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테니스계는 둘로 나눠진다. 선출이냐 아니냐.  선출은 선수출신의 준말.   참고로 기자는 선출이 아니다. 선출이 아닌데 선수들보고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며 훈수를 뒀다. 뭘 안다고.

그저 책보고 인터넷보고 그랜드슬램 다녀본 것 갖고, 선수들보고 코치들 보고 이러쿵 저러쿵했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과 이땅의 지도자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었다.  대개의 반응들은 "선출도 아닌데 뭘 안다고"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광야의 외로운 늑대의 소리처럼 외쳤다. 아는 것이 그거밖에 없고 본 것이 그것밖에 없는지라 기자는 기자일을 하는 것이고 선수와 코치는 자기 일을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어언 10년이 넘었다.  지금도 기자는 기자일을 하고 선수와 코치는 엄연히 자기 일을 한다.

한국선수권을 모처럼 전기간 취재했다. 선수들 인터뷰를 주로 맡아서 했다. 불러놓고 이런 이야기 저런 궁금한 이야기를 물었다.   대회때 무엇을 먹고 평소 훈련은 어떻게 하고 누구에게 지도를 받고 꿈은 무엇인지. 

비록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점심으로 김밥을 먹고 평소 특출난 훈련 지도를 못받아도,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세계 무대에 못 나가도, 아쉽지만 대개가 만족해했다. 그리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되 테니스밖에는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투어 선수들은 자기와 다른 세계에 사는 선수들이고 감히 도전해 볼 생각도 여건도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가 좋고 어쩔수 없다는 것이다.   가만히 인터뷰한 것을 다시 들여다보고, 가만히 선수들 모습담긴 사진을 들여다보니 기자도 선수들의 삶을 존중하게 되었다. 지도자들도 선수들에게 "코트에서 펼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나오라"하는 것을 주문한다고 한다. 이겨야 한다든지 무슨 기술을 꼭 써서 상대를 제압하라든지 하는 말은 이세계에서 절대 금기어다.  

다만 이기고 싶은 경기에 졌다고  경기 뒤 일반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대신 운동장 두바퀴를 뛰는 선수 모습이 더 보고 싶었다. 격렬한 경기를 하고 나서 24시간 동안은 몸이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데 경기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같다고 하는 전문가의 지적이 있었다.  1분간 마음의 안정은 찾을 수 있지만 심혈관, 기관지, 심장에 무리를 줘 선수생활 6개월은 단축시킨다고 한다.  마음이 울적할 때 런닝을 하면 몸에서 땀이 나와 심기일전하게 된다.   코리아오픈때 외국 선수들은 수건 놓을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메디신볼 던지고 줄넘기하고 테니스공 코치와 주고받고 하는 등 몸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시간을 그야말로 금쪽같이 쪼개쓴다. 경기전에 경기후에 선수들이 올림픽코트를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움직이는 모습이 좀 아쉽다.    

여건과 살아온 성장 배경 그리고 선수 의지의 형편대로 선수는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호랑이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한국선수권 관중석은 금요일까지 썰렁했다. 선수들의 열정과 볼만한 경기에도 불구하고 71회한국선수권이라는 역사가 무색했다. 관중들의 눈높이는 세계 톱10 수준에 맞춰져 있는데 국내 선수들의 플레이에 만족할 리 없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결승에 올라 트로피에 이름을 새기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웃는다.

대한테니스협회 존재의 이유 중 하나는 선수들에게 테니스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웃게 하는 것이다. 선수의 몸을 만들어주고 기술을 완성시켜주고 먹는 것을 알려주고 어려울때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큰 지침과 방향을 제시하면 된다. 크게는 테니스를 업으로 택한 선수가 평생 그 일로 뻗어나가게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국제선수로 크거나 국가대표가 되거나 국내 대회에서 플레이를 잘 하는 선수로 만드는 일이 협회 존재의 이유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걸어가다보면 목적지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아무튼 한국선수권에 출전한 선수들은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