스팔마스에 갔다고 되뇌던 그곳에 가보게 되긴 했지만 지명을 혼동해 엉뚱한 곳에 간 일이 처음이라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팔마 공항을 떠나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아파트를 찾아가는 길은 지난하기만 했다. 구글맵은 한국에서도 다소 부정확하다는 평을 듣지만 마요르카에서도 그런 듯했다. 더욱이 스페인은 주소를 표기하는 방식이 다른 나라와 좀 다르고 헷갈리기 쉬워서 문제였다. 한동안 헤맨 끝에 결국 아파트를 찾아 들어갔지만 첫 인상이 곱지만은 않았다.

   
▲ 발데모사

 

   
▲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발데모사 거주지

 

   
 

 

   
▲ 쇼팽

이튿날 렌터카로 나달 아카데미를 찾아간 다음 오후에는 몇 군데를 골라 가볼만 한 곳을 찾기로 했다. 내가 가장 먼저 선택한 곳은 쇼팽과 조르주 상드가 1838년 넉달 동안 살았던 마요르카 북쪽 산간 지역의 조그만 마을 발데모사(Valldemosa)였다. 상드커플이 파리를 떠나 이 먼 곳에 왔는데 굳이 팔마에 머물지 않고 벽촌으로 간 것은 그만큼 좋은 곳이어서라는 추측이 들어서였다. 뒤에 문헌을 읽어보니 두 사람이 마요르카행을 결정한 것은 결핵을 앓고 있던 쇼팽에게 의사가 전지 요양을 권해서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핵환자라면 당연히 도회지를 피해서 공기가 맑고 사람이 적은 산간 마을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팔마에서 약 30분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 도착한 발데모사는 놀라우리만큼 아늑하고 정이 가는 곳이었다. 상드가 쓴 글에 따르면 19세기에는 마차가 가파른 산길을 올라갈 수 없어 걸어서 올라갔다고 한다. 마요르카 사람들에 대해서는 ‘원숭이 섬’이라고 혹평하면서도 발레모사 마을은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지중해성기후도 겨울에는 좀 춥고 비가 잦은데다 바람이 거세다는 것을 몰라 쇼팽의 건강은 오히려 더 악화됐다고 한다.

쇼팽가 상드가 머물던 곳은 성 부르노 수도회가 세운 수도원내의 수도원장 거주구역이었다. 몇 해 전에 수도사들은 모두 쫓겨나서 아무도 없었고 피아노도 없었다. 파리에서 보내온 조그만 업라이트 피아노는 그들이 파리에 돌아가기 3주 전에야 도착했다고 한다. 쇼팽은 이 피아노로 전주고 15번 ‘빗방울’을 작곡했다. 조르주 상드는 우리나라에서는 덜 알려졌지만 19세기 프랑스 문학계에서 저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여성에게 타부였던 바지를 입는가 하면 시가를 피우는 페미니즘의 선구자이자 쇼팽 외에도 시인 뮈세와 소설가 메리메 등 수많은 연인을 거느린 자유분방한 연애로 유명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1920년대 신여성들이 일본의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의 자유 연애사상에 영향을 받아 연애지상주의를 주장했던 것에 비견된다. 화가 나혜석과 교육가 박인덕, 후에 월북한 허정숙 등이 대표적 이름이고 김동인 ‘김연실전’에서 풍자한 허구의 인물인 김연실을 떠올리게 한다.

   
▲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선생 부부

 

   
▲ 안익태 선생의 셋째딸 레오노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안익태 기념관이었다. 기념관은 안익태 선생이 살던 곳으로 2016년 스페인거주 동포사업가가 구입해서 정부에 기증했고, 대한민국 지원으로 개수해서 일반에 공개하게 됐다고 한다. 문밖에 초인종을 누르자 5분만 기다려 달라는 답이 들려왔다. 기념관 2층에는 안 선생의 셋째 딸인 레오노르 여사가 거주하면서 기념관을 돌보고 있다.

1952년생 레오노르 여사는 한때 어머니 롤리타 안(마리아 탈레베라)여사와 함께 한국으로 영주 귀국, KBS에 취업했으나 몇 해 뒤 마요르카로 돌아간 일이 있었다. 레오노르 여사와 한참 대화를 나눈 뒤에 그때 일을 물어보니 어머니와 원래 가장 가까운 사이인데 어머니가 둘째 딸의 애들을 돌봐야 한다고 해서 함께 마요르카로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기념관은 항구지역 위쪽 언덕에 자리 잡아 바다가 보이는 위치였다.

왜 팔마 시내를 두고 교외에 살았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렌트를 해야 했고 경치가 좋은데다 주변에 집이 별로 없어 음악 연습하기가 좋았다고 했다. 레오노르 여사는 변함없는 한국 사랑을 보이며 한국 방문객은 언제든지 대환영이라고 말하며 최근 K-POP의 유행과 함께 스페인에서도 한국이 더 많이 알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 후안 미로 그림

안익태 기념관의 위쪽 멀지 않은 곳에 화가 후안 미로(Joan Miro)의 미술관이 있다. 미로의 고향인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 1975년 세워진 미술관이 있는데 1992년 작가가 기증한 6,000여 작품을 전시하는 마요르카의 미로미술관이 건립됐다. 안익태 기념관에서 보이는 바다가 엽서 한 장 크기라면 미로미술관에서 보이는 바다는 아이맥스(IMAX) 영화관이라고 할까.

미술관 위치가 높고 경내도 넓어서 당연한 일이었다. 미로미술관은 본관과 조각정원, 아틀리에 등 세 부분으로 구성돼있고 모든 것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미로는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마요르카 출신이고 어렸을 때 외조부 손에 길러졌다. 또 1956년 마요르카로 옮겨와 영구 정착한 바 있다. 미로의 그림은 칸딘스키와 약간 닮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번 보면 막바로 그의 작품이라고 알 수 있을 만큼 독특함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만큼 잘 다듬어진 개인 미술관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마요르카 대성당

이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마요르카 대성당이었다. 이 성당은 길이가 121m, 너비가 55m에다 높이가 44m에 이르는 대규모 고딕 성당이다. 성당의 위치는 누가 골라도 같은 장소를 택할 만한 곳이고 1229년 아랍인들을 몰아내고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아라곤 왕국의 정복군주였던 하이메 1세(James I)는 21살의 젊은 나이였는데 바르셀로나에서 마요르카로 오는 200Km 뱃길에서 사흘 반 동안 엄청난 폭풍에 시달렸다고 한다. 왕은 마요르카에 무사히 도착해 적을 물리치면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는 성당을 짓겠다고 맹세해 세워지게 됐다.

완공은 1601년에야 이뤄졌지만 이후 두 번이나 부분적으로 무너지는 바람에 개축을 했고 20세기 들어 안토니 가우디에게 전면적인 개축을 맡겼다. 가우디는 10년 동안 거의 재건축수준의 공사를 진행했고 일부 보수적인 마요르카 사람들이 반발하자 손을 뗐다고 한다. 이후 가우디의 제자들이 개축을 완성했다. 마요르카 대성당은 외부가 장엄한 것 못지않게 가우디가 설치한 모던풍의 로즈윈도가 유명하다.

마요르카에는 이밖에도 가 볼만한 곳이 더 많다. 팔마 외곽에 있는 벨베르성(Castell de Bellver)은 회로의 원형 성곽이다. 에스파뇰 건축마을(Pueblo Espanal)과 해안 거리(Paseo Marifimo)도 꼭 가볼 곳이다. 팔마 밖으로는 소예르(Soller)라는 마을까지 협궤열차가 연결돼 있어 옛날의 정취를 살리고 있다. 마요르카 섬이 속해 있는 발레아레스(Illes Balreares)제도에는 동생 겪인 메노르카(Menorca)섬과 젊은이들의 광란적 파티로 알려진 이비자(Ibiza)섬 등이 있다.

시간만 넉넉하다면 마요르카와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성을 한데 엮어 열흘정도 시간을 보낸다면 환상의 휴가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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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195 => 1965년의 오자입니다.ㅎㅎ
안익태선생 별세년도입니다.

좋은 기사 읽고 갑니다.

(2018-07-23 11:07:39)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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