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 사람들 > 이정순 '여자의 창'
[이정순]냉장고를 비우며길위에서/저자
거제타임즈  |  geojetime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6.29  09:45:2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큰 마음먹고 냉장고 청소를 한다. 열 때마다 정리해야지 했던 마음을 다잡아 실행에 옮겼다. 반찬통과 야채 박스에 든 것과 선반에 방치되어 있던 소스들을 봉투에 담아낸다. 소주 한 병을 꺼내 행주에 묻힌 뒤 냉장고 벽과 칸에 골고루 바른다. 눌러 붙어 있던 이물질이 불어 날 동안 남길 것과 버릴 것을 분류하니 아까워서 보관 했던 것들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들이 얼추 반이다. 녹아 있는 야채와 오래된 음식물을 모두 비우니 넉넉해진 선반 위에 선택된 찬거리만 정갈하게 올린다.

요리할 때는 가족의 입맛에 맞추어 정성을 쏟았지만 묵혀진 반찬이 되어 보관할 가치가 떨어졌는데도 쉽게 버리지 못했던 것들은 내 마음이었을 뿐 그건 이미 쓰레기였다. 일상에서 많은 것이 소모성에 불과한데 준비할 때 소중 했던 기억 때문에 자꾸만 뒤로 뺐던 것들이다. 아깝다고 남겨 둔 그것이 무엇이었든 어느 순간 쓸모없어진다. 공간만 차지하던 걸 과감하게 버리고 난 후의 개운함이 희열마저 가져다준다.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도 냉장고를 비우듯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는 일이다. 자기 스스로가 모르는 자기 성격 속에서 버리고 다듬어야 할 것에 바로 수긍하는 명쾌함이 없는 습성 때문이다. 아집과 자기 생각에 갇혀 타인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을지 그것이 묵혀진 찬거리에 불과한 걸 모른다.

집짓기 시작을 한 지가 석 달 째 접어들면서 걸림돌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그 원인이 내가 미처 몰라서 일으킨 착오도 있지만 환경적 조건이나 주변의 결여된 배려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지붕에 금빛 기와를 얹고 나무 기둥 집을 짓는 꿈은 경제적 여건으로 날아가 버린 지 오래다. 마당에 파란 잔디가 낮은 키로 깔려있고 연못에는 금붕어가 꼬리 흔들며 노니는 모습도 비웠다. 볕이 좋은 날 나무 의자에 앉아서 좋은 벗을 청해서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버릴 수 없다.

그러나 이 작은 꿈들과 현실을 좁히는 과정이 수시로 아득해지며 가슴을 녹여 내린다. 불합리성과 일일이 대응할 베짱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이럴 때는 밤잠을 설쳐가며 가장 선한 언어로 나를 다스려 보지만 윤회처럼 맴돌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 와 버리는 바람에 몹시 휘청거린다. 이 부분에 있어서 세상 물정을 미처 몰랐던 많은 부분이 수치스럽지만 사람이란 죽을 때까지 모르는 건 모르는 일이라고 견디며 산다는 건 무서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음식물을 담은 용기를 들고 밖으로 나온다. 11월 중반의 찬바람이 우울함을 더 부추기는 밤이다. 그래도 이 땅은 엄연한 법치국가이며 이에 난관도 다 지나가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조금만 더 견디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행여 교만했을지 모를 지난날을 돌아보며 경솔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티코 1대 살 여유 없던 서른 해 전과 티코 10대는 살 수 있는 지금 내 행복의 지수는 어디쯤에 닿아 있는가. 이 생각과 맞물려 보니 진정한 자아를 찾아 고뇌하며 정진하는 호젓한 고독은 사치였다. 그렇지만 하향 시킬 대로 시켜 놓은 이상을 더는 축소시킬 수 없다는 게 생존 본능만큼이나 깊고 강하다. 가로등 불빛을 받은 화단을 지나 음식물 수거 통 앞에까지 왔다. 손 아프게 꾹꾹 눌러 담은 음식물이 초겨울의 바람 되어 소리 없이 운다. 버려도 되는 찬거리처럼 결코 가볍지 못한 일로 기운을 자꾸만 잃어 가는 어떤 여자도 끝내 떨고 서 있다.
 

거제타임즈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최신 인기기사
1
'조기' 사라진 현충일…공공기관 및 교육기관에서도 보기 힘들어
2
제26회 바다의 날 기념식, 지세포항서 열려
3
4일 거제 코로나 19 확진자 2명 발생…지역감염
4
거제수협 엄 준 조합장 대통령 표창 수상
5
한려해상생태탐방원, '국립공원 자연과 함께 숲 속 결혼식' 운영
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인터넷신문 | 등록번호 : 경남 아009호 | 등록연월일 : 2005년 11월 10일 | 제호 : 거제타임즈 | 편집인 : 박현준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현준
발행인 : 김철은 | 발행연월일 : 2003년 4월 16일 | 발행소: 경남 거제시 서문로 72 (고현동) 태원회관빌딩 6층ㅣ전화: 055-634-6688 / FAX: 055-634-6699
Copyright © 거제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문의메일 : geoje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