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4월 20일~25일 창원퓨처스 기간 중 날씨

2010년 4월 22일 수요일 창원 시립 테니스장. 새벽에 비가 살짝 내려 코트가 젖어 있었다.  퓨처스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아침에 키가 큰  캐나다 선수가 나와 코치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코트가 비로 인해 약간 미끄러워 러닝 스트로크는 힘들었다. 제자리에서 임팩트 감각만 익혔다.  보슬비가 그쳐  대회는 열렸다.    그 선수는 그날 우리나라 유다니엘 선수와 힘겨운 경기 끝에 7-5 6-3으로 이겨 8강에 진출했다.  

코트 젖은 아침에 그 선수와 연습을 시킨 코치를 본 한 선수 부모가 저 코치라면 선수의 지도를 맡겨도 좋다고 생각했다. 연습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시간 활용을 하고 선수에게 비가오나 눈이오나 추우나 더우나 목표를 정해놓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게 하는 코치라면 아들 지도를 맡겨도 좋을 듯 싶었다.  그 코치를 만나 아들을 맡아달라 말을 꺼내 볼까 말까 망설였다.  생각은 머리에서만 맴돌았다.  그러고 그 선수는 8강에서 중국의 장제에게 5-7 5-7로 패하고  다음 대회장인 김천 퓨처스로 이동했다.  김천 가서 그선수는 한번도 지지 않더니 우승했다. 우승 길에  자신의 아들을  7-5 6-3으로 이겼다. 스트로크에선 아들이 밀리지 않았고 서브도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졌다. 서브가 도드라진 그 선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선수는 김천 퓨처스에 이어 열린 부산오픈 챌린저에선 예선 럭키루저로 본선에 올라 이토 타츠마에게 역전패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기억속에서 지워지는 그렇고 그런 숱한 선수이겠지 했는데 어느날  투어 우승을 하더니 지금은 세계 8위에 올라 있다. 캐나다 밀로스 라오니치의 이야기다. 

▲ 라오니치의 2010년 우리나라 챌린저, 퓨처스 출전 대회 기록

1990년 세르비아의 수도 포드고리차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라오니치는 남들보다 늦은  8살때 테니스를 했다. 돈 많이 들어가고 귀족 스포츠로 유명한 테니스를 배우기엔 라오니치의 집안은 어려웠다. 돈 내고 코칭을 받기는 언감생심.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볼머신기. 코트를 싸게 빌려 볼 머신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인 새벽이나 남들 코트 다 쓴 밤 9시에 불 켜놓고 훈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창원에서 비내린 코트에서 평소 새벽운동 하던 습관으로 코트만 생기면 운동을 했던 것이다. 누구하나 변변한 도움없는 환경 속에서도 테니스에 대한 열정과 꿈을 품고 끊임없는 노력을 한 라오니치는 캐나다 국립테니스센터의 선수반에 선발되면서 2008년 프로에 입문했다. 일찌감치 자수성가를 해야할 처지였기에 프로 입문 시기도 당겼다.

프로무대에 데뷔한 그는 2009년 캐나다에서 생애 첫 퓨처스 우승을 차지하고, 2010년엔 우리나라 대구와 김천에서 우승했다. 이때 나이 19살.  20살이 되는 해인 2011년엔  호주오픈에서 16강에 진출하며 주목을 받았다. 인생은 한 순간이고 기회가 한번 오면 잡아야 한다는 것이 라오니치를 통해서 나왔다.

코치를 기용하기 어려운 시절에 혼자 연습하다보니 볼머신기로만 연습이  안되는 서브에 신경을 썼고 새벽공기를 가르며 던진 서브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었다. 그 결과 시속 230km에 달하는 강하고 예리한 각의 서브가 그의 무기가 되었다.  많은 선수들이 라오니치의 정신력을 치켜 세우는데 다 환경속에서 나오는 이야기였다. 

라오니치는 캐나다 선수 중 최초로 세계 테니스 톱10에 진입했다. 그동안 국립테니스센터에 넣어 기회를 열어 준 캐나다협회는 라오니치의 선전으로 아이스하키를 따라잡는 테니스 종목의 부흥을 일으켰다.  한명 발굴해 기회를 제공하면서 선수도 살고 그 선수가 업계를 살리고 협회의 투자 방식 방향이 옳았음을 입증시켰다.

다시 이야기를 라오니치를 관찰한 아버지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때 라오니치의 코치를 만나 이야기해 아들을 맡겨 라오니치와 같이 다니게 했다면 어땠을까. 받아줬을까. 받아줘 라오니치와 같이 훈련하고 투어 다녔다면 그 아들이 지금쯤  톱10 진입했을까. 그 아들이 톱10 진입했으면 우리나라 테니스 여건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역사에서 가정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마도 아버지와 그 아들이 그 기회를 잡았으면 톱10은 아니더라도 투어 100위안이나 투어대회와 그랜드슬램 대회에 자유롭게 출전할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조코비치나 머레이가 주니어시절 우리나라 잘 나가던 선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어깨를 나란히 한 선수가 세계 톱10에 근접 못하고  윔블던 주니어 결승에서 힝기스와 맞붙은 전미라 선수가 이후 어떤 길을 걸어 정상권에 진입을 못했는지 연구 대상이다.   기회는 늘 있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