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분....바브링카와 나달이 등장했다. 페더러와 나달이 등장한 준결승에서 2/3가 페더러의 팬이었다면 이번에는 2/3가 나달의 팬이었다. 빈 곳 없이 전 좌석을 모두 메운 관중들은 나달과 바브링카를 환호하며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바브링카의 서브로 시작된 첫 게임의 볼은 대체적으로 나달의 스트로크는 서비스라인 근처에 바브링카의 스트로크는 베이스라인 가까이에 떨어졌다. 나달은 경기 초반 1 st 서브가 200km/hr를 넘나들었다. 이 속도는 평상시의 속도보다 약 10~20km/hr가 빠른 속도다. 그래서인지 좀처럼 더블폴트를 하지 않는 나달이 1-2 자신의 서브에서 더블폴트를 범하고 정교하지 못한 드롭 샷을 놓다가 바브링카에게 포인트를 잃고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키지 못한다.

3-1 바브링카의 서브 30-15에서 나달이 바브링카를 한 번 쳐다본다. “ 바브링카 오늘 너무 잘하는데?” 라는 표정이었다.
 

바브링카의 백핸드 다운 더 라인 샷은 나달이 전혀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좋았다. 바브링카는 나달의 헤비 탑 스핀 포 핸드가 조금만 짧으면 베이스 라인 안쪽으로 들어와 높이 튀어 오르는 볼을 자신의 머리 높이에서 눌러 때렸다. 또한 나달이 간신히 받아 넘긴 볼은 어느새 네트 플레이로 끝을 내며 자신의 포인트를 쌓아갔다. 그라운드 스트로크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위너 샷을 날리며 격차를 벌여가고 있는 바브링카에게 나달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나달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게임 스코어 2-5에서 나달은 또 다시 더블폴트를 범했다. 한 세트에 두 개씩이나 더블 폴트를 범하는 나달이 아니다. 무언가 몸에 이상이 있거나 정신적으로 혼란한 상태가 분명하다. 다행히 다음 포인트에서 ACE가 터졌고 나달은 자신의 서브 권을 잘 지켜나갈 수 있었다.
 

5-3 바브링카의 서브다. 4-2에서부터 1st 서브가 들어가지 않았다. 바브링카의 세컨 서브는 거의 150~160km/hr 를 기록하고 있었다. 바브링카의 범실과 나달의 리턴 에이스, 그리고 역크로스 포핸드 위닝샷으로 자신이 잃었던 게임을 찾아올 기회가 나달에게 생겼다. 그러나 한 동안 들어가지 않던 1 st 서브가 터져 나왔고 나달은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0-40의 상황에서 바브링카의 서브를 브레이크 시키지 못한 나달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나달의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렇게 1세트는 바브링카가 6:3으로 가져갔다.
 

나달의 서브로 시작된 2세트, 첫 서브부터 긴 랠리가 시작됐고 바브링카가 포인트를 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승기를 잡았다 생각했을까? 바브링카는 나달의 서브를 바로 때려 리턴 에이스를 만들어 버렸고 백핸드 위닝샷으로 나달의 첫 서브를 브레이크 한다.
 

0-2 나달 서브, 나달이 계속 바브링카에게 밀리고 있다. 갑자기 나달이 체인지 업을 한다. 지금까지 강공이었는데 연결 구를 친다. 190km/hr가 넘던 서브의 속도가 갑자기 141km/hr를 기록했다. 바브링카는 갑자기 연해진 볼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모르는 듯 했다. 지금까지 빠른 볼과 높이 튀어 오르는 볼을 되받아 치면서 게임을 풀어 나가는데 짧고 약한 볼이 자신의 코트로 넘어오니 실수가 터져 나왔다. 결국 챌린저 급 여자서수의 서브와 볼로 나달은 자신의 게임을 지켰다.
 

나달이 메디컬 타임을 불렀다. 출구를 빠져 나가는 나달에게 관중들은 우~~~하는 야유를 보냈다. 나달이 관중들에게 야유를 받다니…이런 경우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 코트로 돌아온 나달은 등근육을 맛사지 한 후 자신의 자리로 들어섰다. 나달의 팬들은 “렛츠 고 라파”를 외치며 나달을 응원했다. 그러나 이미 나달은 기세를 잃고 있었다. 그의 서브는 125km/hr까지 떨어졌고 스트로크도 그저 넘겨주는 연타였다. 등 근육 부상 때문일까? 아님 바브링카의 기세가 워낙 강하니 흐름을 끊기 위한 전략일까? 일단 나달의 전략이라고 생각하고 게임을 지켜봤다. 그런데 아무리 전략이라 해도 이건 너무했다. 바브링카의 강한 샷은 아예 뛸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힘있게 감겨야 할 볼은 스핀을 먹지 않으니 라인 아웃이 속출했다. 페더러와의 준결승에서 보여줬던 그 투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2세트도 바브링카가 6:2로 가져갔다. 이미 투지를 잃은 게임은 그 누구에게도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고 관중들은 시간이 갈수록 잠잠해 졌다.
 

3세트 나달 서브, 서브는 조금 강해졌다. 150km/hr대를 기록한다.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킨 나달, 여전히 나달의 연타에 적응하지 못한 바브링카는 얼떨결에 나달에게 자신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 당하고 만다.

다시 한번 나달이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키면서 3-0으로 앞섰다. 톡 톡 코너를 향해 컨트롤 샷을 하는 나달의 볼에 계속 말리고 있는 바브링카의 표정이 않좋다. 2세트의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했던 관중들은 나달이 앞서 나가자 다시” 렛츠 고 라파”를 외친다. 나달은 바브링카의 서브 게임을 굳이 브레이크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서브게임을 약한 서브와 스트로크로 잘 지켜 나갔다. 가끔씩 나오는 스트로크 대결에서는 나달이 매번 졌다. 그러나 서서히 서브 속도가 회복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나달의 서브가 170~180km/hr를 기록한다.
 

그렇게 바브링카는 헤매고, 나달은 점점 기세를 찾아가며 3세트는 6:3으로 나달이 가져갔다.

세트 스코어 1:2가 되자 잠시 주춤했던 나달의 팬들은 다시 열광적인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바브링카의 서브로 4세트가 시작 되었다. 바브링카의 서브가 215km/hr를 기록한다. 나달도 자신의 서브 속도를 조금씩 회복해 가며 이제 180km대를 기록했다. 리턴 준비도 몸이 정상일 때 하는 동작을 취하기 시작한다. 나달은 바브링카에게 강공보다는 지속적으로 연타를 쳤다. 그 볼에 바브링카는 여전히 에러를 속출했다. 길지 않고 약하게 오는 볼을 바브링카가 강하게 때릴 수는 없었다. 네트 플레이를 할 수도 없었다. 나달은 그렇게 살짝 살짝 애매모호한 볼을 주다 찬스 볼이다 싶으면 강하게 날렸다.  2-3에서 나달은 자신의 서브 게임을 잃었고 바로 다음 게임에 바브링카의 서브를 브레이크 시킨다. 관중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특히 나달 팬들은 나달이 이제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더 더욱 크게 환호를 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바브링카는 다시 나달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 시켰고 그렇게 게임은 흘러 6:3으로 바브링카가 이기고 2시간 21분만에 세트 스코어 3:1로 호주 오픈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상대적인 전력으로 보았을 때 바브링카가 우승할 확률이 높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나달의 우승을 꼽았었으나 결과는 예상과는 달리 바브링카의 일방적인 게임이었다.
 

나달과 바브링카는 호주 오픈에 모두 8번 출전했으나 걸어온 길은 매우 달랐다. 2004년 호주오픈에 처음 출전한 나달은 다른 그랜드슬램과는 달리 호주 오픈에서 유독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나달은 2007년 이후 대부분 8강에는 진입 했었고 2009년에는 우승을, 2012년에는 결승에 올랐으나 조코비치에게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지난해에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반면 바브링카는 2006년에 처음 호주 오픈에 출전한 후 거의 2~3라운드에서 머물다가 2011년에 처음으로 8강에 진출했을 뿐 결승에는 단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호주오픈 뿐만이 아니라 4개의 모든 그랜드슬램에서 준결승에 오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바브링카는 백핸드가 일품이었다. 팔을 뿌려 확장하는 크로스 샷 뿐만이 아니라 다운더라인 샷도 매우 위력적이었다. 또한 돌아서서 치는 포 핸드 역시 매우 낮고 빠르게 나달의 코트로 날아갔다. 나달과의 긴 랠리에서 거의 바브링카가 승리했다. 지난 해 상하이에서 보았을 때 보다 확실히 샷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 줬다. 무엇이 최고 성적이 8강이었던 그를 단박에 우승까지 하게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