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 사람들 > 이정순 '여자의 창'
[이정순]유리 찻잔
거제타임즈  |  geojetime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10.07  11:37:1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길 위에서 저자/ 이 정 순

‘팡, 째쟁~그랑~~’찻잔 깨지는 소리가 짧고도 간결한 음률(音律)에 가깝도록 맑고도 청명하다. 조각난 찻잔 부스러기가 혈관 어딘가를 뚫었나 보다. 통증과 동시에 붉은 선혈이 한순간 손가락 한 마디를 덮어 버린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가 버린 유리찻잔의 힘은 칼이 되어 손을 베어 놓았다. 침묵할 뿐 언제든 깨지고 부서질 수 있는 포효의 습성을 깊숙한 곳에 간직한 찻잔이었다.
이탈의 길로 접어든 이상 날카로운 끝을 세울 일만 남았다. 손에 박힌 조각을 파내는 동안 통증이 결코 엄살일 수 없건만 파내기를 멈출 수 없다. 인간의 몸이 넓다면 넓은데 이 작은 유리조각 한 점조차 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적대적 타인을 만들어 나는 있고 너는 없는 확고한 고집이자 일관성이다. 따뜻한 몸으로 차를 담아내던 기억이 해체되면서 찻잔은 차가운 시선만 품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을 잃었다. 단단했던 완성 체가 강한 외압에 의해 일으키는 파장은 커다란 파괴성이다.
열심히 청 테이프로 떼고 청소기도 돌렸건만 그 어디에 유리조각이 버티고 있었던 걸까. 죄 없는 발바닥마저 찔러 놓고 선홍빛 액체 방울을 여기서도 기어이 보이고 만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듯 원형에서 부서지는 순간 수많은 모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 날카로움이 맹목의 칼날로 변신하여 맨살이 베어지기만을 기다린 것이다. 깊숙한 상처까지 낼 기세는 미성숙한 혼으로 어디든 파고들어 끝내 칼로 밖에 살 수 없다.
찻잔으로 살 때는 뜨거운 불 속의 지독한 과정을 건너온 확실한 완성 체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깨지는 순간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버렸다. 그에 비해 인간은 완성된 채로 태어나는 게 아니다. 살면서 보고 들으며 완성으로 가야할 끝없는 미성숙의 존재다. 어떤 이는 유치원 나이에도 실천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을 어떤 이는 환갑이 되도록 못난 아집 때문에 완성의 길에 접어들지 못하는 이가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미완성의 인간에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쯤일까.
반면에 내면세계에서 눈부신 빛이 흘러나오는 사람이 있다. 학벌이나 재력이 아니다. 끝없는 자기 개발과 연마로 넓은 견문과 큰마음 자리를 지닌 사람은 진정 탐이 난다. 세상을 살면서 그 아무것도 필요치 않을 만큼 성숙된 인간 중심의 힘을 느낀다. 칼이 되고 마는 찻잔보다 더 1회성 속내를 보일 게 아니라 사람은 사람이라야 한다. 사람이 별것인가. 윤리나 도덕성과 예의쯤은 자연스레 몸에 베여야 할 덕목이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피학적이고도 극렬한 사랑의 아포리즘으로 순환과 원용의 중심을 관례로 지나와야 한다. 날마다 흔들리는 바람의 한 가운데 서서 어느 사람인들 품은 파괴성이 없으랴. 자신을 품고 다스리는 차이일 뿐이다.
칼에 베이기를 기다린 적 없는 맨살처럼 찻잔이 아예 해체된 건 오히려 다행이다. 파괴성을 피해 어중간하게 금이 갔더라면 붙여 보겠다고 얼마나 많은 방법으로 미련을 둘 뻔 했는가. 상처는 깊지 않으니 금방 아물 것이고 삶의 본질은 여전히 시간과 함께 가기 때문이다.

 

거제타임즈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최신 인기기사
1
'조기' 사라진 현충일…공공기관 및 교육기관에서도 보기 힘들어
2
제26회 바다의 날 기념식, 지세포항서 열려
3
4일 거제 코로나 19 확진자 2명 발생…지역감염
4
거제수협 엄 준 조합장 대통령 표창 수상
5
한려해상생태탐방원, '국립공원 자연과 함께 숲 속 결혼식' 운영
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인터넷신문 | 등록번호 : 경남 아009호 | 등록연월일 : 2005년 11월 10일 | 제호 : 거제타임즈 | 편집인 : 박현준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현준
발행인 : 김철은 | 발행연월일 : 2003년 4월 16일 | 발행소: 경남 거제시 서문로 72 (고현동) 태원회관빌딩 6층ㅣ전화: 055-634-6688 / FAX: 055-634-6699
Copyright © 거제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문의메일 : geoje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