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카를로(Monte Carlo)와 모나코(Monaco)라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한국 사람이라면 ‘신데렐라 결혼’으로 모나코 대공비가 된 할리우드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와 세계의 부호와 명사들이 몰려드는 몬테카를로 카지노가 아닐까 싶다. 구미 사람들이라면 모나코가 이밖에 포뮬라 원(F1) 자동차 경주와 호화 요트, 그리고 해외 조세피난처로 유명하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선 몬테카를로와 모나코가 어떻게 다른지 구별할 필요가 있다. 몬테카를로는 모나코 공국의 중심부로, 4개 구역 가운데 하나의 구역이다. 모나코 공국은 유럽의 미소국가(microstate)이자 도시국가로 인구가 3만6천여 명으로 읍(邑) 규모의 조그만 나라다. 몬테카를로는 19세기 중반 카지노를 지으면서 카지노가 위치한 신개발 구역에 멋지게 들리는 이름을 새로 붙인 것인데 지금은 모나코 내 중심가이자 최대 구역이 됐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교황이 수장인 바티칸 시국으로 면적이 13만여 평에 불과한데 모나코 공국은 61만여 평(여의도는 87만여 평)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주권국가다. 모나코는 현재 프렌치 리비에라(코트다쥐르)의 핵심 도시 가운데 하나로 프랑스 니스에서 기차로 20분, 이탈리아 벤티미글리아에서 기차로 16분 걸릴 뿐이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니스-코트다쥐르 국제공항(코드명 NCE)으로 저가항공이 다수 취항하고 있다.

모나코는 원래 남불 해안의 큰 바위산 요새로 13세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제노아(Genoa)의 식민지가 됐고 지난 700여 년 동안 제노아 출신 그리말디(Grimaldi) 가문이 지배해 왔다. 워낙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18세기까지는 내륙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제대로 없을 지경이었고 해상으로만 통행이 가능했다. 비슷한 환경의 지브롤터는 지중해 입구라는 전략적 위치 때문에 영국에 점령당해 통치 받았지만 그런 이점이 없는 모나코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아남았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나폴레옹3세가 이탈리아령이었던 니스와 사보이를 할양받는 대가로 이탈리아 통일을 용인하는 틈을 타 모나코는 주권을 인정받고 독립했다. 이 무렵 모나코 공국은멍통(Menton) 등이 떨어져 나가면서 세수 부족으로 파산 직전이었다. 당시 모나코 대공비였던 캐롤라인은 파리의 무대 여배우 출신으로 자신이 즐겨 찾던 독일 프랑크푸르트 교외 홈부르크온천을 모델로 해서 모나코에 카지노를 세워 수입을 올린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19세기 비스바덴, 바덴바덴, 홈부르크 등 독일의 유명 온천장에는 전 유럽에서 이용객이 모여들었다. 도스에프스키의 소설 <도박자(1867)>는 그가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끝내고 떠난 유럽여행 중 룰렛 중독에 빠졌던 경험에서 소재를 얻은 것인데 홈부르크온천이 한 장면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당시 온천장은 도박과 경마, 나끼와 사냥, 테니스와 골프, 댄스와 승마를 고루 즐길 수 있는 종합 위락단지였고 종종 명승지 관광과 연극 등 공연 관람이 곁들여졌다.

초기의 시행착오를 거쳐 몬테카를로 카지노는 결국 대성공을 거뒀다. 1815년 영국이 나폴레옹을 워털루에서 격파한 이래 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100년 동안 팍스 브리타니카(영국에 의한 평화)가 지속됐고 유럽 곳곳에서의 ‘큰손’은 영국인이 주류였다. 영국인들은 주로 파리와 베니스, 스위스와 이탈리아 토스카나지방 등을 선호했는데 몬테카를로 카지노가 들어선 이후 모나코와 남불 리비에라, 프로방스지방을 처음에는 겨울 휴양지로, 이윽고는 여름휴양지로 즐겨 찾았다.

요즘 젊은 세대는 잘 모를 수도 있는 그레이스 켈리(1929-1982)는 1951년 할리우드에 데뷔한 뒤 불과 5년 동안 영화배우로 활동했을 뿐이지만 명화 <하이 눈>에서 게리 쿠퍼의 신혼 아내 역과 <모감보>의 조연,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다이얼M을 돌려라>와 <이창>의 여주인공으로 유명세를 탔다. 올림픽 금메달리스 아버지를 둔 부잣집 출신의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는 클라크 게이블, 윌리엄 홀든, 제임스 스튜어트, 캐리 그랜트, 프랭크 시나트라 등 당대의 스타들과 공연했고 우아한 미모와 품격 있는 태도, 잔잔한 성격으로 찬사를 받았다.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 때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박근혜 후보의 영어 이름은 그레이스로 하면 좋겠다”고 아부한 것도 그레이스 켈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1956년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의 ‘노총각 대공’ 레니에3세로부터의 구혼을 받아들여 결혼식을 올렸을 때 언론은 ‘세기의 혼례’라고 불렀다. 그 옛날 미국과 유럽에서 3,000만 명이 TV 생중계로 결혼식을 시청했고, 신부 부모가 준 지참금만도 2백만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였다. 영화배우가 시집을 잘 가서 하루아침에 왕비가 됐다는 측면보다는 유럽 밖에서는 사람들이 잘 몰랐던 모나코 공국이 할리우드 스타를 신부를 맞아들여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는 측면이 강조될 만 했다. 그레이스 켈리가 첫 임신을 했을 때 배부른 것을 가리기 위해 들었던 에르메스 핸드백은 ‘켈리 백’이라 불리면서 ‘It Bag(최고인기 명품핸드백)’의 효시가 됐다.

레니에 3세와 그레이스 켈리 사이에는 맏딸 캐롤린 공주와 연년생으로 태어난 알베르 왕자, 일곱 살 터울의 늦둥이 스테파니 공주가 있다. 알베르 왕자는 레니에3세가 사망한 2005년이래 알베르2세라는 이름으로 재위하고 있는데 2011년 쉰 세 살의 나이로 남아공의 수영선수 출신 샤를린 위트스톡과 결혼했다. 그가 늦도록 결혼을 미루자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결혼 후 2란성 쌍둥이를 낳고 혼외 사생아가 둘이나 있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구설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가 양성애자(Bisexual)라는 추측과 배란촉진제에 의한 임신이라는 풍문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제로 유명한 칸에 간 김에 니스에서 기차를 타고 모나코에 들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모나코 대공궁의 벤치에 앉아 내려다 본 지중해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동행도 있었고 관광객도 꽤 많았지만 왠지 고요하고 정밀(靜謐)한 정원에 홀로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경치로 말하면 해운대 달맞이고개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성곽 가는 길의 해변을 연상시켰다. 마침 매일 11시55분에 거행되는 근위병 교대식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근위병들이 쓴 특색 있는 모자는 19세기 줄루전쟁 때 영국군이 쓰던 하얀 헬멧으로, ‘피스 헬멧’ 또는 ‘사파리 헬멧’이라고 불린다.

모나코에 가면 우선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대공궁에 가서 바다와 항구, 몬테카를로 구역 등 전체를 조망한 다음 카지노를 찾아가는 것이 순서다. 카지노 일반 입장료는 10유로. 양복 상의와 넥타이 착용을 권장하지만 꼭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단정한 옷차림이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티셔츠 바람에 테니스화를 신고는 입장이 안 된다. 개인적으로 여러 나라 카지노를 가봤는데 딱 한번 베니스의 시영카지노에서 본전을 건졌을 뿐 돈 잃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나는 보통 10달러, 또는 20달러를 미리 상한선으로 정하고 슬롯머신만 한다. 되도록 천천히 돈을 집어넣지만 다 떨어지면 미련 없이 일어선다. 재미와 경험삼아 하는 일이라 돈을 딸 요량은 아예 없기 때문이다. 몬테카를로 카지노는 건물 외관이 근사하지만 내부는 다른 곳과 큰 차이가 없이 평범했다.

몬테카를로 카지노는 한때 모나코 세수의 95%를 제공했지만 지금은 3%에 지나지 않고 세율 20%의 부가가치세가 세수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한다. 모나코 거주민들은 아예 입장금지다. 모나코는 1969년 소득세를 전면 폐지한 이래 지금껏 한 푼도 징수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노박 조코비치와 캐롤라인 워즈니아키 등 유명 테니스 선수를 포함한 유럽의 고소득자 다수가 세금 혜택을 노리고 모나코 영주권을 취득했다. 축구의 박주영 선수가 병역 면탈 목적으로 모나코 영주권을 얻은 것은 다소 생뚱맞은 경우라 할 수 있다. 모나코는 이밖에 상속세와 부부간 증여세도 걷지 않는다. 토지세와 부유세, TV시청료도 없다.

모나코 그랑프리는 F1 자동차경주가 벌어지는 20개 안팎의 서킷(경주장) 가운데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500’과 프랑스 ‘르망 24시간 레이스’와 함께 가장 유명하고 유서 깊은 축에 속한다. 특히 모나코 그랑프리는 별도 자동차전용 경주장이 아니라 몬테카를로 중심가 길거리 3.34㎞ 구간을 경주로로 활용하는 스트리트 서킷이라 현장감과 긴박함이 더하다. 1929년 첫 경주가 얼린 이 대회는 해마다 5월에 열리는데 코스를 정비하고 복원하는 데만 대회전 6주와 대회후 3주가 소요된다. 서킷 중앙의 3,000명 규모 관람석은 90~500유로의 입장료를 받는데 서킷 코스에 있는 개인 소유 건물의 테라스를 빌리는 값은 나흘 동안 8천 내지 14만 유로라고 한다.

최고급 대형 요트를 원 없이 구경하려면 항구로 가야 한다. 모나코에는 두 개의 항구가 있지만 에퀼르(허큘리스) 항구가 오나시스 같은 부호들이 타는 초호화 요트들이 정박하는 곳이다. 벤틀리와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고급 자동차들이 즐비한 곳은 몬테카를로 카지노 주차장이다. 카지노 주변에는 불가리, 까르띠에, 쇼파드 등 명품점들이 있다. 해양학박물관 및 아쿠아리움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족관인데 내 경우는 시간과 돈이 다 모자란 데다 다른 볼거리가 많아 건너뛰었다. 모나코 대성당과 오페라하우스, 시청도 건축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호텔 숙박료가 워낙 비싸 엄두가 나지 않는 경우 니스나 벤티미글리아로 가면 가격이 훨씬 착한 편이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서는 점심 때 레스토랑에서 ‘런치 스페셜(table d’hôte)’을 이용하고 저녁에는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빵과 샐러드를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액 식사(prix fixe}’라고도 불리는 런치스페셜은 코스별로 주문하는 ‘아 라 까르테’보다 싸다. 모나코에 온 김에 화가 샤갈(Marc Chagal)이 말년을 보낸 생폴드방스(Saint-Paul-de-Vence)를 찾아 한나절을 보내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