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마이애미에서 열린 경기가 끝난 후, 야닉 시너와 알렉산더 부블리크는 네트에서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 19살이었던 시너는 7-6(5) 6-4로 팽팽한 8강전 승리를 거둔 직후였지만, 시너는 상대의 경기력에 놀랐다. 네 번째 게임에서 부블릭은 베이스라인과 서비스 라인 중간 지점에서 서브 게임을 따냈다. 시너의 발 앞에 포핸드 칩샷을 날린 후, 네트에 하프 발리 드롭샷을 날려버렸다.

27살의 부블릭은 카자흐스탄 출신의 테니스 재능 넘치는 선수다. 그는 기량이 좋을 때는 누구든 이길 수 있다. 경기 도중 관중과 이야기를 나누고 서브 에이스 4개로 게임을 지키는 등, 부블릭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그는 또한 언더암 서브의 제왕으로, 한 게임에서 6점을 기록한 바 있다. 그것도 수차례나.

그는 최고 17위까지 랭킹에 올랐지만, 테니스에 별 흥미를 못느끼며 부진해 현재 62위에 머물러 있다. 몇 년 전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전 롤랑가로스 챔피언 스탄 바브린카를 꺾은 후 그는 "클레이 코트가 싫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코트에서 첫 그랜드슬램(롤랑가로스) 8강에 진출했다.

세계 5위 잭 드레이퍼를 이겨 8강에 진출한 후, 부블릭은 자신이 현대적이고 집중력이 뛰어난 테니스 선수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모두가 로봇 같아요. 그저 미친 놈들일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시너가 그런 감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부블릭은 "경기 전날 저녁 파리 거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연습을 빼먹을 수도 있다"라며 "제 생각에 저는 매우 평범한데, 그들은 제가 다르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부블릭은 엘리트 테니스에서 누가 정상인지 묻는다. 자신 같은 선수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름 뒤에 붙는 시드 숫자를 줄이기 위해 삶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선수인지 묻는다

부블릭은 "저는 테니스와 삶을 50대 50으로 동등하게 생각한다"라며 "저는 건강과 라이프스타일을 우선시한다. 왜냐하면 저는 가족이 있고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저는 아버지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블릭은 열심히 연습하지만, 무분별하게 연습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연습을 하지않고 싶다면 언제든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는 닉 키리오스처럼 연습으로 기량을 키울 수는 있지만 만들어낼 수는 없는 재능을 타고났다.

그는 놀라운 손놀림과 포인트 획득 방식에 타고난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시속 200km의 서브, 포핸드와 백핸드의 유동적인 파워, 그리고 193cm의 큰 키에 넉넉한 수비력을 자랑한다. 그는 톱 50 선수가 되기 위해 다른 선수들처럼 열심히 훈련하지도 않는다.

올해 3월 80위로 추락해 자신이 싫어하는 클레이 코트에서 열심히 뛰게 되었다. 그는 테니스 외에도 부동산 투자나 암호화폐에 대한 호기심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고 독서광이다.

그는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고 싶으면 그냥 자면 된다"고 말했다.

"제 말은, 우리는 최고의 운동선수들이다. 누군가는 1억 달러(약 1100억 원)를 벌고 25개의 타이틀을 따냈는데, 아직도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다. 제 생각에는 이게 정상이 아니다. 요즘 스포츠를 보면 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는 테니스를 해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블릭의 오랜 에이전트이자 매니저인 코라도 차부슈니히는 17살 때부터 그와 함께 일해왔는데 그에 대해 "선수가 경기장에 늦게 도착하고 8시간 대신 5시간만 자면 정신적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다음 날 경기에 나설 수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블릭은 한 시간 정도 자고 코트에 나가서 '피곤하면 한 세트만 이기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부블릭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주변 상황에 덜 얽매이는 선수라는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목표를 바꿔왔다. 50위권 진입부터 20위권 진입, ATP 500 타이틀 획득, 그리고 10위권 선수를 꺾는 것까지. 그는 이 모든 것을 해냈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았다.
권위와 규율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야 하는 선수 중 하나라는 건 분명하지만 넘어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부블릭은 랭킹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어처구니없는 트릭 샷(언더암 트위너 서브, 라켓 핸들을 사용한 샷)을 덜 했지만, 다양한 기술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데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부블릭의 겉보기에 무작위적인 접근 방식이 사실 완전히 계획된 것이라고도 보고 있다.

부블릭은 상대의 머릿속에 파고드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한번 들어가면 절대 놓지 않는다.

부블릭은 언젠가 그랜드슬램 우승을 거머쥘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언젠가 그의 경기력이 가장 잘 발휘되는 잔디 코트에서 열리는 윔블던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2년 전 독일 할레 오픈에서 잔디 코트에서 그랜드슬램보다 두 단계 낮은 500m급 타이틀을 획득하며 생애 유일한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에 세계 1위 시너도 이겼다.

부블릭이 경기 중에 보이는 특징은 포인트 사이의 플레이 속도다. 지고 있을 때는 마치 아웃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기고 있을 때는 상대 선수들이 에이스와 드롭 샷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한다. 서브와 플레이 속도가 빠르고 느리게 운영하면서 상대로 하여금 언제 테니스를 해야 할 지 모르게 행동한다.  시너와의 경기때 일정하게 가는 볼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볼이 춤을 추게 한다. 강하고 긴 규칙적인 볼에 익숙한 시너가 부블릭의 다채로운 공에 당황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