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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선수 출신으로 성공한 인물 김문일 현우서비스 대표
대담 박원식 기자 사진 방극용 기자  |  editor@tennispeop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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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30  15: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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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인생 실패자는 홀로 있는 시간을 관리하는 데 실패한다. 반면에 인생의 성공자는 홀로 있는 시간을 자기 계발과 창조의 시간으로 마음껏 즐긴다. 인생의 번뜩이는 영감은 주로 홀로 있기를 통해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국민생활체육전국테니스연합회장을 지낸 김문일(68) 현우서비스 대표의 경우가 그렇다. 김 대표는 새벽 5시에 기상해 스트레칭을 30분간 하고 자전거를 한 시간씩 탄다. 그리고 나서 테니스 라켓을 들고 30분간 스윙연습을 한다. 이 시간에 몸을 다스리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13년간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와 감독을 지내고 산업은행, 현대중공업, 현대해상 호남본부장, 경일산업 대표, 국회의원선거 출마와 낙선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김 대표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시간을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사용했다. 김양균 전 대법관도 김 대표를 두고 새벽샘(효천 曉泉) 같다는 호를 지어주었을 정도로 김 대표는 새벽에 강하다.
2012년 12월 24일 눈이 내려 60센티미터 넘게 쌓인 날. 목포교도소 정문앞에 60여명의 새누리당 관계자와 지인들이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2012년 7월 정당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된 김 대표가 성탄절 특사로 가석방됐다. 구속 당시 “이제 끝났다”는 세간의 평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김 대표의 인기는 여전했다. 김 대표는 그 자리에서 “동료들이 이렇게 많이 오신 이유는 함께 가야할 길이 남아 있는데 앞장서라는 뜻이라고 믿는다”고 재기할 뜻을 강하게 비쳤다.
‘시련을 있어도 좌절은 없다’는 김 대표의 신조는 자기만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남 곡성 출신으로 67년부터 78년까지 테니스 국가대표로 국위를 선양한 김 대표에게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다녔다.
82년 데이비스컵 감독으로 당시 중국 땅을 처음 밟았던 체육인이 바로 김 대표다. 한국인 최초의 윔블던 출전과 미국 닉 볼리티에리 아카데미의 한국인 첫 연수, 국제대회 출전이 쉽지 않았던 시절에 총상금 1만불의 새틀라이트 국제대회도 처음 출전한 것도 모두 김대표의 몫이었다.

70세 종심(從心)을 앞둔 김 대표에게서 은퇴라는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이제 마음이 하고 싶은 바를 따르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아서이다. 1월 6일 강남구 신사도 1번지에 있는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 지금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책 읽기고, 가장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테니스라 한다. 인터뷰 전까지 책을 읽고 있었는지 책이 펼쳐져 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것이 많아 보인다
=68년 인생살이에서 테니스선수, 감독을 거쳐 산업은행, 현대중공업, 현대해상 호남본부장, 경일산업 대표, 현우서비스 대표까지 8가지 직업을 해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현대해상 테니스 감독 시절 IMF가 닥쳤다. 회사 임원회의에서 갑자기 호남본부장으로 인사명령을 받아 보험 영업을 하게 되었다. 직업을 바꾸는 일이라 새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보험 영업하면 처음에 지인 목록을 작성하는데 주로 테니스로 아는 도지사, 시장, 기업 회장 등의 이름을 목록에 넣어 영업을 다녔다. 뭔가 막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1주일이 지나 안 올 데를 왔구나 생각했다. 준비도 안되고 IMF 상태여서 영업이 안됐다. 곰곰히 생각하면서 답을 얻어냈다. 높은 사람 순서로 찾아 다닌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적을 쌓아갈 수 있는 사람부터 만나자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열흘간 자신 있게 보험 가입 가망고객을 찾아 다녔다. 테니스도 자꾸 이겨야 자신감이 생기듯 슬슬 일이 몸에 붙었다. 사람도 알고 조직 관리도 알아 나갔다. 그 결과 3년간 전국 1등을 했다. 지나고 보면 선수에서 기업인으로 탈바꿈한 것이 바로 현대해상 호남본부장 일의 성공에서 비롯됐다.

-정치에도 도전을 하는 등 새로운 일을 겁내지 않는다
=선수시절 다른 사람과 달리 서비스에 온통 신경을 썼다. 서비스를 잘 하려고 큰 우유통을 매달아 놓고 통안에 볼을 넣는 토스 연습을 어지간히 했다. 아시아의 캐넌 서버라는 별명을 얻어내 해외에서도 통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성공의 비결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애썼다.

-노력도 노력이지만 주위의 도움도 많이 받는 것 같다
=농사짓는 부모 밑에서 정직을 배웠고 5남5녀 형제 속에서 더불어 사는 훈련을 받았다. 백제구락부 회원들이 호주 테니스유학 자금을 댈 정도로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았다. 현대 정주영 회장, 명지대 유영구 이사장, 정몽준 의원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받고 있다.

-아무리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아도 테니스 선수가 기업인으로 자리잡는 데 비결이 있다면
=산업은행 선수시절 보통 총무부나 인사부에 배치하는데 들어가자마자 회사에 책상과 전화를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운동선수가 책상이 왜 필요하냐는 답에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운동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다. 현대중공업에선 기획조선부에서 책상 놓고 일했다. 현대해상 부장으로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소속감과 회사 분위기를 익혔다. 작지만 기본적인 일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아웃사이더가 아닌 구성원의 일원으로 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실천했다.

   
▲ 책상 옆에 놓여 있는 아령

-국민생활체육전국테니스연합회장에서 물러난 뒤 테니스 분야에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500만명 회원을 지닌 재경광주전남향우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다. 광주전남 23개 시군구 체육대회에 엄청난 인구가 모인다. 한 예로 완도군 재경골프대회에 300명씩 참석한다. 이런 행사에 참가한다. 향우회내 산악회, 여성회, 청년회, 골프회, 23개 시군구회가 있는데 테니스회를 만들어 군 대항 대회를 하려고 한다. 회사 일 등 바쁘긴해도 테니스로 얻은 건강과 성공으로 얻은 것을 요청하면 무엇이든 하고 오라고 하면 어느 곳이든 갈 각오가 되어 있다.

-시니어테니스연맹 회장 출마도 거론되고 있다
=1월 27일 총회서 결정이 난다. 28년전 민관식, 홍종문 등 한국테니스에 큰 힘이 되신 15명의 인사가 시니어연맹의 전신인 베테랑연맹을 창단했는데 선배들의 정신을 살려 좀 더 활성화해 모든 클럽의 모범이 되는 단체로 만들고 싶다. 혼합복식으로 경기를 해서 분위기를 살리고 시니어연맹 가방, 티셔츠도 제작해 윔블던 같은 명문단체를 만들고 싶다.
사실 매일 운동하는 50대~80대에 이르기는 시니어들이 테니스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고객이다. 업체와 상생관계를 유도하고 싶다.

-2017년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이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대한테니스협회와 국민생활체육전국테니스연합회의 통합회장으로서 나설 생각은
=2016년 국회의원 선거도 있고 2017년 대통령 선거가 있다. 전국테니스연합회장은 정치인 취임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다만 통합회장은 기회가 오면 하고 싶다.

-성공한 테니스인으로 그동안 엘리트 테니스에 나서지 않았다
=1990년에 유력인사 10여명으로 테니스프로화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모임도 갖고 연구도 많이 했다. 92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통에 흐지부지됐다. 엘리트테니스를 위해 할 일이 있다면 프로화를 하는 것이다. 사실 프로화를 하려면 대회를 많이 열어 선수가 상금으로 살아갈 수 있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선수들이 국내프로리그에서 하다가 잘되면 해외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선수 은퇴 뒤 레슨을 하면서 프로 대회에 출전하면 된다. 상금대회를 만들면 방송과 기업이 붙는다. 이형택 같은 선수가 좀 더 있었으면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테니스를 많이 시켰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직장생활보다 프로선수로 지내는 것이 더 낫다. 대회에 출전해 10년간 번 돈으로 평생 살 수 있어야 프로화가 의미있다.

-성공의 비결이 있다면
=책을 많이 읽고 가까운 사람끼리 친해야 한다. 만나면 다시 만나고 싶을 정도가 되야 하고 배울 점이 많다고 느껴야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3년간 눈치 안보고 테니스 라켓과 골프백 싣고 강원도 영월~전남 목포까지 두루 다닐 지인들이 있다.

 

   
▲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선수시절의 사진

김문일은

1947년 4월 12일 전라남도 곡성 출생

곡성중앙초등학교
남원고등학교
명지대학교 체육학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 및 감독
제 24회 서울 올림픽대회 테니스본부 사무총장
2001-2006 경일산업 대표이사
1999-2001 현대해상화재보험 호남지역본부장 이사
2007~ 현우서비스 대표이사
2010-2012 국민생활체육전국테니스연합회장

중앙초등학교 봉순장학회 이사장
3650지구 서울인협로타리클럽 회장

대통령 표창
체육 훈장 기린상

저서

<김문일테니스교실> 삼원프로덕션 편(1993년 10월 출간)

자전 에세이 앙스트불뤼테
-한 플레이어의 끝없는 도전과 꿈이 있는 삶의 이야기-
출판시대(2010년 02월 26일 출간)

   
▲ 김문일 회장이 선수시절 서브 토스를 안정시키기 위해 우유곽을 공중에 매달아 놓고 그 안에 볼을 넣는 연습을 했다며 시연을 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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