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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순]여행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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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13  10: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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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저자/ 이 정 순
베네치아 섬에 도착한다. 파스텔 톤으로 그림처럼 물 위에 떠 있는 이탈리아의 인공 섬이 천 년의 역사다. 베네치아의 또 다른 이름으로 베니스라는 섬에 세계의 응접실로 불리는 산마르코 성당으로 향한다.

여행객들의 무절제한 먹이로 인하여 비만의 비둘기 떼가 하늘을 덮는다. 인구 8만 명의 도시에 급속한 번식률로 비둘기는 10만 마리가 넘는다니 사람보다 비둘기 도시다. 베네치아는 자동차가 없는 독특한 도시였으며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는 게 허락된 게 그 도시의 질서다. 관광객으로부터 수입이 보장되므로 청소원을 많이 늘려 한사람의 실업까지도 면하게 하는 게 이 나라의 행정이다. 천 년 전에 귀족들의 자가용이었던 곤돌라를 타고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갈매기가 오가는 건물 사이로 석양의 따사로운 햇살이 거미줄처럼 가늘게 내린다.

미로 같은 섬을 비켜가며 운하를 돌다가 희대의 바람둥이였던 카사노바가 갇혔던 감옥 옆으로 간다. 손목만큼의 굵은 창살에서 죄인의 절망을 짐작해 보며 전설처럼 남은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수많은 여자를 유린하다 못해 자매까지도 탐닉했다. 희롱 당한 대상의 여인들이 천명을 넘겼다니 당시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그는 교황청으로부터 체포 명령을 받아 옥살이를 했다. 그 감옥에는 유능한 여 간수가 있었다. 호기심 많은 그는 과연 어떤 남자기에 세상을 이렇게까지 뒤흔드나 싶어 보러 갔다가 그만 그에게 매료되고 만다. 이 계기로 카사노바를 감옥에서 탈출시켜준 대가로 목이 베여 지중해에 던져졌으니 목숨을 건 사랑을 한 여간수의 용기가 대단하다.

카사노바는 바람만 피운 게 아니었다. 격변기에 유럽을 누비면서 자유와 평등을 전파한 사람이다. 40여권의 저서를 남긴 박식하고 위대한 저술가였으며 예술과 풍류를 함께 즐긴 낭만주의자며 벤처 사업가이기도 했다. 한 인간이 이토록 다양한 재능을 띠고 살았음에도 호색가라는 이미지만 남긴 건 지나치게 무분별했던 사 생활 탓이다.

유럽은 품위와 신용의 도시다. 건축과 광장과 천 년이 넘은 가로수는 물론이고 전선을 매설해서 전봇대가 없어 깨끗한 거리다. 간판은 작고 단아해서 문패 개념의 목적 외에는 손님을 과하게 끌어 들이는 욕심이 안 보여 신뢰가 더 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공 섬의 베네치아가 침수로 인하여 서서히 침식당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지구의 기온 상승으로 해수가 증가하고 지반이 서서히 깎이는 탓이다. 실질적으로 10년 사이에 3센티가 가라앉았다니 훗날 전설처럼 남을 베네치아의 절망이 먼 이야기가 아니다.

귀한 시간과 경비를 들여서 떠난 여행이니 즐거워야 하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당위성이다. 콩깍지 속처럼 갑갑한 비행시간이 지루하고 고독하지만 견뎌야 한다. 관람을 위해 뙤약볕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음식이 맞지 않아 허기진 날도 잦았지만 돌아오면 내 나라의 음식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에서 유럽식도 먹을 만 했다. 넓은 대국을 매일 7시간 이상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도 적잖은 체력 소모다. 시차로 인한 불면과 언어의 한계가 고생을 톡톡히 거들었다. 여행의 조건 중에서 튼튼한 체력으로 낯선 사람과 대화의 물꼬를 잘 트는 사람은 성공이다.

결국 삶의 이치로 돌아와 볼 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 아무리 돈과 시간이 많아도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가슴에 담지 못한다. 편리함과 불편함의 공존을 균형 있게 유지할 때 기쁨도 찾아온다. 긴 비행시간을 견디며 ‘다시 한 번 더 오다’라는 뜻을 지닌 베네치아 섬에 또 한 번을 더 갈 수 있을지에 대하여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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