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피플
뉴스테니스산업
"낫소기 우리가 하겠다"바볼랏이 전통의 중고테니스대회를 후원하게된 배경
글 박원식 기자 사진 양구=황서진 기자  |  editor@tennispeople.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9.09  07:23:51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네이버 구글
   
▲ 바볼랏(유진커머스) 김흥식 대표가 양구에서 열리는 바볼랏기전국남녀중고테니스대회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낫소기 우리가 해보겠다."

바볼랏(유진커머스) 김흥식 대표는 우리나라 중고테니스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전통의 낫소기테니스대회가 한동안 중고테니스연맹이 후원사를 찾지 못할때 한 말이다.

낫소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낫소기중고테니스대회를 후원했던 김흥식 현 유진커머스 대표는 낫소기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친정 낫소가 대회를 못한다면 바볼랏이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결정 과정에 여러차례 돌다리 두드리듯 낫소가 지원을 계속할 지를 확인했다.

그동안 낫소가 주인이 몇차례 바뀌면서 전통의 낫소기 또한 소멸될 위기에 있었다.

낫소기테니스대회는 애초 동아일보사에서 이땅의 테니스 발전을 위해 20년간 개최하다가 낫소로 타이틀 스폰서가 넘겨졌다. 이후 30년간 낫소가 타이틀 스폰서를 하면서 우리나라 중고테니스의 여름 단체전의 왕자로 자리매김해온 대회다. 1999년 장충코트에서 열린 낫소기대회에 집권여당 한나라당 이회창 대표가 관전해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테니스볼과 라켓 등을 생산하던 낫소는 1974년 가족테니스대회,전국여자테니스대회를 시작으로 70~80년대 우리나라 테니스대회란 대회는 모두 후원했다.

단체전의 대명사인 낫소기중고테니스대회도 올해로 56회를 맞았다.
바볼랏은 지난해부터 대회 후원을 하면서 바볼랏전국중고테니스대회로 맥을 이어가게 됐다.

보통 이 대회에는 중등부와 고등부 30여개팀 600여명이 출전해 각 학교의 명예를 걸고 한판 승부를 벌여왔다. 오전 9시에 시작한 경기는 저녁 5시가 되어야 끝날 정도로 단체전의 후끈한 각본없는 드라마를 연출해 왔다.

바볼랏이 대회를 후원하면서 다른 대회와 달리 각 지역을 대표하는 중고등학교에 골고루 상과 부상이 나눠졌다.

단체전 남녀 중등부와 고등부 1,2,3위를 시상해 총 16개팀이 혜택을 입었다. 단체전뿐만 아니라 개인전도 열어 단식과 복식에서 입상자를 배출했다.
총 3000만원 상당의 시상품으로 단체전 16팀, 개인전 32명(복식포함)에게 골고루 상패와 상품이 전달됐다.

   
▲ 대회 시상품 내역. 총 3000만원 규모로 크다
   
▲ 주인을 기다리는 상패

바볼랏은 2013년과 2015년에 부산챌린저를 공식적으로 후원하면서 국내에 본격적으로 대회를 통해 브랜드를 알리게 되었다. 지난해 부산오픈과 광주오픈을 후원을 계속하고 전국남여 중고등학교 테니스대회 후원을 시작했다.

김흥식 대표는 "중고연맹대회 후원을 계속하고 싶었다. 지난해 좋은 기회가 왔다. 하지만 금방 기회가 오질 않아서 사실 오래 공을 들였다. 이전에 낫소기대회때부터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오게 되어 더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50여년의 대회 역사를 고스란히 안는 자부심과 100년 이상 이어가야 하는 부담도 동시에 안았다.

바볼랏은 학생 선수의 경우 14세부터 선수 선호에 따라 제품을 택하고 연령대가 올라가면서 비중이 높아가고 있다. 동호인 부문에서도 라켓 호응도가 좋아 활성화가 되어 있다.

윌슨이 초등연맹과 오랜 협조 관계를 유지하면서 초등선수들이 윌슨 사용 비중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바볼랏은 지난해부터 주니어 엘리트까지 챙겨볼 수 있게 돼서 시작이긴 하지만 하드웨어적으로 완전체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낫소가 한창시절에 초등부터 동호인 어머니까지 챙기던 것을 몸소 겪은 김 대표는 바볼랏이 그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꿈이다.

이를 위해 세계적인 브랜드를 국내에 널리 알리고 바볼랏 용품을 사용하게 하고 있다. 라켓과 스트링에서 전문 기업인지라 제품에는 타사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 김 대표의 확신이다. 특히 스트링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김 대표는 이번 대회 공식 시합구에 큰 신경을 썼다. 골드라는 이름이 붙은 볼을 수입해 공급했다. 일부 중고등학교 선수들은 처음 사용하는 볼로 10분간 워밍업 한뒤 바로 경기에 들어가는데 살짝 가볍게 느껴진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대회에는 지난해처럼 바볼랏 부스를 차려 라켓시타도 해보고 제품도 접해보는 좋은 기회를 갖지 못해 아쉬워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로 10명이상 모이지 못하게 하는 조치로 홍보 매장을 차리지 못했다.

바볼랏은 전통적으로 어린 나무에 물주듯이 주니어에 관심이 많다. 국내 주니어 가운데 세계 1~3위를 하던 선수들이 바볼랏프랑스 본사에서 용품 후원과 투어 후원비를 받은 적이 있다. 주니어 마칠때까지 후원을 했다. 전세계 주니어들에게 테니스를 잘 할 수 있도록 든든한 뒷배가 되어 왔다.

그렇듯 낫소기를 이어받아 전국의 주니어들에게 꿈과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고 있다.

대회 참가하는 선수 가운데 누가 툭 튀어나와 프로선수가 되고 국가대표가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허투루 소홀히 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들이기 때문이다.

바볼랏이 공식 대회에 참여하기에 7년을 기다려와 이제 두번째 발을 내디뎠다. 협회와 연맹이 그동안 협조관계에 있던 곳과의 인연으로 높은 진입장벽이 있었다. 7년에 7년을 더 기다릴 마음도 가졌다.

   
▲ 프랑스 바볼랏 본사가  가족 경영으로기업의 기반을 다졌듯 바볼랏코리아도 김흥식 대표의 자제 김윤기 팀장(왼쪽)이 바볼랏 국내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 김흥식 대표는 2019년부터 바볼랏기 타이틀 스폰서가 되고 홍보 부스를 대회장에 차려놓고 접점을 넓혔다.

테니스 경기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라켓과 볼이다. 맞닿는 볼과 라켓 스트링의 성질이 경기내용을 좌우한다. 볼의 핵심이 고무라면 라켓의 생명은 스트링에 있다. 그래서 볼 개발자는 고무가공업에서 나오곤 했다. 영국의 던롭과 한국의 낫소가 그렇다.

마찬가지로 라켓 제조자는 스트링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을 일으킨 경우가 많다. 1910년대 뉴욕 도살장부산물인 소 가죽과 힘줄로 각종 스트링을 만들던 윌슨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그보다 40년 이상앞서 테니스 라켓 스트링을 처음 개발한 회사가 바로 바볼랏이다.

바볼랏은 2000년대 들어 라켓이 큰 인기를 끌어 신흥 스포츠 브랜드로 아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알고보면 144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장수 기업이다. 연혁을 좇아 올라가면 테니스 역사와 맞닿는다.

테니스 라켓 스트링을 발명한 장본인인 것이다.
바볼랏 신화는 프랑스 리용에서 시작됐다. 실외 잔디코트에서 경기하는 현대 테니스는 1874년 영국군장교 출신 발명가 월터 윙필드(Walter Clopton Wingfield)가 창시했다. 윙필드는 자신이 고안한 새스포츠 종목을 정착시키기 위해 라켓 제작자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만난 것이 프랑스 리용에서 가축 창자로 악기용 스트링 등을 제조하던 피에르 바볼랏(Pierre Babolat)이었다.

IT센서 장착 ‘코넥티드’ 라켓 개발

그는 바볼랏에게 테니스 라켓용 스트링 제작을 의뢰했다. 목재 프레임에 스트링을 단 라켓은 1875년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테니스가 보급되면서 테니스용구로 자리잡았다. 특히 1877년 창립된 윔블던출전 선수들에게 공급됐다. 테니스 대회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윔블던 이전부터 바볼랏은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바볼랏이 1994년까지 테니스 라켓을 생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20년간 오로지 스트링만 제작하는 외길 장인정신을 고수했다. 그런 외골수는 1875년 리용에 설립한 회사를 옮기지 않고 오늘날까지 그 당시 사옥을 그대로 쓰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바볼랏은 대를 이어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해왔다.

바볼랏이 1925년 개발한 천연 스트링은 테니스 라켓의 표준이 됐다. 그 해 프랑스 선수 르네 라코스테가 바볼랏 스트링을 사용한 라켓으로 윔블던과 프랑스 오픈에서 잇따라 우승했다. 이후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자 중 최소 1명 이상이 바볼랏 스트링을 사용한 진기록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바볼랏을 상징하는 2중 선 로고가 도입된 것은 1980년. 밑부분에 선명한 두 줄이 새겨진 라켓은 메이커가 어디든 바볼랏 스트링을 사용했음을 나타낸다. 굵은 두 줄 로고는 아래 선에 ‘PLAY’란 글자가 추가됐을 뿐 오늘날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1994년은 바볼랏 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해였다. 1세기 넘게 묵묵히 스트링만 만들던 회사가 마침내 테니스 라켓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 바볼랏이란 브랜드가 세상에 알려진 것도 이때다. 3대손인 피에르 바볼랏(창업주와 동명)이 결단을 내려 라켓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는 1998년 US오픈에 참석하고 귀국하다 스위스에어 여객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28세에 바볼랏을 물려받은 4대손 에릭 바볼랏은 선대의 경영방침을 따르면서도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거대기업이 아닌 바볼랏은 톱스타 선수들을 마케팅에 동원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주니어 선수들을 후원하는 데 주력했다. 라파엘 나달, 앤디 로딕, 킴 클리스터스, 리나 등이 그들이다. 이들이 대거 세계적 선수로 성장하면서 바볼랏 라켓은 진가를 인정받게 됐다.
바볼랏은 의류·신발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면서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2012년엔 센서가 장착된 ‘스마트 라켓’을 내놓았다. 겉보기엔 보통 라켓과 다를 바 없지만 손잡이 안쪽에 센서와 통신모듈이 들어 있어 서브 속도와 강도, 공이 라켓에 닿았을 때 충격량 등 다양한 수치를 측정한다.
이 정보는 스마트폰으로 전송돼 경기 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한 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라켓에서 얻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선수의 기량을 향상시킬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이다.

국내에선 총판권을 보유한 ㈜유진커머스(대표 김흥식)가 바볼랏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유진커머스(바볼랏)는 89년 창업이래 23년간 해외 스포츠용품의 수입,판매를 중심으로 운영해온 스포츠용품 전문회사다. 그동안 일본 GOSEN, 미국 PRINCE 등 해외 유명 테니스브랜드의 국내총판매대리점으로 활동해왔으며, 2012년 10월부터는 프랑스의 메이저 테니스브랜드 바볼랏(BABOLAT)社와 계약하게 됨으로서, 바볼랏 한국총판으로서, 국내 테니스용품 업계에서 입지를 견고히 다져가고 있다.

유진커머스는 국내 라켓시장이 병행 수입등을 통해 라켓 가격의 비정상 시장을 바로 잡는데 앞장섰다. 유진커머스는 시장가격 혼탁을 막기 위해 판매가격을 지정했다.       
 

 

글 박원식 기자 사진 양구=황서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네이버 구글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테니스피플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614-2 원당메디컬프라자 606호  |  대표전화 : 031)967-2015  |  팩스 : 031)964-7780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경기 다 50250(주간)  |  출판사 신고번호:제2013-000139호  |  상호명 : (주)스포츠피플 | 테니스피플  |  사업자등록번호:128-86-68020
대표이사·발행인 : 김기원  |  인쇄인:김현대  |  편집국장 : 박원식  |  정보기술책임 : 최민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민수
Copyright © 2011 테니스피플.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tennispeopl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