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달리 서양에서는 영웅들의 동상을 세우는 전통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림픽 우승자나 전쟁 영웅, 정치가, 철학자들을 기리기 위해 도시 광장(아고라)이나 성소에 동상을 세웠다. 이는 시민 전체가 그들의 덕목을 본받도록 유도하는 장치였다.

로마 제국에서는 황제나 장군의 동상을 세우는 것이 권력 과시와 선전 수단이었고, 로마 공공 공간인 포룸(forum)에 배치되어 대중을 교육하고 감동시키는 역할도 했다.

중세에는 주로 성인이나 군주의 조각상이 교회나 성에 세워졌다. 미국, 프랑스, 영국 등에서는 도시의 중심광장이나 대학, 공원에 ‘국부’, 전쟁영웅, 시민운동가 동상을 세워 국가 정체성과 이념을 교육하는 상징물로 삼았다.

조지 워싱턴, 링컨, 처칠, 마틴 루터 킹 동상은 쉽게 발견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윔블던에 앤디 머레이의 동상이 들어서는 계획이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머레이는 2013년 윔블던 결승에서 노박 조코비치를 꺾고 77년간 없었던 영국 선수의 우승을 기록했다. 머레이는 3년 후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윔블던을 주관하는 올잉글랜드클럽은 그와 그가 선사한 "특별한" 순간들을 기리고자 했다. 머레이는 US 오픈, 데이비스컵, 그리고 두 번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후 작년에 테니스계에서 은퇴했다 . 그는 단식 타이틀을 통산 46회나 획득했으며, 조코비치, 라파엘 나달, 로저 페더러가 남자 테니스를 장악하던 시절 세계 1위를 했다.

올잉글랜드클럽 회장인 데비 제반스는 머레이와 윔블던 150주년이 되는 2027년까지 동상을 설치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제반스는 "윔블던에 앤디 머레이 동상을 설치하고자 하며, 머레이와 그의 팀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우리의 목표는 1877년 첫 챔피언십의 150주년을 기념해 이를 공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제반스는 롤랑가로스에서 라파엘 나달에게 동상과 명판이 수여되는 것을 보고 머레이 동상 건립을 박차를 가했다. 머레이 전 마지막 윔블던 영국 남자 챔피언이었던 프레드 페리의 첫 단식 우승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84년 윔블던에 동상이 세워졌다. 마지막 영국 여자 우승자인 버지니아 웨이드의 흉상과 키티 갓프리, 도로시 라운드, 앤젤라 모티머, 앤 존스 등 다른 영국 챔피언들의 동상도 있다.

머레이가 첫 윔블던 타이틀을 획득한 순간부터 그를 기리는 동상 건립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2019년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리처드 루이스는 "(동상과 같은) 무언가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윔블던 3회 우승자인 존 매켄로는 작년 머레이가 윔블던에서 작별을 고하기 전에 머레이를 위한 동상을 세우자고 주장했다.

제반스는 "이제 그는 은퇴했고, 우리는 그를 어떻게 포용하여 장기적으로 클럽의 일원으로 남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윔블던은 최다 승수, 8번의 타이틀(그중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윔블던에서 5년 연속 우승)을 가진 로저 페더러를 기리는 어떤 기념물이라고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머레이의 동상 건립을 추진하는 것에서 롤랑가로스는 최고의 챔피언(나달)을 기리는 대회였지만, 윔블던은 잔디 코트 최고의 챔피언인 힝기스나 페더러가 아닌 자국 국민을 기리는 대회임을 인정한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