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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순] 인동초길 위에서 저자/ 이 정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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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29  11: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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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에 두 송이 꽃을 피우는 긴 꽃술을 가진 인동초는 여름 꽃이다. 오염된 땅만 아니라면 좋은 환경이나 부엽토를 바라는 법 없이 잘 자란다. 시골 언덕배기나 가시 넝쿨과 뒤섞여도 자기 방식대로 꽃을 피우니 아무렇게나 잘 엉켜 사는 식물이다. 다만 줄기가 가늘어서 다른 물체를 휘감지 않고는 자기를 지탱할 수 없으니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홀로서지 못한다. 혹독한 겨울에도 쉽게 시들지 않아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꼽힌다. 하얗거나 노란 꽃을 피운다하여 금은화(金銀化)로 불리기도 한다. 부성애(父性愛)의 꽃말답게 넝쿨을 상여 줄로 쓰였던 건 죽어서라도 헌신적인 아비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토속적 신앙이다.

질서 없이 아무 곳이나 마구 엉키며 오르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같은 방향으로만 몸을 감으니 나름대로의 규칙은 있다. 두 잎이 마주 보고 자라다가 어느 순간 깃처럼 갈라지는 건 일찍이 자매의 이별을 예고한 숙명이다. 하얀 꽃은 서서히 노랗게 변하며 진한 향기를 뿜다가 두 자매가 나란히 죽어간 슬픈 전설처럼 새카맣게 타 버린 속은 검은 씨앗만 남긴다.

금화와 은화는 쌍둥이 자매로서 자기들의 존재를 알리려고 한 마디에 두 송이 꽃을 피워야 했는가. 열이 나고 속이 답답하여 팔 다리를 쓰지 못하는 증세에 약재로 쓰이는 희생은 자기들의 고통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마음결이 고운 배려다. 헌신적인 사랑의 꽃말답게 금화 은화는 강한 약효를 온 몸에 품고 돌담이나 바위를 안은 형상을 한 넝쿨은 아버지의 품이다. 꽃술에 혀를 대면 단맛이 나는 건 갈증을 풀어주는 너그러움을 지닌 은화나 금화의 고운 심성이다.

모진 겨울에조차 잎을 털어내지 못하고 찬바람과 맞서서 마치 아비의 바지자락을 잡고 우는 아이처럼 파르르 몸을 떤다. 서러움이 커서 추운 겨울의 허허 벌판에서 제 몸을 숨기지도 못하고 알몸으로 견딘다. 여명을 기다려 햇살 가득한 아침이 시작되면 밤새 사무치도록 그리웠노라 긴 목을 뺀 금화와 은화는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안아야만 했던가.

인동 덩굴

-김 재 황-

감싸고 오른 돌담에 마파람은 와 머물고
그 잎 새 이마에도
물감을 푸는 유월
꿩 울음 덩굴에 걸려 산기슭을 흔든다.
돋아난 갈색 털이 가쁜 숨에 쓰러지고
빛바랜 노란 얼굴
손톱 끝에 시달려도
바다 빛 향기를 뿜어 발걸음을 붙든다.

멍이 든 가슴마다
쓸어 주는 금은(金銀)의 미소
귤나무 여름 순(筍)도 목을 빼어 반기는데
뜨거운 아버지 정을
청명 앞에 쳐든다.

김 재황의 시를 인용한다. 하얗게 피었다가 노랗게 자기 몸빛을 바꾼 인동 주 한 잔을 앞에 놓고 좋은 벗과 밤을 지새우고 싶다. 그 벗과 인동초의 슬픈 전설을 이야기하며 줄기가 된 아버지의 사랑을 품고 싶다. 여름 꽃이지만 겨울에도 피는 건 돌연변이라서가 아니다. 참을 인(忍)과 겨울 동(冬)과 풀(草)이 아버지와 두 딸의 슬픈 전설을 품었으니 죽어서도 부둥켜안은 헌신적 사랑의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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