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개최되는 가장 큰 테니스 이벤트인 2017년 코리아오픈에 바볼랏 스트링팀의 오피셜 스트링거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정말 기뻤다. 이번 대회는 시작 전부터 오스타펜코를 비롯하여 WTA에서 가장 핫한 선수들이 참가한다는 소식에 이미 그 열기가 뜨겁지 않았던가? 오피셜 스트링거로 현장에서 선수들과 직접 대화하고, 그들의 라켓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가슴 뛰는 일이죠.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그들을 볼 수 있다니 말이다.

대회의 예선이 시작되기 전부터 우리는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스트링 머신을 세팅하고, 선수들이 라켓을 맡길 때부터, 마지막으로 라켓을 다시 가져가기까지의 과정을 여러번 예행연습하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과 대책에 대해 미리 점검 해야 실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스트링팀이 자리잡은 곳은 토너먼트 데스크 바로 옆이었는데, 다른 대회와는 다르게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장소에 자리잡았다. 바로 앞에는 슈퍼바이저를 비롯한 해외 심판들이 자리잡고 있고, 그 옆에는 대회 사무실과 토너먼트 디렉터, 선수들이 대회 기간 이용하게 될 식당과 센터코트의 입구가 훤히 보이는 자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스트링 작업 때문이 아니더라도 선수들의 주요 동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회의 예선이 시작되기 이틀전 오후부터 선수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좀전까지 대회 준비 때문에 분주하던 대회 운영진과 우리팀이 긴장해야 되는 순간이다. 지금 도착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토요일부터 시작되는 예선전부터 뛰어야 하는 선수들인데, 토너먼트 데스크에서 먼저 선수 등록을 먼저 하고 난 이후, 이 곳의 코트 점검과 예선전을 대비한 훈련을 바로 시작한다.

테니스닥터 김병수 팀장이 진두지휘하는 우리 스트링팀도 첫 손님을 맞이했다. 케이티 던이라는 영국에서 온 선수인데, 안경을 착용하고 왠지 공부 잘하는 모범생처럼 생긴 외모 때문에 테니스 선수로는 보이지 않는 외모를 갖고 있다. 우리는 리스트링 서비스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는 미리 준비한 서비스 카드를 그녀에게 직접 작성하게 한다. 만약에 그녀의 요구사항을 듣고 서비스 카드를 우리가 작성하게 되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누구의 잘못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케이티는 라켓을 한 자루를 먼저 맡겼는데, 이유는 각 대회마다 스트링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텐션과 이번 대회의 스트링거가 실제 작업하는 텐션을 점검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여진다. 선수들 대부분은 이처럼 처음에는 한자루 맡겨서 그 라켓으로 훈련을 해 보고, 이후 본격적으로 라켓 스트링 작업을 맡긴다.

그만큼 스트링은 선수들이 경기를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어떤 선수가 라켓을 맡기면 그 선수의 첫 번째 라켓을 작업한 스트링거가 대회 마지막까지 그 선수의 전담 스트링거 역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수들이 라켓을 서비스 카드와 함께 우리에게 맡기면, 우리는 그들에게 언제 라켓을 찾아올 지 물어보고 맡겨진 라켓의 작업 우선순위를 정한다. 그리고는 그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바로 찾아갈 수 있도록 스트링 작업을 하고, 스텐실(라켓의 스트링 베드에 브랜드 로고를 칠하는 것)을 원하는 선수들에게는 스텐실도 해 준 다음에 깔끔하게 비닐포장을 해서 그들이 원하는 시간 안에 준비를 해 둔다. 선수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스트링을 직접 가지고 투어를 다니기 때문에, 우리는 스트링을 준비할 필요는 없지만, 만에 하나라도 선수들이 보유한 스트링이 떨어지거나 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주요 스트링은 여분으로 우리팀이 챙겨둔다. 스트링 없어서 대회를 못 뛰게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라켓을 전달해 주면서 스트링 서비스 이용료를 현금으로 받는다. 우리나라 돈으로 미리 환전해서 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달러로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회 전에 미리 거스름돈을 환전해 둬야 한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라켓을 찾으면서 바로 이용료를 내지만, 어떤 선수들은 대회 상금을 받아서 주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용료를 낸 선수와 후불로 낼 선수들의 리스트링 서비스 카드를 구분해서 관리해 둬야 나중에 혼선을 막을 수 있다.

예선이 치러지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 날은 예선을 뛰는 선수들 외에도 바로 본선으로 직행한 선수들들이 입국해서 훈련을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작업량이 가장 많은 시기다. 우리는 대회 기간동안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선수들이 숙소로 향하는 7시 30분 마지막 셔틀이 떠나고 나서야 퇴근을 할 수 있다. 물론 선수들이 숙소로 향하기 전에 맡기는 라켓들이 있기 때문에 보통 한두시간은 더 작업을 해야 우리도 퇴근을 하게 되는데, 선수들이 저녁에 라켓을 맡기면서 요구하는 것들은 모두 다르다. 저녁에 작업을 해서 다음날 사용하길 원하는 선수도 있고, 혹은 라켓을 저녁에 맡기면서 다음날 아침에 작업을 해 달라고 요청하는 선수들도 있는데, 우리는 이들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들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베로니카 세페드 로이그라는 선수는 저녁에 라켓을 맡기면서 꼭 바로 작업을 해 달라고 한다. 텐션도 35파운드로 엄청 낮은 텐션인데, 다음 날 쓸 라켓을 미리 스트링 작업을 해 두는 것이다. 반면에 오스타펜코 선수는 전날 맡기더라도 당일 아침에 작업을 해 주기를 원한다. 신선한 스트링을 원하는 것이다.

예선전이 끝나고, 본선에서 뛰게 될 선수들과 바로 짐을 싸야 하는 선수들로 나뉘는데, 스트링 부스에서 본선에 오르지 못 한 선수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안쓰럽게 느껴진다. 예선에서 떨어진 선수들은 바로 짐을 싸서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본선기간 내내 남아서 본선 진출 선수들의 히팅 파트너를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물론 이들에게는 숙소제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친한 선수들의 숙소를 쉐어하면서 더 머무르며 다른 선수들에게 도움을 준다.

드디어 본선의 막이 올라가고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그들의 에너지를 치열하게 쏟아내는 동안, 우리는 선수들의 경기 일정과 경기 결과를 체크하고 미리 어느 정도는 준비를 해 둬야 한다. 그리고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스트링 머신 한 대는 가능하면 작업을 하지 않고 대기상태로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수가 경기하는 동안에도 스트링을 다시 맡기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에 스트링 머신이 다른 작업을 하고 있으면 그 선수들의 경기내에 작업을 해서 다시 가져다 줄 수가 없기때문이다.

어떤 경우에 화장실도 못 가고, 끼니도 제 때 챙겨 먹기 힘든 경우도 있는데, 직접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만큼이나 우리도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선수들은 아주 예민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팬서비스에 대한 익숙함 때문인지 친절한데, 그들과 같이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대회 기간동안 스트링 부스에서 음악을 틀어두었는데, 선수들은 스트링 부스에 오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도 한다.  그리고 깔깔거리기도 하고, 선수들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답해준다.

프리실라 혼과 함께

특히 친절한 선수들 몇이 기억에 남는데, 호주에서 온 프리실라 혼이라는 선수가 기억에 남는군요. 코치도 없이 혼자 와서 예선부터 뛴 선수인데다가 나이도 어려서 좀 안쓰럽기도 했다. 이 선수가 결국은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서도 단식 8강, 복식 4강에 올랐다. 에너지가 넘치는 이 친구가 예선을 통과하고 스트링 부스를 찾았을 때, “해 냈구나! 축해해!”라고 하니 엄청 기뻐서 방방 뛰었다.  이 친구, 알고보니 한국 팬들이 엄청 많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떠나면서 인사하러 스트링 부스에 들러서는 스트링거들과 한번씩 포옹을 하고는 내년에 오겠다고 했다. 이 친구는 투어 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한국에서 얻고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반면에 제니퍼 엘리라는 선수는 예선에서 떨어졌지만 아주 에너지 넘치는 선수였다. 스트링 부스에서 틀어놓은 음악을 가장 좋아해 주던 친구이고, 리듬에 몸을 흔들거리기로 하던 친구였다.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 했지만, 그래도 대회기간 내 남아서 친한 선수들의 랠리 파트너 역할을 해 줬다.

토너먼트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팀은 늘 긴장하고 집중해야 한다. 혹여 실수가 있어 선수들의 플레이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건 정말 최악이다. 그 끔찍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스트링 작업하면서도 심혈을 기울이고, 마무리 하면서도 몇 번씩 점검을 해야 한다. 예선과 본선 초반에는 선수들이 맡기는 라켓의 양이 많아서 바쁘고, 본선 중반부로 향해가면서 맡기는 양은 줄어들지만 그렇다고 많이 한가해 지는 것도 아니다.

선수들의 플레이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지만, 데스크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중계하는 것을 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센터코트와는 벽 하나만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에 관중의 환호소리가 잘 들려 현장감은 있다. 불과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이지만 중계방송은 5초 정도 늦게 나온다. 먼저 환호가 들리고 중계화면으로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우리가 경기를 보는 방법이다.

대회 마지막 날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여유있게 출근을 한다. 대회가 2시에 열리기 때문인데, 여유있게라고 표현은 하지만, 그래도 오전 9시까지는 출근해야 한다. 결승전에 올라간 선수들 모두 당일 아침에 스트링 작업을 해 달라고 요청한 선수들이다. 작업한 라켓을 선수들이 마지막으로 찾아가고, 그들이 경기하는 동안 다시 스트링 부스에서 혹시나 있을 경기 중 스트링 작업을 위해 대기하다가, 그들의 경기가 모두 끝나고 나서야 우리의 공식 일정도 모두 끝이 난다. 결승경기는 역시나 노트북의 모니터를 통해서 봐야 했다.
공식 일정이 끝나고 나니, 우리는 대략 230여자루의 스트링 작업을 했다. 가장 많은 라켓을 맡긴 선수는 역시나 결승에 올라 간 오스타펜코 선수다. 16자루를 맡겼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텐션은 35파운드부터 65파운드까지 다양했다. 

가득찬 관중석을 보니 그래도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아주 뿌듯했다. 코트에서 플레이 하는 선수들보다, 관중으로 가득 찬 경기장이 더 아름다워 보였던 것은 저만은 아니었을 겁이다. 역시 좋은 대회와 좋은 선수는 사람들을 한 데 모이게 한다. 테니스가 직접 플레이 하는 것을 즐기는 것 뿐 아니라, 관람 스포츠로서도 아주 재미있는 종목인데, 이번을 기회로 사람들이 테니스 경기를 관전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많이 알게 되었다.

코리아오픈이 진행되는 10일간의 시간 동안, 화려한 코트의 뒤편에는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회 운영진 분들은 선수들과 관중, 그리고 스탭들을 모두 챙겨야 했기 때문에 열흘 내내 계속 뛰어 다녀야 했고, 발빠르게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하는 미디어 관계자, 매 시간마다 경기에 그 누구보다 집중해야 했던 심판진, 그리고 테니스 용품 홍보부스를 운영했던 바볼랏을 비롯한 테니스 브랜드 관계자, 관중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던 시큐리티 관계자. 이 분들의 노력이 가득찬 관중석으로 그나마 보상받은 것 같아 기쁘네요. 저 역시도 가득찬 관중석을 보는 일이 가장 뭉클했다!!

선수들과 헤어지면서 내년에 다시 보자고 서로 인사했는데,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