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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순-여자의 창]'겨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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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4  14: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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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서울의 겨울은 유난히 춥다. 남쪽에서 자라 따스한 기온에 길 들여 지기도 했지만 체질적으로 추위를 잘 탄다. 연고자도 없는 이 도시에서 건강 검진을 받고 돌아 갈 교통이 어중간하여 숙박을 한다. 내시경 검사로 비운 속이 허기를 느꼈지만 낯선 길에서 밥 사 먹으러 가기가 성가셔서 그냥 견딘다. 낯선 방의 사각 공간은 혼자가 주는 쓸쓸함이 엄습한다.
길게 누워 눈을 감아 본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목에 긴 호스를 집어넣던 내시경 촬영 고통이 되살아난다.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현대인에게 나타나기 쉬운 우울증 같습니다. 적당한 운동과 정신력으로 견디는 게 옳을 듯합니다.’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과는 달리 통증은 이어지니 이 일을 어찌하랴. 머리가 터질 듯 두통도 여전하다.

두 번째 이야기
인사동이다. 살아있는 예술이 있는 거리를 서성이다보니 능력에 관계없이 골동품과 진열 문화에 빠져든다. 해 묵은 기와집이 추억의 거리라기에는 옛 모습을 겨우 겨우 유지하는 풍경이라 안타깝다.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쓰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 -
골목 어귀 찻집 문고리에 ‘귀천’의 대표작을 인용한다. 서너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고인의 흔적이 구석구석 묻어 있다. 미망인이 만든 모과 차 한잔을 주문한다. 현대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이 작고 초라한 찻집은 느낌보다도 더 중요한 진실이 담겨져 있다.
막걸리를 좋아 했다던 그 분의 시(詩)에는 늘 술 냄새가 났다. 꾸밈없는 동심으로 아내에게 얻은 용돈 500원으로 행복했다는 그 분의 미망인을 본다. 마침 손님이 없어 마주앉을 기회가 왔다. 성하지 못한 남편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긴 죄로 고개를 들기 싫단다. 오래 전 와 본 거제도 여행은 늘 꿈꾸는 섬 이야기로 남겨두고 산단다.

글을 한답시고 여기 저기 기웃거린 지 햇수로는 수년째지만 늘 머릿속이 하얀 백지인 채로 글벙어리다. 귀천님의 흔적을 밟으며 날개도 없으면서 날지 못해 속을 태운 나의 모습은 끝없는 부끄러움에 몸을 낮춘다.

세 번째 이야기
- 15시 20분 김해행 비행기 결항 -
멀미로 인하여 교통비를 따질 겨를 없이 공항 대합실에 들어서자 안개 주의보로 결항을 통보하는 방송이다. 가정이란 테두리에서 2박을 해도 될 만큼 자유로운 주부는 못되니 예고 없는 삶의 편린들과 타협하려니 입 안이 쓰다. 그 어디에도 꿈처럼 약속된 아름다움이 기다리지 않는다는 건 안다.
하루가 저물어 가는 시간에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타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지정 좌석에 앉아 사선으로 내리 꽂히는 빗줄기를 본다. 질주하는 차량의 소음이 침묵을 여지없이 깬다.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밤에는 마음과 마음이 화해의 손을 마주 잡을 여유도 생긴다.
슬프기 싫은 내 남겨진 생의 시간이기를 기원해 본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은 평화롭게 받아들이며 가질 수 없는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네 번째 이야기
고현 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새벽 3시다. 밤새 서울과 거제도의 거리를 좁히며 달린 버스나 나나 같이 지친다. 현관문을 따고 들어 와 세수를 하고 남편을 본다. 시간의 재촉으로 젊음을 꽤 비켜 누운 그는 잠이 들어있다. 벅찬 삶의 질량으로 가장의 책임 때문에 등허리 한번쯤 제대로 편 날은 있었는지 목젖이 아릿하다.
초저녁에 피우다 만 담배꽁초를 본다. 진한 황톳물 같은 삶의 서러움이 재떨이에 함께 내려 앉아있다. 늘 묵묵한 침묵으로 사는 그가 행여 이 여인의 소홀함으로 채우지 못한 가슴을 쓸어내고 사는 건 아닌지 등에서 식은땀이 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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