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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패스로 일본을
글 이병효(코멘터리 발행인) 사진 일본관광청  |  bbhh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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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2  07: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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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 연휴를 끼고 기차로 일본 각지를 돌았다. 일본을 가 본 건 열 번쯤 되고, JR패스를 사서 여행한 것도 두세 번 있었지만 이번엔 일본이 초행길인 분들을 안내하는 길이라 사전 계획을 세우는 데 더 조심스러웠다. 그나저나 2주일간의 여행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일은 교토의 기요미즈데라(淸水寺)를 올라가는 길에서 일어났다. 여기는 교토 시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명소여서 항시 붐비는 곳인데, 10월초 한국과 중국의 연휴가 겹친 탓인지 사하촌(寺下村)을 지나 절로 올라가는 길이 온통 인파로 뒤덮여 있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이, 백여 명이나 될까, 많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한복을 입고 고궁 나들이를 하는 것이 유행인 것을 봐왔기 때문에 처음엔 심상하게만 여겼다.

그러다 화들짝 놀란 것이 그들이 한국말을 주고받는 것을 듣고서였다. 일본 사람이 우리말을 배워서 쓰지 말란 법은 없지만 말씨가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또 다른 기모노 차림의 중년 여성은 일본인이 틀림없는 듯했고 기모노 체험을 하고 있는 중국인들도 더러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유심히 지켜보니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 가운데 70∼80%는 한국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개중에는 하오리와 하카마를 차려 입은 남자와 커플을 이룬 여자도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하고 많은 나라 가운데 일본의 기모노를 입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다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 느닷없이 현실로 나타나자 나는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진 느낌이었다.

이윽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나는 말했다. “쟤네들은 이웃나라 문화체험이랍시고 저렇게 하고 있는 모양인데, 일제 말기에 친일파라는 민족반역자들이 내선일체라며 집에서도 기모노를 입고 식구끼리 일본어로 대화하던 것과 뭐가 다르지?” 그리고는 덧붙였다. “백보 양보해서 일본을 감정적으로 대할 것이 없다고 한다면 70여 년 전의 종군위안부 문제를 물고 늘어질 것도 없는 것 아닐까.” 물론 저들이 곧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시위를 한 당사자들은 아니겠지만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한쪽에서는 반일, 다른 한쪽에서는 친일이라고 비쳐질 일을 버젓이 하고 있는 것은 이율배반이요 모순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공통점이라면 양쪽 다 좀 선을 넘었다는 것이었다.

서울에 돌아와서 일본 남자들의 전통의상도 기모노라 부르는지 구글링을 해보니 ‘교토에서 기모노 산책’이란 제목으로 ‘기모노 렌탈이 하루 3,500엔, 커플 6,500엔’이란 광고가 떴다. 돈을 들여 한국어로 이런 광고를 하는 것을 볼 때 한국 젊은이들이 기모노를 빌려 입는 것은 몇몇 명이 아니라 상당수 이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굳이 자기 성찰을 해본다면 과거에 내가 젊었을 때 기성세대들이 일본에 대해 복합감정을 갖는 것을 비웃으며 우리 세대는 일본에 대해 열등감도, 뒤집힌 우월감도 없다고 자신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내 스스로 한국 사람이 기모노 입는 것을 봐 넘기지 못할 정도로 적개심이 숨어있다는 반성이었다.

주변에 있는 몇몇 사람에게 의견을 구했더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와 동년배들은 한국인의 기모노 차림에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은 미국에서 살지만 일본말을 할 줄 알고 일본에 대해 평소 비판적인 딸에게 물어봤다. 답인즉슨 “이걸 꼭 나쁘게 볼 게 아니라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에 자신감이 있다는 반증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위안부 소녀상과의 배리는 어떠냐고 했더니 “한 세대 안에서도 이런 의견과 저런 의견이 공존하는 것이라 본다면, 이건 모순이라기보다 다양성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나보다 훨씬 더 엄중한 태도를 갖는 딸이기에 일단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나는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리 사회의 일부 맹목적인 반일감정에 대해서는 결연히 반대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잊고 친일적 행태를 보이는 것이나 반일과 친일의 카드를 번갈아 내미는 이중적 행동도 전혀 찬성할 수 없다. 최근 성조기를 휘두르는 일부 친미파들은 우리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친일파들의 행동부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친일파들의 뿌리는 명분론을 내세워 당쟁에서 승리하고 세도정치를 펼쳤던 노론 기득권자들이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시대의 호족세력과 권문세족들로 이어진다.

교토에서 봤던 기모노 입은 한국 여성들은 며칠 뒤 도쿄의 아사쿠사 센소지(淺草寺)에서도 볼 수 있었다. 나이 먹은 세대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세상은 젊은 세대의 뜻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아마 몇 년 후에는 일본에서 기모노 체험을 하는 한국 젊은이들을 더 흔하게 보지 않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한 한국 사람의 태도도 진화해 갈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극단적인 애증(愛憎)을 넘어서 온건한 호오(好惡)를 갖는 정도로 바뀌어가지 않을까 싶다. 단지 일본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본심을 감추고 만들고 꾸미는 것이라 그것을 잘 모르는 일부 한국 젊은이들이 겉모양새만 보고 일본에 턱없이 열광하는 것은 걱정이 없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일본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기차여행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철도가 없는 나라는 아주 작은 나라나 저개발국 정도고 대부분 기차가 주요 교통수단이다. 미국처럼 자동차 위주라 철도가 제한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독일을 비롯한 유럽과 일본만큼 철도가 발전하고 활발한 나라는 없다. 최근 중국이 방대한 고속철도망을 거의 완성했지만 서비스와 운용 수준은 한참 멀었고, 러시아는 고속철도 이전의 중국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고속버스가 철도와 거의 대등하게 경쟁하는 상황이라 유럽과 일본처럼 철도가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 버스와 승용차 등 자동차 여행보다 철도의 이용도가 높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두 장의 철도패스와 한 장의 지하철 이용권을 샀다. 먼저 3일간 유효한 ‘후지산·시즈오카 지역 관광패스(미니)’는 4,500엔인데 동(東)으로 가나카와 현의 마쓰다(松田)부터 서(西)로 아이치 현의 도요하시(豊橋)까지 시즈오카 전역의 JR 재래선(특급 이하)과 이즈하코네철도 일부 노선, 시미즈와 이즈반도를 잇는 페리, 후지산 둘레길을 운행하는 후지큐 버스를 탈 수 있다. 동시에 구입한 것은 재팬레일(JR)패스 7일권으로 29,110엔이다. 이 패스로는 일본 전역의 JR 노선과 JR버스(로컬), 도쿄 모노레일, 히로시마 근방의 미야지마 페리를 탈 수 있다. 단 신칸센의 노조미와 미즈호 열차는 제외. 마지막으로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구입한 것은 도쿄 메트로와 도에이(都營) 지하철을 48시간 이용할 수 있는 ‘도쿄 서브웨이 티켓’으로 1,200엔이다.

총 13박14일 여행에서 첫날은 늦게 도착한 관계로 하네다 공항에서 밤을 지새고 둘째 날 아침 일찍 사철(私鐵)편으로 신요코하마 역까지 가서 교환권을 패스로 바꿨다. 다시 돈을 내고 신마쓰다 역까지 간 다음에야 패스를 가동했고 곧바로 시즈오카로 향했다. 고등학교 때 읽은 소설 ‘대망’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린 시절 순푸 성에 볼모로 잡혀있던 얘기가 나온다. 훗날 아들에게 대권을 이양하고 만년을 보낸 곳이 바로 순푸 성, 즉 시즈오카다. 순푸 성을 둘러본 다음, 애초 가고 싶었던 마쓰다이라의 도쇼구(東照宮)는 건너뛰기로 했다. 도쇼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인데 니코로 이장하기 전에 시즈오카에 묘와 사당을 조성했다.

시미즈에서 에스펄스 드림 페리를 타고 이즈 만을 가로질러 도이 항에 도착하니 연결 버스가 한참 뒤에나 있었다. 어둠을 뚫고 버스편으로 슈젠지 온천에 도착, 기차로 갈아타고 아타미(熱海) 온천으로 갔다. 역에서 한참을 걸어 예약해 둔 호스텔로 갔는데 온천탕까지 있는 등 생각보다 시설이 좋다. 셋째 날은 아타미에서 출발, 시즈오카 서쪽에 있는 가케가와를 찾았다. NHK 대하드라마에서 본 인물이 한때 다스렸던 성이어선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완행열차를 타고 후지 역까지 갔는데 그날은 후지산 북쪽의 가와구치코에서 머물기로 예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뿔사, 후지큐 버스가 이미 끊어진 다음이었다. 밤은 왔는데 호스텔에 가지 못하면 이미 치른 숙박료를 날릴 판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다가 혹시 모르지 하는 심정으로 후지산 서키트의 맞은편 출발지인 고텐바 역으로 가기로 했다. 첫 나흘은 혼자 다닐 것이라 포켓와이파이를 빌리지 않았고, 그 때문에 버스시간표를 미리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고텐바 역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온 순간 천우신조랄까 막 출발하려는 후지큐 버스를 잡을 수 있었다. 근 세시간만에 도착한 가와구치코에서 호스텔을 찾아 들어갔다. 가와구치코는 도쿄에서 주오센 기차를 타고 오츠키에서 후지급행선으로 갈아타면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후지산을 올라가는 전진기지다. 신주쿠 버스터미널에서 케이오 직행버스를 타면 아예 후지산 등산로 입구인 고고메(五合目)까지 갈수 있다. 요금 2,700엔에 2시간 25분이 소요되며 후지산 등산이 가능한 것은 7월 1일부터 9월 10일까지여서 나머지 기간에는 해발 2,305m인 고고메에서 산을 바라보고 가벼운 하이킹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나흘째에는 하마마쓰(浜松)에서 잤다. 하마마쓰 성 역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인연이 깊은 곳인데 요즘은 일본 자동차산업의 중심지라 브라질 출신 노동자들을 꽤 볼 수 있었다. JR패스를 개시한 다섯째 날에는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나리타 공항으로 가야 했는데 하루 종일 시간이 있어서 타카야마를 거쳐 토야마에서 신칸센으로 도쿄로 돌아오는 대우회로를 택했다. 닷새째는 일행과 함께 다시 나가노(長野) 젠코지(善光寺)를 거쳐 이른바 우라(裏) 일본의 대표적 도시 가나자와(金澤)로 향했다. 이튿날인 제6일 일본 제일의 정원이라는 겐로쿠엔과 이봉창 의사를 끌어다 사형 집행한 가나자와 성을 둘러봤다. 이 날 밤은 오사카 스파월드에서 지내고 제7일은 교토, 8일은 나라에서 바쁜 일정을 보냈다. 교토에서 간 곳은 금각사-은각사-텐류지-아라시야마-교토대-기요미즈데라 등이었고, 나라에서는 사슴공원-도다이지(東大寺)-가스가다이샤 등이었다. 나라마치 호숫가에서는 때마침 마쓰리가 열리고 있어 구경을 했다.

제9일은 시코쿠의 고치(高知)까지 기차를 타고 갔지만 시간이 없어 바로 돌아서야 했다. 제10일은 일본 본토의 남단인 가고시마(鹿兒島)에서 페리를 타고 사쿠라지마로 건너갔다. 제11일은 신칸센으로 나고야를 거쳐 하코네를 들렀다. JR패스가 하루 남아 있었지만 도쿄에서 저녁 약속이 있어서 포기했다. 12일과 13일은 도쿄 서브웨이 티켓으로 신주쿠-메이지진구-조조지(增上寺)-긴자-아사쿠사-롯폰기-오다이바 등지를 다녔다. 마지막 날인 제14일엔 새벽에 숙소에서 호텔버스를 타고 하네다 공항으로 가서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결국 전 일정을 통해 JR패스를 최대한 활용해 주마간산의 여행을 한 셈이다. 한곳에 느긋이 눌러앉아 즐기지는 못했지만 제한된 시간에 일본을 되도록 많이 보려는 일행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고 하겠다.

   
 

JR패스를 구입할 때 참고가 될 만한 포인트 하나. 일본 전국을 둘러보기 위해서 재팬 레일 패스를 산다면 7일권이 아니라 14일 또는 21일권이 바람직하다. 일주일로 일본을 다 둘러보는 것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관광지에 머물지 않고 그냥 기차만 타고 계속 움직인다 해도 일주일에 일본을 한바퀴 도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도쿄에서 출발해서 홋카이도나 큐슈 또는 시코쿠 중에 한곳이나 두 곳을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최소한 2주일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여행을 일주일 정도 한다면 JR패스보다 더 유리한 패스들이 없지 않다. 예컨대, JR웨스트가 발행하는 ‘산요-산인 패스’는 7일간 하카타에서 오사카, 이즈모, 교토, 나라까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신칸센도 이용할 수 있는 이 패스는 19,000엔이어서 JR패스보다 10,000엔 이상 싸고, 홋카이도와 도호쿠 지방을 갈 생각이 없다면 알맞다.

간사이-호쿠리쿠 패스는 오사카에서 오카야마, 돗토리 등 간사이 지방과 가나자와 등 호쿠리쿠 지방을 자유롭게 가는데, 7일권이 15,000엔에 불과하다. ‘세토우치 패스’는 오사카·하카타 간의 신칸센을 5일간 이용하는데 17,000엔이다. ‘간사이 와이드 패스’ 등은 JR패스로 불가능한 아마노하시다테를 갈 수 있는데 5일간 9,000엔밖에 안 한다. 이밖에 JR큐슈레일패스는 3일권이 15,000엔, 5일권이 18,000엔인데 큐슈 여행에는 딱 좋다. 산큐패스는 큐슈의 고속버스와 선박을 이용할 수 있고 간사이스루패스는 간사이의 JR을 제외한 모든 전철·지하철·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결국 일본 여행을 가기 전에 어떤 교통패스가 가장 알맞고 유리한지 충분한 검토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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