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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러를 향한 절절한 존경과 사랑의 고백피아니스트 채수아의 테니스 에세이
채수아(피아니스트)  |  editor@tennispeop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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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16  14: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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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마스터스컵 우승 직후 팬들과 만나고 있는 페더러의 모습입니다.^^

저는 피아니스트이자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입니다. 평생 라켓이라곤 대학교 새내기 때 필수 과목으로 테니스를 한 학기 수강했을 때와 개인 레슨 한 달 동안 잡아본 게 전부입니다. 게다가 타고난 운동 신경도 없습니다. 이런 제가 왜 가장 운동 능력을 요하는 스포츠 종목인 테니스에 관심을 가지고 심지어는 글까지 쓰고 있냐고요? 하하, 저도 신기합니다. 

스포츠에는 원체 관심이 없던 저는 이상하게도 중학교 시절부터, 그러니까 80년대 당시 가끔 밤늦게 방영해주던 테니스 토너먼트를 시청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경기 규칙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넋을 잃고 선수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게 참 흥미로웠습니다. 당시 슈테피 그라프의 신기에 가까운 발놀림을 보며 참 대단하다고 느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샘프라스의 군더더기 없는 서브 앤 발리는 누군가는 재미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저에게는 최고로 멋진 폼이었고,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예술적인 그 무엇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멋모르는 테니스 사랑은 90년대 중반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더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테니스가 훨씬 일반화된 나라이고 스포츠 전문 채널에서 4대 그랜드슬램 등 굵직한 토너먼트를 종종 중계해주곤 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았습니다. 대체 내가 ‘왜’ 테니스를 이렇게 좋아하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제가 평생 매달려서 연마해온 피아노와 뭔가 맥락이 닿아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아노와 테니스의 공통점을 꼽아볼까요? 

첫째, 어릴 적부터 배워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기본이 중요하다는 의미이지요. 

둘째, 희생을 요합니다. 남들 놀 때 나는 연습에 몰두해야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여기까지 하고 로저 페더러 이야기를 하며 다시 이 부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2001년 윔블던. 포니테일에 수염 덥수룩한, 다소 괴물(?) 같은 외모의 열 아홉 살 로저 페더러는 16강전에서 전설의 영웅 샘프라스를 만나 가젤영양처럼 코트를 누볐습니다. 특이한 외모였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이전에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우아하고도 공격적이며 차가움과 뜨거움이 공존하는 천재적인 플레이였다는 겁니다. 

여름방학 기간. 그 날 따라 늦게 일어나 파자마 차림으로 하숙집 주인댁 TV 앞에 서있던 저는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페더러를 응원하며 그가 결국 샘프라스를 잡고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을 긴 다섯 세트 내내 지켜보며 열광했습니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로저의 팬이 되어 지난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그와 함께 울고 웃어온 것은 제 생의 가장 멋진 특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의 로저와 지금의 로저의 위치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군요. 그동안 테니스는 곧 페더러였고 그는 역사의 새 장을 쉼 없이 썼습니다. 이제는 로저나 테니스 팬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체력 소모가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도 큰 테니스에서 그의 내리막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인 터.

사실 내리막은 이미 시작된 지 꽤 되었지요..꿈에도 그리던 ‘올 잉글랜드 클럽’에서의 페더러 경기 관람은 이젠 정말 꿈으로 흘러가나보다하는 감상이 슬슬 들기 시작합니다. 그 곳의 유명한 크림 얹은 딸기를 즐기며 ‘헨만 힐’(이제는 ‘머레이 마운틴’)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God made Roger Federer’라는 현수막을 단 근처의 교회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저의 바람은 그저 바람일 뿐이겠지요. 가끔 초록 잔디 위의 롤렉스 광고를 보면 마음이 왠지 그렇습니다. 저 멋진 윔블던 페더러 롤렉스 광고를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볼 수 있을까요. 

노장이라 불려도 되는 나이에 접어들어서도 페더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간혹 슬럼프가 있긴 했지만 어느새 회복하여 더 날렵해진 몸으로 가볍고 힘차게 날아다니는 플레이를 보여주곤 했지요. 깔끔하고 한결같은 서브 동작, 힘 있고 정확한 스트로크, 허를 찌르는 코스의 드랍 샷, 발레리나 같은 풋워크, 그리고 활어를 저미는 마스터의 솜씨를 연상시키는 저릿저릿한 슬라이스. 2009년, 그가 드디어 샘프라스의 최다 메이저 기록을 갱신하고 커리어 그랜드 슬램도 이뤘을 때 저는 궁금했습니다. 

과연 테니스계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룬 로저가 앞으로는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답하듯이 그는 2010년 호주 오픈에서 다시 한 번 최고의 기량과 정신력을 선보입니다. ‘뭘 더 이루고 싶어, 로저?‘ 하고 묻고 싶었다. 그가 욕심이 유달리 많아서일까요? 아니, 그는 테니스를 진정 사랑하는 겁니다. 트로피를 위한 테니스가 아닌, 기록을 위한 테니스도 아닌, 테니스를 위한 테니스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음악과의 세 번째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음악도, 테니스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길게 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참고로 페더러는 취미도 테니스랍니다. 게임도 테니스 게임을 하고 남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아직도 엄청 열광합니다. 마음 깊이 테니스를 좋아하는 거지요.

잠시 나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가 아직 이십 대 초반이었을 때입니다. 이전에 비해 많이 나아진 영어 실력으로 ESPN 스튜디오에 들어와 당당히 인터뷰 하는 그가 귀엽고 대견하다고 느끼기도 잠깐. 이젠 그를 우러러보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하게 한 짧지만 좋은 인터뷰였습니다.

‘작년의 부상에서 회복하여 지금 최상의 기량을 보이고 있는데, 당연히 다시 프렌치 오픈 타이틀을 가져오는 게 목표겠지요?’ 이 질문에 나달은 강한 어조와 표정으로 대답합니다. ‘아니오. 난 오늘의 경기, 오늘의 연습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테니스를 즐길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해요.’ 페더러도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오늘, 바로 지금, 이 공 하나만을 생각한다.’ 게으름과 대충대충 정신에서 벗어나 나의 마음을 집중하여 다잡은 '지금'의 몸놀림 하나가 훗날의 영광을 일구어내는 법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그들에게선 어떠한 허영이나 드라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결코 사무적이지 않은, 마음과 혼을 실은 플레이를 하는 로저와 라파. 그들의 정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분명 롱런할 그들이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으며 실제로 그들은 롱런중입니다. 음악과의 공통점이 또 나오는군요. 

네 번째, 일체의 허영심 없이 그 순간의 연습과 연주에 집중해야 합니다.

단식 테니스는 다소 외로운 퍼포먼스 성(performance 性) 스포츠입니다. 코트에 들어서는 순간 나 홀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반응하며 책임져야 하는 종목이지요. 코트에 들어가는 선수들의 심정은 어떨까 궁금했었습니다. 페더러가 이러더군요. ‘코트, 특히 센터 코트에 결승전을 치르러 들어가는 기분은 아무리 반복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아요.’ 천하의 로저도 힘들고 긴장된다는 이야기이군요. 

다섯 번째, 독주를 하러 무대에 오를 때의 그 느낌과 비슷합니다. 외롭고, 떨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온힘을 다해서 나서야 풀리는 퍼포먼스. 강해야 하는 겁니다.

페더러의 기적적인 18번째 그랜드 슬램. 몇 주 전, 호주 오픈 토너먼트를 지켜보며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번 토너먼트를 지켜보며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풋워크는 느려졌습니다. 서브는 예전과 비슷하거나 외려 더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백핸드가 완전 좋아졌습니다. 네트 플레이 여전히 좋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기 운영 방식이 더 영리해졌습니다. 힘 빼지 않고 적절히 완급조절. 그리고 마지막 세트의 절망적인 브레이크 상황 속에서도 이전과는 다르게 나달에게 정신적으로 밀리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정말 레전드가 될 마음의 준비도 끝난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페더러는 이렇게까지 진화하는구나! 이미 천재이고, 이미 억만장자이고, 이미 GOAT인데도 계속 나아지고 있구나.

전설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에 얽힌 일화입니다. 그가 90세의 나이에도 매일 연습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왜냐하면 난 아직 발전하거든.' 

결승에서 특히나 빛난 그의 업그레이드된 백핸드를 보며 페더러는 예술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발레리나 강수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예술인이 아닙니다.’ 

여섯 번째 공통점입니다. 음악과 테니스는 결코 정점이 없습니다. 그저 계속 정진하는 겁니다.

81년생인 페더러와 비슷한 연배인, 몇 년 전 훨훨 날던 선수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사핀, 로딕, 휴잇, 로브레도, 페레로, 하스, 날반디안, 코리아, 곤잘레스....... 다들 대단한 선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은퇴했습니다. 굳이 그랜드슬램 최장기간 연속출전 기록 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페더러의 장수(longevity)는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웬만큼 명석하고 혹독하게 자신을 관리하지 않고서는 페더러처럼 테니스계에서 장수하기 힘듭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공통점이군요. 음악도, 테니스도, 한계를 뛰어넘는 자기 관리가 필요합니다.

쓰다보니 마치 페더러를 향한 절절한 존경과 사랑의 고백(?)글 같아졌습니다. 실상은 테니스의 ‘ㅌ’자도 모르는 음악가인 제가 로저 같은 대선수들에게서 어떤 영감을 받는지를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의 음악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서 테니스 선수들의 모습은 자주 긍정적인 동기 부여가 되곤 합니다. 이번 호주 오픈에서 보여준 페더러와 나달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이 스포츠의 아름다움과 강인함과 순수함에 감동했습니다. 대단한 집중력과 집념을 보여준 나달의 군살 1그램도 없는 야윈 얼굴을 보며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결국 이 두 선수가 이번 호주오픈을 통해 보여준 것은 자기관리와 훈련과 발전 등 수많은 긍정적 메시지, 더하기 슬슬 벗겨지는 머리인 듯 합니다. 하하~, 페더러, 흉보지 않을 테니 민대머리가 되도록 그 아름다운 아트 테니스 계속 해주길 바랍니다.

 

   
 

 PIANIST 채수아
선화예술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피아노과 우등 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Houston 음악 석사(MM) 및 박사 학위(DMA)취득. 전액 장학금 수여
Indiana University Performer Diploma 취득
Young TexasArtistsMusicCompetition, Moores SchoolofMusicConcertoCompetition, TexasMusicTeachersAssociationPerformanceContests,
Tuesday Musical Club Ruth Burr Awards Competition 입상
Kent/Blossom Music Festival, Park City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New Orleans Piano Institute 참가
Martin Canin, Abbey Simon, Christopher O’Riley, Micha Dichter, Christopher Elton, James Giles 등의 마스터클래스 참가


금호아트홀, 영산아트홀, 모차르트홀 독주회 및 미국 Texas, Indiana에서 다수의 독주회. Moores Chamber Orchestra, Clear Lake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rth of Houston과 협연
예술의 전당, 성남아트센터 다수의 듀오 연주회, 분당 피아노 앙상블 창단 및 정기연주회, 현음회 정기연주회, 이화 뮤직 페스티벌, 한국음악예술학회 정기연주회 및 미국, 아이슬란드에서 실내악, 반주 등 다수의 음악회 출연
KUHF(Houston 공영 라디오국)와 Iceland Public National Radio 연주 녹화 방송


Texas Music Festival Summer Piano Camp 강사 역임, High School for the Performing and Visual Arts in Houston 마스터클래스 지도, Dorothy Taubman Technique 강사, 다수의 Texas 음악교육협의회 회장과 임원 역임, 이화여대 실기지도자 과정 강사
Kingwood College, College of the Mainland, Galveston College, University of Houston 부설 Preparatory 과정, University of Houston, 숭의여대 강사 역임
한국피아노교수법학회, 한국음악예술학회 회원, 분당 피아노 앙상블 창립 회원
현재 삼육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선화예중,고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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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리의 팬아니었
지만 지난 호주오픈 결승이후 어느정도 (열렬하지는 않지만) 팬이 되었습니다. 요새 젊은이들은 보통 나달 or 페더러 팬이자만 연식있는 저는 둘 다 아니지요. ^^ 여튼, 벗겨져도 샘프라스만큼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과학도 발전할테고.
(2017-02-17 10:58:31)
이상원
운동으로 테니스도 치세요
테니스인들이 도와드립니다.

(2017-02-16 16:48:25)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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