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리스트 출호바트 엡스타인 동양증권 부사장의 ‘신(新) 스포츠 예찬론’

‘선수 경력, 업무 처리에 큰 도움 된다’ 인식
美 대학, 학점 못 채우면 주전 출전 안 시켜
“우리나라의 ‘한우물 파기’식 전략 위태롭다”

'홍보용(用) 학생'. 최근 세종대 등 대여섯개 대학에서 입학 제의를 받은 손연재(18·리듬체조), 대학(고려대 체육교육과) 재학 중 '교생 실습에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는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김연아(22·피겨스케이트)에겐 으레 이런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학업 성적만으론 들어가기 어려운 학교에 척척 입학하는 운동선수를 바라보는 일반 수험생의 시선은 허탈하다. 하지만 미국에선 좀처럼 이런 논란이 일지 않는다. '일정 성적 이상을 받아야 교내 운동팀 주전선수로 뛸 수 있다'는 미국대학스포츠협의회(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규정 때문. 미국 국적으로 골드만삭스 한국지사 대표를 지낸 호바트 엡스타인(55·한국명 이병호) 동양증권 부사장은 "우리나라 학교에도 (학업과 운동을 양자택일하지 않고 두루 중시하는) 미국식 시스템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기업인이다. 실제로 그는 지난달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열린 '2012 STX컵 코리아 오픈 레가타 조정대회'에 참석, 참가 선수와 학부모에게 이 같은 내용을 주제로 강연하기도 했다.

"운동 잘하는 사람이 공부도, 일도 잘한다"는 그의 교육관을 좀 더 들어보기 위해 맛있는공부가 출동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동양증권빌딩(중구 을지로 2가)에서 진행됐다.

“마이클 에번스 골드만삭스 부회장은 1984년 LA올림픽 조정 금메달리스트 출신입니다. 실제로 월가(Wall Street) 금융인의 70%가량은 학창 시절 운동선수로 활약한 경력을 갖고 있죠.”

중고생 시절 내내 운동만 해도 프로 선수가 될까 말까 한 우리나라에선 쉬이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엡스타인 부사장에 따르면 미국 학생이 ‘학업’과 ‘운동’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요인은 현지 대학의 체육특기자 전형, 그리고 NCAA 규정이다.

미국 대학에도 스포츠대회 수상 경력자 등에게 입학을 허가하는 체육특기자 전형이 있다. 이 전형 합격자는 대학 측과 ‘학교 대표 스포츠팀 선수로 활동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는 대신 자신의 전공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여기까진 우리나라 체육특기자 전형과 비슷하다. 결정적 차이는 그 다음 단계에 있다. NCAA 규정 중엔 ‘소속 학교에서 일정 학점 이상을 취득해야 주전으로 뛸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학교별 리그 규모가 커 학교 스포츠팀 활동 경력은 프로 진출의 필수 요건이다. 프로 선수가 되려면 반드시 스포츠팀에서 적극적으로 활약해야 하고, 운동부 활동을 원활하게 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운동선수는 일시적 직업입니다. 한평생 운동만 해 온 선수가 부상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게 됐다고 생각해보세요. 좌절감에 자칫 폐인이 돼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한국 정부도 미국식 ‘교육 우선주의(education first) 철학’을 하루빨리 도입해야 합니다. 한국 학부모 역시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한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 ‘원 트랙 마인드(one track mind)’를 버릴 필요가 있어요.”

◇“스포츠맨은 적극적” 기업도 채용 시 우대

미국 대학 스포츠팀은 체육 시설, 투자 규모 등에 따라 3개 군(division)으로 나뉘어 시합을 치른다. 엡스타인 부사장은 “UCLA 등 1군 대학의 경우, 체육관 내에 운동선수 전용 교실이 따로 마련돼 있다”고 귀띔했다. “스포츠팀 소속 학생은 일정 훈련 시간을 반드시 확보해야 해 아무래도 학업에 투자할 시간이 부족하죠. 학교 측은 이를 보강하기 위해 같은 대학 재학생을 ‘과외 강사’로 붙여줍니다. 고교에선 운동 코치진과 교과목 교사 사이에 웃지 못할 ‘눈치 싸움’이 벌어지기도 해요. 운동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교과 성적이 형편없으면 경기 출전 자체가 불가능하거든요.”

‘제대로 공부한’ 운동선수의 진로는 밝은 편이다. 특히 취업 시 받는 ‘프리미엄’은 상당하다. 엡스타인 부사장은 운동선수 출신 사회인의 최대 경쟁력으로 ‘적극성’을 꼽았다. “제가 일하는 증권업계는 빠른 판단과 강한 추진력 없인 업무를 제대로 완수하기 어려워요. 같은 맥락에서 ‘스포츠 경력은 업무 처리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게 미국 기업의 정설입니다. 골드만삭스만 해도 ‘운동선수’와 ‘비(非)운동선수’ 트랙을 구분해 직원을 채용하죠.”

잘 짜인 미국 대학 체육특기자 전형은 한국 수험생에게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엡스타인 부사장은 “특히 테니스·골프·조정·야구 등의 종목에서 또래 서양인과 견줄 만한 수상 경력이 있다면 미국 유학을 고려해보라”고 조언했다. “미국의 스포츠 마케팅 시장은 그 규모가 압도적입니다. 각 대학이 체육특기생용으로 배정하는 연간 장학금 규모도 1조원(총액 기준)에 이를 정도로 어마어마하죠. 실제로 현지 기업 중엔 대학 스포츠팀 코치와 운동 잘하는 고교생을 중개하는 CSA(Collegiate Sports of America) 같은 전문 에이전시도 있습니다. 운동을 공부 못지않게 좋아하고 잘하면서 해외 유학을 고려 중인 중고생이라면 미국 대학 체육특기생 전형을 공략해보세요.”

출처: 인터뷰=최혜원 맛있는공부 편집장 이메일 정리=최민지 맛있는공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