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롤랑가로스 필립 샤트리에 코트 외부

 22일 프랑스오픈 예선이 개막한 데 이어 오는 6월 20일부터는 윔블던 대회가 열린다.

테니스의 그랜드 슬램이라 불리는 4대 토너먼트 가운데서 윔블던이 메인이벤트라면, 이에 앞서 열리는 프랑스오픈을 세미파이널이라고 보아도 크게 망발은 아닐 것 같다. US오픈의 경우 프랑스오픈보다 역사가 더 오랜데다 명성도 높지만 프랑스오픈은 윔블던대회에 바로 앞서 테니스의 발상지 유럽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주목의 대상인 듯하다.

우리가 ‘서구’라고 할 때 보통 영국과 프랑스를 떠올린다. 독일은 중부유럽이라고 할 수 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남유럽 국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밖에 서유럽국가로 분류될 나라는 네덜란드 등 베네룩스 3국과 아일랜드, 스위스 정도 외에는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영국은 ‘팍스 브리타니카’의 영광을 과거의 일로 치부하더라도 미국이 이어받은 ‘앵글로색슨 패권’은 현재진행형일뿐더러 영어가 세계어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대접을 받는 나라다.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가장 알짜배기 땅을 차지하고 영국과 독일에 맞서온 구주 열강의 한축으로서 풍부한 역사문화유산을 자랑한다.

그런데 영국과 프랑스의 비슷한 점이 무엇이고, 동떨어진 점은 무엇일까. 물론 이런 비교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인상비평이자 단편적 관찰에 불과하다는 전제를 새삼 말할 나위 없다.

우선 영국과 프랑스는 인종적,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유사성과 근접성, 친연관계 때문에 유럽인을 처음 만났을 때 스스로 밝히기 전에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것은 그들이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영국과 프랑스의 공통점을 일일이 매거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차이점이 오히려 흥미의 대상이라 하겠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원조 국가였지만 농업에 이어 제조업을 대부분 포기한 지가 한참 되었고, 지금은 에너지산업 외에는 법률·금융·보험·비즈니스서비스 등 서비스업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프랑스는 이보다 좀 나은 형편이라 원자력·항공 산업 외에도 기계·화학·자동차 등의 제조업 기반이 그나마 좀 남아 있지만 디지털 경제가 취약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인구 (영-6304만명·세계22위, 불-6563만명·21위) 국내총생산 (구매력 기준 영-2.25조달러·9위, 불-2.21조달러·10위) 1인당GDP (영-3만5900달러·34위, 불-3만5000달러·35위)이 수치상 거의 동일한 수준이고, 세계 순위도 실로 ‘난형난제’라 아니할 수 없다.

서울이 강이 크고 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면 런던과 파리는 강이 작고 평지 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도시 구획과 지리적 형태에 관한 한 세 도시 모두 비슷한 모습이다. 단지 런던이 길이 더 비좁고, 기념비적인 건축물도 비교적 적은 반면 널따란 하이드 파크가 인상적이고, 파리는 넓은 길거리와 장엄한 건물, 일률적 고도제한, 녹지가 곳곳에 많은 것이 두드러진다.

런던이 1666년 대화재 이후 10년 동안 재건한 17세기형 도시구조를 유지하고 있어 자연발생적 진화라는 느낌을 준다면, 파리는 1853~70년 사이 나폴레옹3세의 제2제국시대에 기존 시가지를 60% 이상 개비한 ‘오스만 남작의 파리 재개발’의 소산이다. 당대의 비평가들에 따르면 1830년과 1848년 혁명의 교훈에 따라 반란군이 바리케이드를 치기 어렵게 하려는 의도에서 파리 도로를 당시 기준으로서는 턱없이 넓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병력 이동의 편의와 화망 구성, 화력거점 배제 등 군사적 고려가 가미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난 3월초 일본 히로시마 외곽의 미야지마 섬을 찾아가는 길에 영국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하기 전에 일본을 여행 중이라는 젊은이와 잠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일본보다 영국이 낫다고 하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런던은 글로벌한 도시이고, 누구나 세계 어디에서 오든 편안하게 느낀다는 것이었다. 영국은 유학생과 아랍 부호 등 부동산 투자자 유치가 꼭 필요한 형편이니 그건 놀랄 일이 아닌데, 그보다 영국은 ‘위층과 아래층’문화로 상징되는 계급 격차에다 런던 이북과 이남의 지역 격차 등 2중구조의 문제가 심각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더니 신통한 대답은 없었다.

이어진 대화에서 “프랑스의 미래가 밝다고 보느냐”고 물었더니 “안 그럴 거라고 보느냐”고 되물어 왔다. 프랑스는 이른바 그랑제콜(grandes echoles) 출신들이 요직을 독점하는 등 엘리트주의가 너무 심하고 일반 대학은 학생들이 그리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지 않더라는 것이 나의 답이었다. 프랑스는 고용의 유연성이 떨어져서 15세~24세의 청년실업률이 22.6%(영국은 18.9%)에 이르는 등 젊은이가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여기에 ‘프랑스는 나폴레옹 이후 전쟁에서 이긴 적이 한 번도 없지 않느냐’고 웃으며 덧붙였더니 크게 수긍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유럽인의 콧대를 꺾으려는 신경전을 벗어나 좀 더 진지하게 말하면, 영국은 근대 의회민주주의의 종주국이고 프랑스는 서구문명의 정수라 할 계몽주의(개화사상)를 꽃피운 나라다. 영국의 경제사가 닐 퍼거슨은 지난 3월 발간된 저서 ‘문명: 서구와 기타 국가들’에서 서구가 기타 국가들을 압도하고 세계를 지배한 것은 경쟁, 과학, 재산권(법치), 의학, 소비사회(consumerism), 근면(the work ethic) 등 6가지 킬러 앱(killer app.)을 갖췄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는데, 이 모든 것은 예외 없이 영국과 프랑스에서 비롯되거나 본격화됐다.

23일 우리나라 인구가 드디어 50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한국은 2011년 현재(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과 1인당 GDP가 각각 1.55조달러(세계 13위)와 3만1700달러(40위)인데 앞으로 남북이 통일한다면 1인당 GDP는 일시적으로 떨어지겠지만 인구와 경제규모는 영국과 프랑스를 앞지르게 된다. 참고로, 일본은 지난해 1인당 GDP가 구매력 기준으로 3만4300달러(37위)로 싱가포르(5만9900달러 5위)와 홍콩(4만9300달러 10위)은 물론 대만(3만7900달러 28위)보다 뒤떨어진 지 오래고 곧 한국에게도 추월당할 것이라는 것이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근 보도다.

오늘로부터 10년 안에 전쟁 없이 남북통일을 이뤄서 경제력 규모로 세계 8대 경제가 되기 ? 우리의 국가 목표로서 너무 단기적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