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박 조코비치가 올해부터 아식스 테니스화를 착용했다

나이키(Nike)와 아식스(ASICS). 나이키는 명실공히 세계 1위 미국 스포츠 브랜드고, 아식스는 일본 운동화 메이커로 유명하다. 둘은 스포츠용품 업체란 공통점 외 이렇다 할 연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묘한 태생적 인연으로 얽혀 있다.

이들의 만남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이키 공동창업자인 빌 보워만(1911~1999)과 필 나이트(1938~ )는 미국 오리건 대학 육상팀 코치와 선수 사이였다. 이들은 각자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러닝화를 개발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보워만은 신발업체를 돌아다니며 제작을 모색했고, 나이트는 당시 제조업 전성기를 구가하던 일본 신발업계로 눈을 돌렸다.

나이트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서 일본 신발제조업에 관한 논문을 쓴 뒤 직접 한 스포츠화 메이커를 접촉해 미국 판매권을 확보했다. 그 회사가 바로 아식스의 전신인 오니츠카 타이거(Onitsuka Tiger)였다. 그는 보워만과 손잡고 1964년 오니츠카 타이거 운동화를 수입 판매하는 블루 리본 스포츠란 총판회사를 세웠다.

매장도 없이 차 트렁크에 운동화를 싣고 다니며 판매에 나서 첫 해부터 쏠쏠히 매출을 올렸다. 그러면서 일본제보다 더 가볍고 탄력 좋은 운동화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오니츠카측에 자신들이 고안한 디자인을 제시해 신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 아식스 창업주 오니츠카 기하치로 (Kihachiro Onitsuka)

블루 리본 스포츠는 오니츠카와의 계약 만료를 앞둔 1971년 자체 생산능력을 갖췄다. 그리고 마침내 나이키 브랜드네임과 로고를 세상에 선보였다. 이처럼 나이키는 잘 나가던 일본 운동화 메이커를 인큐베이터 삼아 탄생했다. 실제로 초기 나이키 제품은 오니츠카와 다른 일본 업체에서 위탁 생산했다. 나이키와 오니츠카는 디자인, 모델명을 놓고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아식스 입장에서 보면 운동화를 기반으로 스포츠용품 시장에서 무섭게 성장한 호랑이새끼를 키운 셈이다. 오니츠카 타이거는 이보다 20여 년 앞선 1949년 고베에서 설립됐다. 일본군 장교 출신 주류취급업자 오니츠카 기하치로(1918~2007)가 창립자다. 스포츠의 강인함과 민첩성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의 이름에 타이거를 넣고 호랑이 그림이 들어간 마크를 채택했다.

운동을 좋아한 오니츠카는 모든 몸 동작의 기본은 신발에 있다고 믿었다. 편하고 탄력 있고 미끄러지지 않는 운동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전후 일본에서 붐을 일으킨 농구화를 만들고자 했다. 착지와 정지 기능을 높인 농구화를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나이키와 ‘태생적 인연’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문어 오이 샐러드를 먹다가 “이거다!”하며 무릎을 쳤다. 농구화 밑창을 문어 빨판처럼 만들어 정지마찰력을 높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즉각 실행에 나섰다. 밑창에 빨판 모양의 조그만 고무 컵을 붙인 농구화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오니츠카는 농구선수와 감독들을 찾아 다니며 의견을 물어 품질을 개선했다.

문어 빨판에서 밑창을 착안한 일화는 와플 제조기로 독보적인 운동화를 만든 나이키와 함께 스포츠용품 업계의 전설로 통한다. 보워만은 가정용 와플 제조기에 액체고무를 부어 정지마찰력이 뛰어난 스파이크 밑창을 개발한 바 있다. 그래서 오니츠카가 2007년 별세하자 <포브스>는 “문어 신발의 아버지 잠들다(Farewell to the Father of the Octopus Shoe)”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선수들에게 호평을 받은 오니츠카 농구화는 1950년대를 휩쓴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이에 힘입어 러닝화, 트레이닝화 개발에 나섰다. 1956년엔 멜버른올림픽 일본대표팀 운동화로 채택됐다. 오니츠카는 1961년 마이니치 마라톤대회 참가차 일본에 온 에티오피아의 비킬라 아베베 선수를 호텔로 찾아가 자사 러닝화를 신도록 설득한 일화도 유명하다.

아베베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맨발로 뛰어 금메달을 딴 당대 최고의 마라토너였다. 아베베는 오니츠카 러닝화를 신고 당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오니츠카 스포츠화를 신은 선수들이 마라톤, 배구, 체조, 레슬링 등 각 종목에서 수십 개 메달을 따면서 세계적 인지도를 얻었다.

이후 오니츠카는 스키, 수영, 골프, 야구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며 세계시장을 누볐다. 1977년 GTO 등 2개 업체를 합병하면서 미즈노와 함께 일본 양대 스포츠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아식스로 사명과 브랜드를 바꾼 것도 이때다. ‘ASICS’는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신체에 깃든다(Mens Sana in Corpore Sano)”는 고대로마 싯구에서 인간을 뜻하는 ‘Mens’를 생명이란 의미의 ‘Anima’로 바꿔 그 앞글자를 딴 것이다.

아식스는 1990년대 일본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면서 경영난을 겪었으나 2000년대 이후 옛 상표인 오니츠카 타이거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되살리며 재기를 꾀하고 있다.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 의류, 액세서리는 패션 아이템으로 인기가 높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가장 성공한 일본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아식스 스파이크화만 고집한 것도 브랜드 마케팅에 큰 몫을 했다. 국내에는 아식스코리아(대표이사 김정훈)의 전신인 성일스포츠를 통해 1982년 처음 진출했다.

아식스는 2010년 스웨덴 아웃도어 브랜드인 하그로프스(Haglofs)를 인수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하그로프스는 1914년 설립된 전통 있는 기업이자 기능성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브랜드다. 스포츠용품, 그 중에서도 운동화가 주력인 아식스가 치열한 아웃도어 시장에서 어떤 성과를 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