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우리나라 여성 산악인 한 사람이 히말라야에서 조난당해 목숨을 잃은 일이 있었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목표로 해마다 서너 개의 봉우리를 오르는 강행군을 거듭하다 11번째 낭가 파르밧 8,126ｍ 정상에 오른 다음 하산 길에서 실족 추락한 것이다. 닷새 만에야 시신을 수습해 한국으로 운구한 다음 빈소를 차렸는데 TV뉴스에서 보니 고인은 미혼인지라 직계 가족은 안 보이고 언니 동생으로 보이는 분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내게 처음 든 생각은 퍽 당혹스럽다는 것이었다. “고인은 직업 산악인이고 전적으로 자신의 뜻에 따라 히말라야 등반이라는 모험에 나섰는데 형제지간이라 슬픈 것은 당연하지만 꼭 저렇게까지 통곡을 해야 하는 것일까. 조금만 더 절제된 애도를 표할 수는 없을까. 유족들이 하루 종일 울부짖지는 않았을 텐데 TV는 왜 굳이 저런 장면을 내보낼까.” 이런 의문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TV뉴스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사람들이 애도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문화 코드를 보여준다. 대형 사고나 참혹한 범죄 및 테러의 피해자 유족들의 태도가 일률적인 것은 아니나 카메라 앞에서는 통곡하거나 최소한 오열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물론 이것은 유족 가운데 여성에 국한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들은 남들이 자신의 이런 행동을 기대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다. 또 거기에 따르지 않으면 세상의 비난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TV기자들 역시 데스크의 지시에 따르기 위해서라기보다 밋밋한 화면을 싫어하고 뭔가 역동적인 그림이 있어야 돋보인다는 묵시적 요구에 응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TV 시청자들은 늘 유족들이 울부짖는 모습을 봐야 하고 태풍 등 자연재해가 닥칠 때마다 정부를 탓하고 불만을 터뜨리며 보상을 요구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뉴스 리포트에 양념처럼 등장하는 피해 당사자 및 사고 목격자의 증언, 일반 시민의 ‘반응’ 은 취재 현장에서 기자들이 “이러 이렇게 말해 주세요.”라는 주문에 따라 그대로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종의 ‘만들어진 코멘트’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앞서 말한 대로 실제이든 상상이든 일종의 ‘사회적 큐’를 의식하게 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사건·사고의 피해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대부분 담담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고, 체념과 달관이 섞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테면 “이번 허리케인이 거세서 집이 다 부수어졌네요. 어쩌겠어요. 빨리 복구해서 정상으로 돌아가야죠….”하는 식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남의 탓을 하고 불평불만과 비난비판, 보상 요구를 감정적인 말투로 쏟아내는 경우가 적잖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갈등과 비난으로 점철돼 있다는 현실의 반영이자 다른 한편 한국 언론의 저급한 수준과 오도된 정의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유럽 사람들의 문화 감성코드에 꼭 들어맞는 제목과 주제를 택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이 그동안 국제영화제를 겨냥한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오면서 인류 보편적인 문제를 다뤄 왔지만 유럽의 시각에서는 아무래도 ‘타자의 시선’과 ‘감성적 거리’라는 느낌을 극복하지는 못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들에게 너무나 낯익은 어휘와 시각이미지인 피에타를 통해 ‘구원’이라는 지극히 기독교적 주제를 다룸으로써 관객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피에타는 원래 슬픔, 가엾음, 비탄 등의 뜻이지만 죽은 예수를 안고 비통해 하는 미켈란젤로의 성모상이 보여주듯 호곡, 오열, 절규 등의 격렬한 감정보다는 훨씬 절도 있는 감성이라고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에 앞서 13세기 이후 유럽에서 피에타는 ‘슬픔에 잠긴 성모(Mother Sorrows)’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고 회화, 조각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돼 왔다.
이슬람교 역시 장례식에서 슬픔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을 금물로 여긴다. 코란에 따르면 알라의 뜻보다 단 하루라도 일찍 닥친 죽음도 없고 하루 늦게 찾아온 죽음도 없기 때문이다. 하긴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가 한 뿌리에서 뻗어 나온 세 가지일 뿐 아니라 모두 ‘아브라함교’의 후신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가르침이 비슷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다른 종교들도 지나친 비탄과 애도를 권장하지는 않는 듯하다. 불교에서는 고통으로부터의 궁극적 해방, 즉 열반으로 보는 죽음이 본시 슬픈 일일 수가 없다. 유교의 경우 중국에서 ‘곡비(哭婢)’를 사서라도 슬피 우는 것이 효성이라는 옛 습속이 있어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무절제한 호곡이나 감정의 폭발을 꼭 바람직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속으로 슬퍼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애이불비(哀以不悲)’가 예에 합당하다고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서양문명의 또 다른 줄기인 헬레니즘은 어떨까. 고대 그리스의 장례식에서 여인들이 슬픔을 이기지 못해 귀를 찌르는 소리로 울부짖는 것은 물론 머리에 재를 뿌리고, 옷을 찢고, 가슴을 치고, 얼굴에 피가 흐르도록 손톱으로 긋는 일이 잦았다. 그리스 비극의 여주인공 엘렉트라와 안티고네가 공권력의 금지에 맞서 전통적인 상례를 고집하는 모습에서도 이런 극단적 애도의 편린을 엿볼 수 있다. 정말 놀라운 것은 기원전 6세기 초 아테네에 개혁입법자 솔론의 시대부터 전사자의 아내와 어머니, 누이들이 매해 연말의 합동장례식에서 울부짖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현대적인 해석은 장례를 여성들로부터 남성들의 관할로 옮겨가는 가부장제도의 확립이자 국가를 위해 기꺼이 죽을 군인을 길러내는 데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은 같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 따라 문화와 관습은 다른 모습으로 형성된다.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어떤 사회, 어떤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슬픔을 어떤 형태와 정도로 나타내는가하는 것은 집단적 기억의 소산이자 공동체적 감성의 선택이다. 우리의 장례문화는 서양문화의 도래와 함께 변화를 겪었고 상복의 색깔마저 흰색에서 검정색으로 바뀌었다. 단지 여성의 상복은 흰 소복과 검은 상복이 혼용되고 있는 듯하다. 통상적으로 장례식에서 유족들이 울부짖는 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무언가 억울한 까닭이 있어서일까 TV뉴스에서는 소리 내어 우는 경우도 더러 보인다. 서양식 옷을 입고 동양식으로 통곡하는 모습, 이제는 그만 봐도 좋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