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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 정 순]속리산의 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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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30  10: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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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저자

법주사 입구다. 주변의 펜션 하나를 선택해 마당으로 들어서니 어르신이 운영하는 집이라 허름했지만 좋았다. 먼 길을 운전해 온 까닭인지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고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을 의외로 잘 잤다. 아침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는 창가에서 비스듬히 바라보이는 창 너머 속리산 자락이 단풍으로 제법 누렇다.

충청도의 계절은 내가 사는 남쪽에 비해 계절을 빨리 맞는다. 시간이나 경제가 남아돌아서 여행을 나선 게 아니라 매사를 제쳐두고 떠나 왔다. 2박 째의 여행이 동행인이라도 있었다면 그 사람의 일정에 조바심이 났을 수 있었겠지만 혼자 왔으니 눈치 볼 대상이 없어서 좋다.

세수를 하고 거울 속의 나를 본다. 나이가 든다는 건 늙는 게 아니라 익어 가는 거라고 우겨보지만 민얼굴로 나설 자신이 자꾸만 없어진다. 여행 중 굳이 화장을 할 필요가 뭐가 있겠냐는 생각과는 달리 분 바르고 연지를 찍고서야 자동차에 캐리어를 실으며 숙소를 나선다.

600살이나 되는 정이품송 앞에 마주 선다. 세조의 행차에 가마가 나뭇가지에 걸리지 않도록 소나무 스스로가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렸다는 유래와 함께 지금의 장관급 벼슬을 한 나무답게 기세가 당당하다. 정이품송 곁에 잠시 앉아보니 마음의 평정이 온다. 내 속에 짓눌린 알 수 없는 무게까지 조금은 가벼워지고 자연과 동화되지만 자연을 흉내 냄이란 당치도 않은 오만이라는 생각에 나 자신이 부끄럽다.

계곡을 따라 걸으며 조용히 흔들리는 갈대숲으로 들어간다. 은빛이 되기 전에 뿜어내는 그 은은한 갈대꽃에 윤기 흐르는 건강함이 묻어있다. 그러나 얼마나 흔들리며 키워온 허리였을까. 바람도 구름도 전부를 수용하지 못해 속울음을 수도 없이 토했을 것을.

아마도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저를 흔드는 것이 바람도 달빛도 아닌 제 설움인 것을 안다. 바람이 스치고 지날 때마다 허허벌판에서 서로를 붙들고 기대어보지만 가눌 수 없는 몸부림으로 울었으리라. 그런 갈대처럼 나는 무엇 때문에 날마다 흔들리는가. 삶의 근원이 어디서 왔던 어디로 가냐는 물음에 답을 찾는다. 빈부의 격차도 나로부터 오듯이 삶의 근원에 들어가 보면 독자적인 자기 세계만 구축하는 게 사실이다.

늘 흔들리는 나도 갈대다. 바람 많은 이 계곡에서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바위를 깎거나 갯벌을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갈대이길 잘했다. 물오리 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으니 거친 파도는 만나지 않아도 되니 그 또한 다행이다. 물이 되어 흐르다가 한 세상을 사는 동안 가슴을 있는 대로 다 열수 있는 용기 있어 좋다. 눈물 가득 담고 소리 없이 울어도 좋은 이 가을 속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 감사할 일이다. 씨 뿌린 자 만이 얻을 수 있는 결실이기보다 그냥 쉬었다 가는 거다. 그것이 꼭 다시 탄생이 반복되는 순환의 법칙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이런 갈등 속에서 세상 속의 또 다른 작은 세상을 그리워도 해 보자. 갈등과 그리움의 반복 속에서 평화를 찾는 버릇은 부평초도 아니고 늘 둥둥 뜬 내 어쩌지 못하는 사고는 이런 색깔로 남아 버렸다. 그러나 떠나 왔을 때 다시 돌아갈 집을 약속 했기에 거제도라고 차량 길 도우미를 입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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