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선수들의 거친 호흡과 땀방울, 관중들의 환호 소리가 여전히 귓가에서 맴돌고 있는데 시간은 어느새 호주 오픈이 끝난 지 3주가 되어간다. 열차를 처음 타 본 시골 촌놈이 서울역에 내린 듯한 느낌으로 시작했던 멜버른의 보름간의 생활은 한국으로 돌아올 땐 숙소에서 2km가 넘는 거리를 이른 아침에 걸어가 버스터미널을 찾고 공항 버스를 타고 공항에 갈 정도가 되었으니 꽤나 많이 적응하고 온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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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버른의 젖줄인 야라강의 야경. 시민들이 수상택시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어울릴듯한 호주오픈 취재는 참으로 사연도 많고 느낀 것도 많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무언가 하나라도 더 얻고, 알고 가려는 욕심에 무리수를 둔 부분도 많았고 실수한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낯선 취재환경과 어려운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아 해결하려 했던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그리고 지상에서 다시 하늘로 날아 오르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한 호주 오픈 첫 취재는 아마도 기자에게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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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승전이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관중들. 시작 30여분 전이라 아직은 빈자리가 곳곳에서 보인다. |
1월 26일(일)현지시각 저녁 7:30분. 멜버른파크 로드레이버 아레나에서는 라파엘 나달과 스타니슬라브 바브링카의 남자 단식 결승전이 치러졌다. 결과는 바브링카(현3위, 당시8위. 스위스)가 나달(1위. 스페인)을 세트 스코어 3-1(6-3 6-2 3-6 6-3)로 꺾고 생애 첫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바브링카가 우승할 거라는 예상을 했던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8강전에서 조코비치를, 준결승에서 베르디흐를 꺾고 결승에 올라왔다. 조코비치를 풀 세트 접전 끝에 누르고 올라온 것은 충분한 이슈가 되었지만 베르디흐(체코, 당시7위)를 꺾은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바브링카가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에서 결승에 진출했다는 것이 뉴스 였다면 뉴스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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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브링카가 호주오픈 결승에서 나달을 꺾고 그랜드슬램 첫 우승을 차지했다.사진출처:AUS 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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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나달은 등부상으로 제대로 경기를 할 수 없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을 했다. “등 근육 통증이 너무 심해 기권을 할까 생각했었는데 그랜드슬램 결승전에서 기권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기에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경기를 했다”라고 또한 언급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부상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지금은 우승자를 축하할 때”라며 물러났다.
결승전 경기에서 서브속도 120km를 기록했던 나달, 그는 정말 부상이었을까? 딴지일보는 아니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기억과 기록을 토대로 딴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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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치가 시작되기 전 멜버른시의 소년소녀 합창단이 호주의 국가를 부르고 있다. |
주심이 네트에 서있고 바브링카가 먼저 나와서 나달을 기다린다. 준결승전에서 페더러를 한 참이나 기다리게 했던 나달은 이번엔 금새 네트로 다가간다. 여느 때와 같이 심판은 “이 매치는 결승전이고 5세트로 진행되면 3세트를 먼저 선취한 사람이 이기고 등등” 주심 매뉴얼 상에 있는 매치에 대한 설명과 주의사항을 간단히 설명한 후 동전을 던진다. 서브와 리턴, 위치가 정해지자 나달과 바브링카는 주어진 5분간의 워밍업을 위해 자신의 위치로 갔다. 나달은 변함없이 베이스라인까지 질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페더러와의 준결승 보다는 긴장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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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브링카가 로드레이버 아레나 코트로 들어서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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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 이어 세계 1위 나달이 코트로 들어서며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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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달과 바브링카가 네트로 모였다. 심판은 경기 시작전 선수들을 불러 매치 설명과 첫 게임의 위치(서브,리턴)를 토스로 선정한다. |
5분간의 워밍업이 끝나고 주심은 워밍업이 끝났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그러나 나달은 바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서브연습을 더 했다.
주심의 타임이라는 소리에 나달과 바브링카는 자신의 자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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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브링카의 서브로 1세트가 시작 되었다. |
1세트.
0-0 바브링카의 서브로 시작되었다. 첫 게임은 서브권을 가지고 있는 바브링카가 어렵지 않게 가져왔다. 전반적으로 나달의 볼은 서비스 라인 근처에, 바브링카의 볼은 베이스 라인 근처에서 바운드 되었다.
0-1 나달 서브. 시속 200km가 넘는 서브가 나온다. 에이스를 노리는 강력한 플랫서브보다 슬라이스 서브 위주로 넣는 나달에게서 보기 힘든 서브 속도다. 나달의 서브 속도가 조금 높아지기는 했으나 그래도 평상시 보다 너무 강하다
1-1 바브링카 서브. 고관절의 이상이 있는 듯 스트레칭을 한다. 게임이 시작하기 전 자신의 자리에서도 똑 같은 스트레칭을 했었다. 자신의 서브게임을 잘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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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이 좋지 않은 듯 바브링카가 고관절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이 스트레칭은 경기 시작전과 경기 중간 두 번 시행됐다. |
1-2 나달 서브. 여전히 서브 속도가 190~200km 사이다. 15-15에서 더블 폴트를 했다. 좀처럼 더블 폴트를 하지 않는 나달인데 1세트 자신의 두 번째 서브게임에서 더블 폴트라니. 두 번에 걸친 나달의 드롭 샷, 그러나 바브링카가 달려와 위닝샷을 날렸다. 나달은 브레이크 당했고 바브링카는 주먹을 불끈 쥐고 나달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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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달이 드롭샷을 놓자 바브링카가 달려와 패싱샷으로 포인트를 따냈다. |
3-1 바브링카 서브. 30-15이다. 나달이 바브링카를 흘깃 쳐다본다. “오늘 그분께서 오신 날인가? 바브링카 너무 잘 치는데?” 딱 이 느낌이었다.
1-4 나달 서브. 바브링카의 백핸드 다운더라인이 기가 막히게 들어갔다. 나달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달 빗맞은 타구가 라인에 맞으면서 자신의 게임을 지켰다. 바브링카를 향해 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시한다.
4-2 바브링카 서브. 기회만 되면 네트 대시하여 발리로 포인트. 스위스 선수들 비슷한 성향으로 나가는 듯하다. 바브링카, 페더러 돌아서서 치는 강력한 포핸드로 사이드 라인을 향해 때린다. 나달의 높게 바운드 되는 볼을 머리 높이에서 강하게 때려버림. 반대편 코트에 바운드 된 볼은 낮게 깔려 쭉 뻗어 나가버린다.. 낮게 깔린 채 종속이 붙어 나가는 볼은 나달이 받기 어려워하는 볼이다. 갑자기 바브링카의 1st 서브가 안 들어가기 시작한다. 챌린지 신청한 것도 미스다. 그러나 자신의 서브 게임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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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브링카가 강력한 포핸드를 날리고 달려들어가고 있다. |
2-5 나달 서브. 1st서브는 여전히 거의 190km대를 나타낸다. 2번째 더블 폴트가 나왔다. 극히 드문 일이다. 그러나 바로 ACE를 넣으면서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킨다.
5-3 바브링카 서브. 0-0에서 바브링카 쉬운 볼을 라켓 프레임에 맞춰 날려 관중석으로 날아갔다. 자신의 퍼스트 서브가 잘 안 들어가서 일까? 151Km로 약해진 세컨 서브를 나달 강력하게 때려 리턴 에이스를 내버렸다. 나달 역크로스 포핸드로 0-40를 만들었다. 3브레이크 찬스다. 관중들은 라파를 외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나달의 옷은 이미 축축히 젖어 있다. 그런데 이때 안 들어가던 바브링카의 1st 서브가 들어갔다. 나달 간신히 리턴 했으나 아웃, 나달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다시 바브링카의 서브 ACE에 힘입어 간신히 브레이크 위기를 벗어나고 탈출.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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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달이 바브링카를 향해 강력한 탑스핀 포핸드를 날리고 있다. 나달은 |
둘 다 최선을 다한 1세트 바브링카가 6-3으로 첫 세트를 가져왔다.
2세트
0-0 나달의 서브로 시작. 첫 번째 긴 랠리가 나왔다. 바브링카가 Win. 나달의 서브를 바브링카 돌아서며 강력하게 때려 리턴 에이스를 냈다. 바브링카의 역 크로스 포핸드 매우 위력적이다. 다시 바브링카 흩뿌리는 원 핸드 백핸드로 위닝샷을 날렸다. 2세트 나달의 첫 서브를 브레이크 시켰다. 그럼에도 바브링카 표정이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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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브링카의 백핸드 다운더라인은 나달의 기를 꺾었다. |
1-0 바브링카 서브. 강력하게 사이드 라인을 향해 볼을 때린 후 네트 대시 à처음으로 네트플레이 에러 한다. 그러나 자신의 서브게임 잘 지켜 나갔다.
0-2 나달 서브. 바브링카의 백핸드 다운더라인 살짝 라인을 벗어나고, 나달의 백핸드가 베이스라인 아웃 되었다. 다시 바브링카의 크로스로 날린 백핸드가 라인 아웃 된다. 바브링카와의 랠리싸움에서 계속 밀리던 나달, 갑자기 강하게 넣던 서브를 체인지 업 하여 살살 넣는다. 강공에서 맞춰주면서 잡기로 전술변화. 헉, 이럴 수가…나달의 1st 서브가 141km를 기록했다. 나달의 갑작스런 서브에 당황한 바브링카, 결국 나달이 그 서브에도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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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달이 코트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달이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나달이 메디컬 타임을 신청했나 보다. 운동 트레이너가 나타나고 나달이 코트 바닥에 엎드렸다. 운동 트레이너 허리부분을 이리저리 만져본다. 관중들 우~하는 야유를 보낸다. 나달이 약간의 치료를 받고 일어나자 한쪽에서 나달의 애칭인 라파를 외친다. 바브링카 주심과 무슨 이야기를 계속 주고 받는다.
2-1 바브링카 서브. 나달 이미 싸움의 기세를 잃어 버렸다. 바브링카의 서브에 적극적인 리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관중들 나달을 향해 “우~~~~”하는 야유를 보낸다. 세계1위 나달, 경기 중에 관중들에게 야유를 받아보긴 이번이 처음 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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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브링카에게 패싱샷을 당하는등 경기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자 나달이 굳은 표정으로 터벅 터벅 뒷편 펜스쪽으로 걷고 있다. |
1-3 나달 서브. 퍼스트 서브 140km대를 유지하고 있다. 세컨 서브는 이제 125km다. 무슨 이유일까? 전략? 부상? 부상이라면 그 전조 증상이 있어야 한다. 허리와 등 부위를 운동트레이너가 만졌으니 부상이라면 그 쪽인데… 통증이 그리 심했다면 메디컬 타임 부르기 전 경기할 때 최소한 한번쯤은 통증에 대한 신호를 보냈어야 했다. 기자는 바브링카보다 나달을 훨씬 주위 깊게 관찰하였으나 나달은 메디컬 타임을 부르기 전에 허리와 등 부위를 손으로 만지거나 통증에 대한 신호를 보인 적이 없다. 그럼 이도 저도 안되니 바브링카의 기세를 흐트러트리려는 전략인가? 이젠 잦아들었지만 관중들도 야유를 보냈다. 이들도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진짜 부상인지 아님 나달의 전략인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